메뉴 건너뛰기

close

"내년이 루비레코드와 루비살롱을 만든 지 10년 되는 해입니다. 좋은 일도 있었지만 가슴 아픈 일도 있었죠. 솔직히 젊었을 때 좀 서툴렀어요. 하지만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못할 수도 있잖아요. 인정하고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 않나요."

이규영(42) 루비레코드 대표의 말이다. 그와의 대화는 시쳇말로 쿨(cool)했다. 그리고 공감할 수 있었다.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마포에 있는 사무실에서 퇴근한 이 대표를 중구 신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어 미안한 마음으로 도착했는데, 그는 연신 여러 가지 사업을 구상하느라 대화에, 전화통화에 정신이 없었다.

퇴근했는데도 일의 연속인 거 아니냐는 질문에, "그래도 인천에 내려오면 마음이 편해서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하얗게 불사르자
   
 이규영 루비레코드 대표.
 이규영 루비레코드 대표.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나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인천에서 다닌 이 대표는 현재 부평구 삼산동에 살고 있다.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인천을 떠난 적 없다. 퇴근 후에 인천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업무의 연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편하다는 그의 말이 이해됐다.

이 대표는 중학생일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노래 테이프와 엘피(LP; Long Playing record의 줄임말)판을 모으는 게 취미였다.

"공대를 다녔는데 공부는 안 했어요. 전반적으로 내가 좀 늦어요. 신체 성장도 늦었고 공부도 늦었고 음악조차 늦었죠. 열등생이었어요. 대기만성이요? 아니에요. 그냥 늦은 거죠. 음악을 좋아했지만 선택도 늦은 거예요. 냉정하게 얘기하면 다른 애들은 조숙해서 자기 할 일을 일찍 찾았는데 나는 대학 때까지도 못 찾았으니까요. 군대에서 '음악을 하자'고 결정했어요."

제대 후 스물여섯에 음악학원에서 처음 베이스기타를 배웠다. 그 이듬해 결혼하고 스물여덟에 첫 음반을 냈다. 그 후 직장에 다니면서 음악을 하거나 서울 홍대에서 전업으로 음악활동을 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 후 공연을 기획하는 회사에 다녔는데 사장이 직원들 월급 6개월 치를 주지 않고 도망을 갔다. 대신 고용노동부로부터 체당금 600여만원을 받았다.

"음반을 내고 망하고, 다른 일을 해도 뜻대로 되지 않던 상황이었죠. 어느 날 '핫뮤직'이라는 음악잡지를 봤는데 '듀란듀란' 인터뷰 기사가 있더라고요. 두 달간 시골에서 살면서 노래를 만든 제작기였는데 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하얗게 불사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인의 동의를 얻은 후 체당금으로 음악작업실을 구하러 돌아다니다 부평구 부평5동 모텔촌 근처에 싼 임차료의 사무실을 얻었다. 공간이 생기자 뮤지션들이 하나 둘 찾아와 공연을 하고 음반을 낸 경험이 있는 이 대표에서 음반 제작을 의뢰했다. 그 후 인디밴드들이 알음알음 모이기 시작하면서 2007년 인디레이블 회사인 '루비레코드'와 공연장이자 문화공간인 '루비살롱'을 열었다.

공연과 음반으로 대중들로부터 평가받아
   
지난 8월 20일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에서 열린 ‘주섬주섬 음악회’. ‘탁 피디의 여행수다’를 진행 중이다. 맨 오른쪽이 탁 피디이고, 왼쪽이 루비레코드 소속 밴드인 오리엔탈 쇼커스의 보컬 김그레씨다.
 지난 8월 20일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에서 열린 ‘주섬주섬 음악회’. ‘탁 피디의 여행수다’를 진행 중이다. 맨 오른쪽이 탁 피디이고, 왼쪽이 루비레코드 소속 밴드인 오리엔탈 쇼커스의 보컬 김그레씨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지금까지 루비레코드를 거쳐 간 아티스트는 50여 개 팀이다. 앨범 작업만 한 이들도 있고 계약 관계로까지 이어진 팀도 있다. 국카스텐ㆍ검정치마ㆍ갤럭시 익스프레스ㆍ게이트 플라워즈ㆍ피터팬 콤플렉스ㆍ위아더나잇ㆍ오리엔탈쇼커스ㆍ허클베리핀 등이 지금까지 루비레코드와 함께 했거나 하고 있는 팀이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팀도 있고,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파 뮤지션이 꽤 많다.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팀도 있고, 계약기간 3년이 끝나고 상호 발전적으로 계약관계를 종료한 팀이 있는 반면, 서로 아픔을 준 팀도 있다. 이 대표는 "서로 미숙해서"라 말하며 그 경험이 자신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다고도 했다.

"루비레코드가 만들어온 공연과 음반들로 평가받는 거죠. 지나온 게 역사 아닌가요? '킵 고잉(keep going)'하고 있어요. 우리와 함께 하면서 실력이 향상되는 팀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무엇보다 음악은 즐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루비살롱은 경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2011년 문을 닫았고, 루비레코드는 2012년에 지금의 서울 마포동 사무실로 이전했다. 이 대표는 내년 10주년에 맞춰 인천에 예전의 루비살롱 같은 문화공간을 다시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공연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이었는데, 이번에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합니다. 공연할 수 있는 기능도 있지만 사람들이 모여 교육도 하고 전시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어요. 가령 '인천 대중음악'을 콘텐츠로 전시하는 거죠.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느껴요. 특히 우리는 '공간'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요. 우리나라는 1년이 지나면 예전의 공간이 없어져 풍경이 변하잖아요. 박물관처럼 그냥 남기는 게 아니라 음악 콘텐츠를 가미해 대중적으로 공간을 알리고 거기에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면 종합적인 아카이빙이 되지 않을까요?"

루비살롱을 만들었던 2007년에는 공간에 사람을 모으는 게 관심사였다는 이 대표는 그 후 제작이나 기획, 경영에 관심을 뒀다가 최근 다시 공간으로 관심이 넘어왔다고 했다. 특히 5년간 희로애락이 묻어있는 루비살롱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있는 게 없어 아쉽다고 했다.

한 일을 기록으로 남겨 시행착오 겪지 않게

지난 7월 2일 열린 ‘사운드 바운드’의 한 장면. 밴드 잔나비가 인천아트플랫폼 C동에서 공연하고 있다.
 지난 7월 2일 열린 ‘사운드 바운드’의 한 장면. 밴드 잔나비가 인천아트플랫폼 C동에서 공연하고 있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루비레코드는 2013년부터 '사운드 바운드(SOUND BOUND)'라는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다양한 공간에서 소리(SOUND)가 튀어(BOUND) 소통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이 행사는 기존 음악축제와 달리 역사적ㆍ음악적으로 역사가 있는 건물이나 장소를 소개하면서 공연해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올해 3월에는 중구 신포동 일대의 음악클럽 다섯 곳에서 공연했고, 5월에는 '사운드 바운드 IN 부평 애스컴'이라는 제목으로 부평 신촌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음악으로 나눴다.

"의미 있는 공간이 자꾸 없어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몇 년 후에 가보면 없어지거나 주차장이 돼있는 현실이 답답해, 있을 때 하얗게 불태우고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죠. 몇 년 하다 보니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이젠 사진이나 영상, 인쇄물까지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루비레코드는 지난해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인디밴드들의 연합공연 브랜드인 '단란한 쫑파티'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천의 대표적인 록 페스티벌인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공식 파트너십으로 기획과 제작에 참여해 여러 스테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섭외를 담당하고 있다.

8월에는 '사운드 바운드'의 섬 버전으로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에서 '주섬주섬 음악회'를 열었다. 재밌는 이야기와 공간이 있으면 어디에서든 공연하고자 하는 이 대표의 눈에 최근 경기도 시흥시 월곶예술공판장이 들어왔다. 수협에서 운영하던 수산물공판장을 지금은 시흥시에서 예술공판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시나 설치미술을 하는 사람,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도 공연으로 참가했습니다. 재밌는 공간에 관심이 많아요. 밴드나 뮤지션도 콘텐츠고 공간이나 공연도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장르에 관심이 많고 오지랖이 심한 편입니다.(웃음)"

관객 수만 명의 록 페스티벌나 10명 안팎의 작은 파티 모두 소중하다고 말한 이 대표는 소속 가수들의 음반이나 공연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공연에서 그 밴드만의 장점이 보일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에게 자신의 장점은 무어냐고 물으니, 좌충우돌하면서 고민하는 것이란다.

"매니지먼트만이 내 인생의 해답은 아닙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어요. 인기 있는 직종도 바뀌고 멋쟁이와 영웅도 계속 바뀌잖아요. 그런데 미래에도 나는 이 일을 하고 있을 거 같아요. 공간이든 뮤지션이든 공연이든 기획하는 게 재밌어요. 그런데 언제 올지 모르지만 내가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그만 두고 싶어요. 하지만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아쉬움이 있을 거 같아요. 이규영이라는 사람이 인천에 클럽을 내고 이것저것 했다는 기록이, 나중에 하는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거나 조금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그 과정을 공유하고 방법을 찾아나가는 게 내 역할이겠죠."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이규영, #루비레코드, #사운드 바운드, #주섬주섬 음악회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