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기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이제 갓 대학에 복학한 학생이다. 고학번인 이 남자는 여름에 피서를 다녀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갈 시간이 없었다. 빠듯한 아르바이트 일정과 부족한 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때 남자의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었다.

'내일로 할인 2만8300원'

또 다른 남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익근무 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남자는 공익근무로 받는 월급을 온전히 남겼다. 어디로든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가려고 하니 돈이 모자랐다. 휴가 나온 김에 복학하는 선배나 볼 겸 내려온 충주. 거기서 선배에게 발목이 잡혔다.

"부산 갔다올래?"

숙소? 단돈 3만 원에 'OK'

계획을 세웠다. 1박 2일에 교통비는 2만8300원, 기적의 가격이었다. 이 돈으로 부산에 다녀올 수 있다는 건 마치 '코레일의 실수' 같았다. 두 남자는 실수를 기회로 삼았다. 일정도 정했다. 개강하기 전까지 돌아오기로 했다. 복학생은 일부러 아르바이트를 목요일에 마쳤다. 금요일에 내려와 짐을 풀고 토·일을 사용하기로 했다.

때마침 찾아온 후배도 붙잡았다. 길동무에 저렴한 가격. 문제는 숙소. 고민을 한참했지만 해결할 방법이 전무했다. 너무 비싼 곳을 잡을 수 없었다. 휴가 나온 공익근무 요원과 복학생. 돈은 턱 없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줄일 수 있을만큼 줄여야 했다.

'그냥 찜질방에서 잘까?

아쉬운 마음에 부산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숙소? 내가 알아볼게, 3만 원이면 될 거야."

지인은 빛이고 소금이다. 기적을 행했다. 3만 원에 방을 하나 구했다. 그것도 서면 근처. 골치 아팠던 숙소를 해결했다.

모로가든 부산만 가면 되지!

다음 날. 두 남자는 출발했다.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탔다. 의기양양하게 객실 내에 서 있었다. 휴가 나온 남자는 선배가 참 신기했다.

"아직은 서 있을만 하죠?"

의문을 표하는 선배에게 남자는 피식 웃는다.

"제가 내일로를 해봤는데 1일 차는 죄다 서 있더라고요. 아직은 쌩쌩하게 힘이 남는 거예요."

남자도 그랬다. 지난해 이맘때쯤 했던 내일로. 첫날은 서서 갔지만 2일 차부터는 무조건 앉았다. 체면은 뒷전. 힘든 게 우선이었다. 복학생도 후배의 말을 듣고는 아니라고 손사레쳤다. 하지만 들어올 때부터 곳곳에 앉아 있던 내일러(내일로+er)들을 봤다. 자신은 없었지만 자존심은 세워야 했다.

두 남자는 열차에 실려 갔다. 목표는 부산. 휴가 나온 남자는 슬그머니 계획을 물어봤다.

"그냥 천안 갔다가 거기서 갈아타서 대전가려고."
"그다음에는요?"
"대전에서 부산가는거지."

남자는 불안해졌다. 계획이 없다는 의미인가. 천안까지 꼭 가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더 빨리 갈 방법은 없나 계속 검색했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선배는 한 마디 한다.

"뭐하러 찾아봐. 그냥 가지."

남자는 그럴 수 없었다. 더 빨리가는 방법이 있으리라.

"형, 내려요 여기서도 탈 수 있어요."

머뭇거리는 선배의 손을 붙잡고 내린 곳은 전의, 처음 가는 곳이다. 갈아타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역 주변 좀 보자."

선배의 말에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처음 가본 전의, 내일로가 아니면 안가봤겠지?

복학생 남자는 용감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익숙했다. 외가가 있는 벌교와 같은 느낌이랄까. 그만큼 시골이었다. 역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슬레이트 지붕이 그를 반겼다. 하얀 아크릴판에는 '전의 시외버스터미널'이 적혀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역전 슈퍼'하나. 그러나 여기에도 프렌차이즈 편의점은 어김없이 있었다.

"별 거 없다~ 가자."

역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펼침막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세종시 승격을 환영합니다.'

세종시 승격은 이 시골마을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나 보다. 그러나 그것과는 다르게 '발전'은 볼 수 없었다. 어쩐지 복학생 남자는 입맛이 씁쓸해졌다. 내일로가 아니었으면 절대 볼 수 없었던 세종시의 한 단면.

전의에서 부산행 기차를 탔다. 내부는 내일러들로 넘쳤다. 시루 안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사람들이 차 있다. 앉을 곳을 찾기 위해 첫 번째 칸부터 쭉쭉 걸었다. 역시나 주말은 앉을 곳이 없다. 두 남자는 열차카페로 향했다. 거기도 이미 내일러들이 그득그득 했다. 두 남자는 잠시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대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내릴 테니 그대를 노리기로. 역시. 기회는 왔다. 두 남자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졸기 시작했다.

6시간 걸린 부산, 첫 식사는 돼지국밥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보인다
▲ 부산역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보인다
ⓒ 백윤호

관련사진보기


"형, 일어나요."

휴가 나온 남자는 복학생 남자를 깨운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부산. 가방을 챙기고 열차를 나왔다. 공기가 다르다. 깊숙한 숨을 쉬어보니 바다 냄새를 느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랬다.

"밥부터 먹어요."

휴가나온 남자는 배가 고팠다. 바다 냄새도 좋지만 밥이 먼저다. 벌써 오후 3시 30분. 아침을 8시에 먹었으니 7시간째 밥을 못먹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
"돼지국밥이죠."

휴가나온 남자는 선배를 이끌고 갔다. 남자는 부산에 벌써 다섯 번째다. 올 때마다 질리지 않았다. 맛집도 이제는 제법 안다. 부산역 근처에서는 이곳 돼지국밥을 먹어야 한다.

'본전 돼지국밥' 들어서자 마자 돼지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밥과 국물이 따로 나온다. 정구지(부추의 부산말)를 가득 넣고 새우젓과 양념을 푼다. 밥을 가득 넣었다.

"이거 맛있네. 오오!"

선배는 이미 정신없이 먹는다. 남자도 질세라 허겁지겁 먹었다. 대화는 없었다. 두 남자는 입 안 가득 담긴 밥알의 갯수를 셀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모든 신경은 먹는 것에 집중됐다.

"야, 우리가 배고프긴 했나 보다."

복학생 남자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말도 없이 밥을 먹다니. 두 남자는 서로를 보면 웃었다.

휴가나온 남자는 본전돼지국밥을 추천했다
▲ 돼지국밥 휴가나온 남자는 본전돼지국밥을 추천했다
ⓒ 백윤호

관련사진보기


3만 원짜리 방은 생각보다 좋았다, 다만...

숙소는 좋았으나 1인실 이었다
▲ 숙소 숙소는 좋았으나 1인실 이었다
ⓒ 백윤호

관련사진보기


밥을 먹고 부산역 지하철로 향했다. 부산은 4호선까지 개통돼 있다. 두 남자는 신기했다. 대전에서도 지하철이 있는걸 봤지만 2호선으로도 벅차 보였다. 그런데 부산은 4호선. 뭔가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금방 잊혔다. 부산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숙소를 가기 위해 2호선으로 갈아탔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 정도면 4호선으로 운행할 만했다. 인구가 그만큼 많은 것이리라.

숙소는 서면 옆 전포에 있었다. 6시간의 기차 여행은 두 남자를 지치게 했다. 잠시 쉬고 싶었다. 전포역에 내렸다. 숙소까지 겨우겨우 찾아갔다. 열쇠를 받기 위해 프론트로 갔다. 복학생 남자는 이름을 대고 열쇠를 받았다.

"어, 그런데 2명이네요?"

키를 건네주던 직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그러시죠?"
"아, 지금 잡은 방이 1인실 방이에요."
"네?"

알고보니 복학생 남자의 지인은 그 남자만 오는 줄 알고 있었다. 1인실이라니...

"혹시 2인실은 없나요?"
"예약이 꽉 차서요. 방이 없어요."
"혹시 2명이서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인가요?"
"아뇨. 가능하죠~ 다만..."
"다만?"
"침대가 싱글이라 두 분이 붙어자야 될 거예요."

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붙어자기로 결정했다.

카세어링으로 간 광안리, 시간이 모자라 다시...

광안리의 모습
▲ 광안리 광안리의 모습
ⓒ 백윤호

관련사진보기


잠시 몸을 뉘어 노곤함을 푼 두 남자. 문득 휴가나온 남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선배, 저 휴가 나왔는데 이러고 있을 거예요?"
"뭐하고 싶은데?"
"바다 보러 가야죠."

택시를 타기는 싫었다. 뭔가 시원하게 바다를 보며 달리고 싶었다. 복학생 남자를 꾀기로 했다.

"선배, 혹시 운전할 줄 알아요?"
"알지. 나 운전병이었잖아."
"그럼 차 빌려서 잠시 광안리 갔다올래요? 바다 보고 싶어요."
"그러지 뭐."

대답은 싱거웠지만 계획은 거창했다. 1시간 반 동안 광안리를 달리고 민락회센터를 들러 회를 사기로 했다. 1시간 반이면 가능하리라. 카세어링 서비스를 통해 1시간 30분 간 차를 빌렸다. 내비게이션을 키고 40분을 달려 도착한 광안리. 바닷바람이 너무 좋았다. 두 남자는 내려서 바람을 맞고 싶었다. 그러나 주차는 녹록치 않았다. 한참을 헤매 찾은 주차장. 차에 내려 바다로 달렸다.

복학생 남자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운전도 하고 바다도 봤다. 바닷바람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리는 기분. 이래서 여행을 오는갑다. 이렇게 그냥 가기에는 아쉬웠다.

차에서 내려 본 광안리
▲ 광안리 전경 차에서 내려 본 광안리
ⓒ 백윤호

관련사진보기


"커피라도 한잔 하자."

바닷가에 가장 가까운 카페로 후배를 꼬셔 들어간 남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려고 자리에 앉았다. 차 반납까지 조금 늦을 것 같았다. 남자는 차 대여 시간을 늘리기로 한다. 그런데 빌려지지 않는다.

"이거 빨리 가야겠는데?"

한참 주문을 하던 휴가나온 남자가 왜그러냐는 눈빛을 보낸다.

"뒷사람이 빌렸나봐 안 빌려진다."

커피를 들고 나왔다.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반납했다. 하지만 대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남자는 허탈했다. 그러나 어쩌랴. 터덜터덜 숙소로 걸어가던 두 남자.

"그냥 버스타고 가볼까? 회 먹으러?"

복학생 남자가 후배를 꾄다.

"그…, 그럴까요?"

휴가나온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콜을 외친다. 둘은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민락회센터로 향했다.

제철 농어 먹고 하루 마무리

소박한 상차림과 좋은데이
▲ 회 상차림 소박한 상차림과 좋은데이
ⓒ 백윤호

관련사진보기


민락회센터는 10층 높이의 건물을 지칭한다. 1층은 생선좌판이 깔려 있었다. 두 남자는 첫 걸음을 옮기자마자 호객행위를 당했다.

"어서 와, 여기가 싸."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두 남자. 한 상인의 말에 발걸음을 멈춘다.

"갈때 가더라도 얘긴 들어보고 가."

상인은 제철이라며 농어를 추천했다. 3만 원. 3만5000원에서 5000원을 깍았다. 그들은 6층으로 가라는 상인의 말을 듣고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6층은 나무 장판이 깔려 있는 횟집이었다. 두 남자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멀리 광안리가 보인다. 상은 소박하게 차려졌다. 농어회는 금방 도착했다. 좋은 회에 술이 빠지면 섭하다. 부산소주 '좋은데이'로 목을 축였다. 한 잔, 두 잔 도니 여행의 즐거움이 한껏 돋는다. 웃음소리가 커진다.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밀면가게는 북적... NC는 한산했다

다음 날, 두 남자는 부산대로 향한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복학생 남자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 장소는 부산대역.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부산대역에서 만난 지인은 먹고 싶은 것을 물었다. 깊은 고민은 없었다. 이미 오면서 둘은 의견을 합치했다.

"밀면이요."

부산대학교 정문으로 지인은 데려갔다. 지인이 데려간 곳은 '부대밀면' 이곳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그득했다. 밀면은 담백하게 맛있었다. 양도 푸짐햇다. 두 남자는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물론 술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시간이 남자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두 남자와 지인은 NC백화점으로 향했다. NC백화점은 부산대 정문에 위치해 있다. 지인은 이곳을 들어가면서 한마디 한다.

"부산대 빚의 원인이에요. 여기는 정말 왜 지었는지 모르겠어요."

지인의 말에 의하면 부산대 학생들이 쓰는 것을 가정하고 만든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까? 어불성설이다. 당연히 고객수는 적었다.

"이곳에 허가내주던 사람은 1억 원을 리베이트로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1억 원 받고 이걸 해주는것도 웃기죠."

NC백화점 안은 사람이 없었다. 드문드문 보이기는 하지만 백화점이 돌아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커피숍을 들어가 주문했다. 가격은 1만3000원. 커피 값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건물은 휘황찬란했으나 사람은 없었다
▲ 부산대 앞 NC 건물은 휘황찬란했으나 사람은 없었다
ⓒ 백윤호

관련사진보기


한번 쯤은 갈만한 내일로 부산여행

커피를 마시고 ITX-새마을호를 탔다. 대전으로 향하기 위해 출발했다. 상황은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두 남자는 오히려 더 불편했다. 좁은 통로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앉아 있었다. 무궁화호에 비해 통로는 더 좁아보였다. 그나마 위안은 새마을호라는 점. 좀 더 빠른 시간에 대전에 도착했다. 간단히 요깃거리를 산 두 남자. 충주로 가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도착한 충주. 두 남자의 짧지만 긴 여행이 끝났다.

2만83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 두 남자를 움직였다. 분명 재미도 있었고 저렴한 가격 덕택에 할 수 있던 일도 많았다. 총 비용은 1인당 9만300원[차비(28300) + 식비(돼지국밥 7000 + 회값15000 + 술값14000 = 37000) + 방값(15000) + 기타(10000)]. 10만 원도 안되는 가격에 부산을 갔다올 수 있었다. 두 남자는 말한다. 한번 쯤은 갔다올만한 여행이라고. 하지만 내일로 가격이 할인되지 않았더라면, 추천하고 싶은 여행은 아니다.


태그:#여행기 , #두 남자, #부산, #내일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갓 전역한 따끈따끈한 언론고시생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