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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가 말했듯 국가는 폭력수단을 배타적 독점한다. 수단을 준거로 국가를 정의한 것이고, 바로 그 수단이 합법적인 물리력·강제력이라 본 것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형벌권이다. 국가형벌권이 작동하면 시민은 체포 또는 구속되거나 신체와 주거가 압수 수색되며 그 뒤에 유죄가 확정되면 자유가 제한되고 재산을 박탈당한다.

국가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 합법을 가장해 물리력만 행사하는 걸로 보인다면 어떠한 국가와 정권이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형법은 사회통제의 '최후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허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형법을 '최우선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어 한다. 언어를 옥죄고 몸을 속박함으로써 비판하고 반대하는 자를 감옥에 넣어 입을 막고 몸을 결박한다.

2008년 MB 정권 하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 규탄으로 촉발된 촛불집회·시위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 경찰은 집회 참석자에게 색소 물대포를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유모차 부대가 "명박 퇴진, 독재 타도"를 외치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나오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이는 아동보호법 위반이라는 말까지 꺼냈다. 아마도 '아동복지법'을 말한 듯하다.

당시 '대통령님 대화해요'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있는 참석자에게도 색소 물대포가 쏘여졌다
▲ [2008년 100차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대통령님 대화해요'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있는 참석자에게도 색소 물대포가 쏘여졌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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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은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아동학대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아이의 건강의 염려되어 정권에게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유모차 부대가 아동학대범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국가형벌권을 마구잡이식으로 행사하려는 의도는 어처구니없기만 하다. 결국 대통령이 아동복지 위반 언급한 것은 촛불시위에 참석했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참석할 사람들에 대한 선제적 겁박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은 정권에 대한 비판과 감시 욕구가 항시 충만하다. 자신이 뽑은 대표자일지라도 임기 동안 모든 것을 그에게 떠맡긴 채 방관하며 지내려 하지는 않는다. 세계인권선언 등 국제인권규약과 민주주의국가 헌법은 사상의 자유와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표현의 자유를 위시한 각종 인권·기본권의 보장을 명확히 선언한다. 그 취지는 폭력을 사용하여 체제에 직접적 위협을 가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라는 것이다.

전 정권의 의지를 잇겠다는 것인지 2014년에는 박근혜 풍자 포스터를 뿌린 강드림씨가 건조물 침입죄로 경찰 수사까지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관련기사: '박근혜 풍자 포스터' 옥상에서 뿌렸더니...). 아동복지법 위반에 이어 이번엔 건조물 침입죄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정권을 비판하는 대상에게 때에 따라 범죄 적용의 사유를 달리하여 겁박하고 있다.

"나는 이 세계가 짜증 납니다"라고 외치는 그의 절규가 '죄'까지 성립되는 것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풍자를 맞이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웃어버리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이 정권 하에서는 먹히지 않는 듯하다. 가장 좋은 비판은 가장 유머러스한 풍자라는 이야기도 이제는 허울일 뿐이다.

'풍자를 맞이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웃어버리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이 정권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하다.
▲ [강드림씨의 박근혜 대통령 풍자 포스터] '풍자를 맞이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웃어버리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이 정권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하다.
ⓒ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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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에는 박근혜 대통령 풍자 전단을 뿌렸다는 이유로 윤철민씨가 자택 압수수색을 당했다(관련기사: 박근혜 전단 압수수색... "기껏 쓰레기 무단투기인데").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와 연제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경찰관 12명이 그의 집에 들이닥쳐 1시간 반 동안 압수수색에서 컴퓨터 파일과 휴대전화, USB, 전단 제작 영수증 등을 가져갔다.

경찰이 윤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명예훼손과 경범죄처벌법 위반,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 크게 3가지다. 심지어 명예훼손의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죄를 물을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전 정권의 뒤를 잇겠다는 강력한 의지에 따라 아동복지법에서 건조물 침입죄, 거기에 명예훼손 및 경범죄처벌법, 자동차관리법이라는 세 가지 조항이나 추가한 것이다. 정 정권의 의지를 잇겠다는 그 다짐이 얼마나 명확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부산시청과 서면 등 부산 시내 곳곳에 뿌려진 뒤 서울·인천·대구·군산 등을 이어 광주에서도 같은 풍자 전단지가 발견되었다.
▲ [지난달 12일 뿌려진 풍자 전단지] 부산시청과 서면 등 부산 시내 곳곳에 뿌려진 뒤 서울·인천·대구·군산 등을 이어 광주에서도 같은 풍자 전단지가 발견되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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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에는 서울·부산·인천·대구·군산 등을 이어 광주에서도 같은 풍자 전단이 발견되었다. 경찰 측은 "경범죄처벌법나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위반을 검토하고 있다"며 여전히 형법을 최후 수단이 아닌 '최우선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풍자 포스터는 약자의 표현 자유이다. 자신의 의사를 텔레비전, 신문, 책 등을 통해 표현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방법에 의존해야 하기에 이 자유는 길바닥에 표현될 수밖에 없다.

풍자 포스터는 집권세력에 대한 정치적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언론매체에 접근할 수 없는 소수집단에게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창구인 것이다. 소수가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장될 때, 다수결에 의한 공동체 의사결정은 좀 더 정당성을 지닐 수 있다. 표현 자유의 보장은 '열린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견해의 공존인 것이다.

전단을 단순 쓰레기로 치부하는 경찰의 태도도 이해하기 힘들다. 전단(傳單)은 국어사전 정의에 의하면 '선전이나 광고 또는 선동하는 글이 담긴 종이쪽'이라고 명시되어있다. 결국 '뜻'과 '의도'가 담긴 인쇄물을 단순 쓰레기로 치부하는 행태 자체가 상당히 후진국적 사고방식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자는 언제든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사전 봉쇄하고 싶은 욕구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허나 그것을 실제 물질적인 강제력으로 행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하고 사회적 약자의 의사전달을 보장하기 위해 수많은 땀방울을 흘렸던 지난 세대의 노력들을 두 정권은 의지를 연장하며 무너뜨리고 있다. 풍자 포스터를 뿌렸다고 형벌로 그들을 옥죄는 것이 '선진 법치'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목소리를 경청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태그:#박근혜, #풍자, #포스터, #전단지, #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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