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화 <죽여주는 여자>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평생 미군을 상대하는 양공주로 살다가 지금은 종로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박카스'를 파는 여자 소영(윤여정 분)이 있다. 뉴스를 본 사람은 안다.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에게 박카스를 권하는 여성들이 박카스만 팔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은 박카스 할머니 혹은 아줌마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나이 들어 왜 이렇게 사냐고 손가락질 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영은 자신의 일을 썩 자랑스러워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능력으로 먹고 사는 것에 대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은 없는 것 같다.

문제작 만들던 감독의 도전, 박카스 할머니

<정사> <스캔들> <다세포소녀> 등 주로 '골때리는' 문제작을 만들어오다가 최근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따뜻한 휴먼 드라마로 변신을 꾀하기도 했던, 이재용 감독의 신작 <죽여주는 여자>의 주인공 소영은 종로 박카스 할머니다. 몇 년 전부터 뉴스에 심상치 않게 등장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리고 이재용 감독은 이 자극적인 소재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박카스 할머니를 영화로 끌어 들이면서, 60대 여자가 노인들을 상대로 성을 파는 것 외에 박카스 할머니가 되기 전 그녀의 파란만장한 과거, 역시나 소영만큼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이웃들이 만들어진다.

평생 누군가에게 대주기만 했던 소영은 임질 치료차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엄마와 잠시 떨어져 지내야하는 코피노 민호를 집으로 데려온다. 민호의 엄마는 한국에 있는 민호 아빠를 찾으러 왔다가, 민호의 친부임을 거부하는 그에게 화가 나 순간적으로 그를 찌르고 만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민호 아빠는 부잣집으로 장가가, 이미 애가 셋인 산부인과 의사다. 그럼에도 필리핀으로 공부한다고 간답시고, 그곳에서 사생아를 낳은 의사에게 간호사는 "천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민호 아빠를 찌르고 경찰에 바로 잡힌 민호 엄마를 보고, 소영은 도망간 민호를 찾아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누가 그러라고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래야될 것 같았다. 이는 지난날, 소영이 미군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입양보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행위일 수도 있고, 훗날 그녀가 본의 아니게 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과도 연결된다.

정 많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소영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엄마와 생이별을 해야하는 민호를 잠시 거두어들었고, 질병과 고독으로 괴로워하면서 자신들을 죽여 달라고 간곡히 애원하는 노인들을 대신 죽여주기도 한다. 소영에게 죽음을 부탁한 노인들은 진심으로 죽음을 간절히 원했고, 소영은 그들을 위해 부탁을 들여준 것뿐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주인공 소영은 종로 박카스 할머니다. ⓒ CGV 아트하우스


노인들의 죽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유괴로 몰릴 수 있었던, 민호를 집으로 데려온 행위는 소영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마워하는 민호 엄마 덕분에 무탈없이 지나갈 수 있었지만, 노인들을 대신 죽여준 행위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죽음을 맞게해준 호의로만 그치지 않는다. 소영이 가진 도덕적 양심에도 어긋날 뿐더러, 살인이라는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스크린을 통해 소영이 해왔던 지난 일련의 행동을 지켜보았던 관객들을 안다. 소영은 노인들의 부탁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죽인 것 뿐이라고. 무엇보다도 노인들이 죽음을 원했고, 그녀 옆에서 죽음을 맞이한 노인들은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그러나 소영은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은 지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지."

그리고 그녀는 몸소 그 말을 증명한다.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노인의 곁에만 있었을 뿐이라고, 충분히 항변할 수도 있었지만, 소영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대가를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평생 남을 위해 대주기만 했던 소영이 어쩌면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의 의지에 의해 감행한 마지막 선택은 쓸쓸하고 비참하고도 잔혹하다.

하지만 그 또한 소영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거리에 내몰려야하는 삶을 아직까지는 살지 않았던 사람들의 편견과 임의적인 해석일 수도 있다. 병고와 싸우면서 쓸쓸히 사라져가는 노인들의 죽음을 수도없이 목도한 소영은 평생 가난과 싸우면서 힘들게 생을 마감하느니, 차라리 교도소에서 챙겨주는 삼시세끼 밥 먹으면서 남은 생을 사는 것이 그녀로서는 최선이었다.

종로 박카스 할머니, 트렌스젠더 여성, 장애인 남성, 코피노 아이 등 사회에서 외면받는 이들끼리 대안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따뜻한 모습을 잠시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은 잔혹동화로 끝났던 <죽여주는 여자>가 바라보는 현실은 냉정하고도 가혹하다.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연대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노인(전무송 분)을 죽인 이후, 소영이 참회하기 위해 찾아간 조계사, 식당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백남기 농민 의식불명 소식, 그리고 박카스를 파는 소영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다큐멘터리 감독 지망생을 통해, <죽여주는 여자>는 진실을 추구하기보다, 각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들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비추어낸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은 지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지." ⓒ CGV 아트하우스


현실 비판 수작? 어두워서 불쾌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이 영화의 메인 캐릭터로 선택한 종로 박카스 할머니를 중심으로 그녀의 주위를 형성하는 트렌스젠더, 성인 피큐어를 만드는 장애인, 코피노, 그리고 자식들에게 냉대를 받으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보이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듣고 싶고 보고 싶은 대로 왜곡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이재용 감독은 상업 극영화가 추구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제한적인 내러티브적 한계에서, 이들을 동정 혹은 비판의 시선으로 대상화시키지 않으면서, 이들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우리의 현실을 담아낸 수작이라 말할 수 있었고, 어떤 이는 지나치게 어두운 면만 담아냈다면서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이재용 감독은 종로 박카스 할머니라는 실존하는 대상에 그녀가 과거 '양공주'였고, 아이를 입양보냈고, 어쩌다가 누군가의 부탁으로 사람을 대신 죽이는 일을 하게 된다는 극적 설정만 붙인 것이다.

독거노인, 노인 고독사, 자살 또한 이제는 더이상 특별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현실이다. 민호로 대변되는 코피노 문제 또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뼈아픈 과오다. 불편하다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린다고 해도, 사라질 현실이 아니다. 이 불편하고도 파격적인 이야기를 용케 극영화의 형태로 담아낸 이재용 감독의 귀환이 반갑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이재용 감독 노인 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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