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 예정인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을 앞두고 연일 정치권과 언론이 뜨겁습니다. 흔히 '김영란 법'으로 불리는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일각에서는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또 너무 과한 규제로 법을 지키기 어렵다'는 반발도 일고 있습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음식 가격이 비싼 한정식 업소가 대표적인 피해 사례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김영란 법에 의하면 직무와 연관 있는 자로부터 3만 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면 처벌받는데, 한정식 코스 요리가 대부분 3만 원이 넘으니 이로 인해 손님이 끊긴 한정식 가게 상당수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김영란법으로 농업과 축산업이 위기에 몰린다는 <조선일보> 보도.
 김영란법으로 농업과 축산업이 위기에 몰린다는 <조선일보> 보도.
ⓒ 조선일보

관련사진보기


또한 명절 등에 주고 받는 농수축산물 선물 역시 5만 원 상한선으로 정해진 김영란 법으로 인해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러한 언론 보도가 줄을 잇자 예상처럼 정치권이 나섰습니다. 시행도 하기 전, 어렵게 만들어진 김영란 법이 무력화 될지 모를 형국입니다.

먼저 총대를 멘 곳은 더불어민주당입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금품 수수 상한선이 3만 원인 식사비와 5만 원인 선물비를 각각 5만 원과 10만 원으로 상향하자고 당 공식 회의에서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 권한인 시행령 개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정당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 대표의 제안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역시 "김영란 법 시행을 우려하는 농수축산업계 입장을 고려한다면 (우 대표의 제안에) 찬성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반면 온도 차는 있지만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상한선의 보완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동조하면서 양당의 주장을 적극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김영란 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무디게 하려는 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반응은 대단히 냉소적입니다. 대표적인 시민단체 중 하나인 참여연대 역시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의 '상한선 인상 제안'에 즉각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정말 정치권과 언론이 우려하는 것처럼 과도한 김영란 법 시행이 문제일까요?

이런 가운데 최근 인터넷에서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일화가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당일 '권보영'이라는 한 여성 네티즌이 고 노무현 대통령과 있었던 개인적 사례를 인터넷에 올린 글이었습니다.

자기 돈 내고 식사한 정치인,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자료사진).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권보영씨가 처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때는 자신이 모 호텔 일식당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었던 그때, 호텔 일식당에서는 정·재계 인사들로 늘 붐볐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접대하거나 혹은 접대 받기 위해 찾아온 것이겠지요.

그러니 그런 접대 자리에는 늘 최고급 생선회와 값비싼 양주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국회의원이 찾아온 그날 역시 일식당 주방에서는 최고급 횟감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식당에서 일하던 권보영씨는 노무현 의원에게도 주문을 받기 위해 다가가 물었다고 합니다.

"뭘 준비해 드릴까요?"

그런데 이때, 노무현 의원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너무나도 뜻밖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죽 한 그릇만 주세요."

하지만 이 답변에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날 자리를 마련한 기업 측 인사였다고 합니다. "죽 한 그릇만 달라"는 노무현 의원의 말에 그는 화들짝 놀라 "아,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제일 맛나고 비싼 걸로 줘"라면서 대신 주문 메뉴를 바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때 들려온 노무현 의원의 말을 권보영씨는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권보영씨의 증언입니다.

"아가씨. 나는 얻어 먹는 건 너무 싫고 내 돈 주고 먹을라니까 호텔에서 죽 한 그릇 먹을 돈밖에 없어."

권보영씨에 따르면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의 일화는 이 날뿐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노무현 의원은 매번 호텔 일식집에 올 때마다 죽 한 그릇만 주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먹은 '자신의 죽 한 그릇 값은' 당연한 것처럼 자기 돈으로 따로 계산하고 나갔다는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5월 23일 낮 2시 57분, 많은 이들이 큰 충격으로 아파하던 이때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권보영씨의 글은 이후 많은 국민을 감동케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늘, 김영란 법 시행을 앞두고 논란을 빚고 있는 지금 인터넷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이 일화가 다시 잔잔하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김영란 법의 핵심... '그냥 자기 돈 내고 밥 먹자는 것'

"3만 원짜리 한정식 코스 요리가 어디 있냐?"며 이것이 마치 당연한 항변인 것처럼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을 보면서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3만 원짜리 한정식 코스 요리가 어디 있냐?"며 이것이 마치 당연한 항변인 것처럼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을 보면서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 wiki commons

관련사진보기


김영란 법 시행을 앞두고 일어나는 여러 논란은 사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일 일입니다. 금지하는 식사값과 선물값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이 3만 원이든 5만 원이든 상관 없습니다. 문제는 왜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오히려 이 문제에 집착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만 원짜리 한정식 코스 요리가 어디 있냐?"며 이것이 마치 당연한 항변인 것처럼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을 보면서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평범한 국민 누구도 3만 원짜리 밥을 쉽게 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어 중국집 앞을 서성거리다가 그냥 꾹 참고 집에 들어와 밥을 먹는다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봅니다. 그 밥값으로 아이들 용돈 더 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 배고픔을 참았다는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입니다. 이게 우리네 사는 일상입니다.

또한 김영란 법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도 아닙니다. 명절에 아파트 경비원이나 사무실을 청소해주는 아주머니에게 아무리 비싼 선물을 줘도 그것은 김영란 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이웃간에 나누는 선물도 상관 없고, 부모 형제 사이에 주고 받는 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김영란 법이 제한하는 것은 힘 있고 능력 있는 이들이 '서로 봐주고 봐달라며' 주고받는 일정 액수 이상의 금품 수수 및 부정청탁만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과하다는 주장은, 그래서 국민들이 보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안 되는 일을 이제서야 보다 분명하게 규정하자는 것인데 왜 이것이 무리하다는 것인가요.

그렇기에 이제 김영란 법 시행을 통해 한 가지만 확인하면 됩니다. '자기 밥은 자기 돈 주고 먹는 문화 정착'입니다. 이것만 이뤄지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부당한 청탁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정치인은 마음의 빚 없이 당당하게 정치할 수 있을 것이며, 기자는 기사를 쓰고, 또 교사는 아이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김영란 법 시행 전, 이를 무력화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음식값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국회 앞 여의도 식당가라고 흔히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국회 앞 식당에서는 자기 돈 내고 밥 먹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기업의 법인 카드나 부처 업무추진용 카드로 접대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사실처럼 떠돕니다.

이제 이 잘못된 관행을 끝내야 합니다. '제대로 된' 김영란 법 시행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부정부패가 사라지는 결정적 계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계기가 돼야 합니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국민이 모르지 않습니다. 국민은 지켜볼 것입니다.


태그:#김영란 법
댓글6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