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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개혁에 대해 이야기중인 정대영 소장
▲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관료개혁에 대해 이야기중인 정대영 소장
ⓒ 박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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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하면 사람들이 많이 생각했던 것이 재벌 개혁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재벌 개혁보다 더 필요한 것이 관료 개혁입니다. 실제 관료들은 우리나라의 '슈퍼 갑'입니다. 재벌은 '갑' 정도 되고요(웃음).

재벌은 삼성과 LG, 현대가 경쟁하면서 쉽게 자기들끼리 협조가 안 되는데, 관료는 완전히 공동체화 돼있습니다. 다 고시 기수를 기준으로 선배, 후배 하면서요. 개인으로 봤을 때는 재벌이 세겠지만, 공동체화 된 조직으로 볼 땐 관료가 제일 셉니다."

지난 1일 오후 5시. 신촌대학교 제1강의실에서 다준다연구소(소장 이동학)가 송현경제연구소의 정대영 소장을 만났다. '신촌대학교'는 신촌을 중심으로 대안 대학교를 만들려는 청년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최근 '신촌대학교 제1강의실'이란 공간을 마련하고 개교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은행 인재 개발원에서 주임교수 직책을 맡기도 한 정 소장은 한국은행을 퇴임한 후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 <동전에는 옆면도 있다> 등 저서를 펴냈고, 칼럼을 써 왔다. 이 자리에서 그는 최근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글을 중심으로 재벌 개혁보다 관료 개혁이 시급한 이유를 역설했다.

발전 가로막는 관료들

정 소장은 관료가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임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장 사업하기 어려운 이유 1번이 뭐냐, 정책의 불안정성입니다. 2번이 비효율적인 정부 관료입니다. 그 다음이 금융의 접근성입니다. 결국 1번, 2번은 다 관료의 문제죠. 우리나라의 정책의 문제는 거의 다 관료의 문제고, 2번의 경우는 명백하게 관료의 문제거든요."

이어 관료들의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한 고위 관료가 "관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관료들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그는 이는 시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므로 민주주의에 역행한다고 꼬집었다.

관료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점도 지적됐다. 신분 보장이라는 법 조항과 자체적으로 거대한 집단이라는 점 때문에 공금 횡령이나 뇌물 수수 등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정책 실패나 세금 낭비 등에 대해 전혀 책임 지지 않는다는 것. 구체적인 예로 IMF 외환 위기가 거론됐다.

"1997년 IMF 위기를 초래했던 재정 경제원에서 누가 책임을 졌습니까? 나이가 많은 장관을 제외하고 당시 차관이 누구냐면 강만수에요. 근데 그 뒤에 경제 부총리까지 하며 승승장구 했거든요. 당시 금융 쪽의 총 책임자가 윤증현 금융정책실장인데, 그 사람도 뒤에 금융위원장하고, 장관까지 했죠. 당시 국장들도 마찬가지. IMF 뒤에는 다 한 사람씩 장관급을 맡았어요. 책임지는 경우가 없었고, 다들 잘 나갔습니다. 이 관료라는 사람들은 막중한 권한에 비해 책임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관료를 개혁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정 소장은 네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요약하자면 관료들의 책임성을 높이고, 혜택은 줄여야 한다는 것.

엘리트 의식 고무하는 5급 고시제도 철폐해야

관료개혁에 대해 이야기 중인 정대영 소장
▲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 관료개혁에 대해 이야기 중인 정대영 소장
ⓒ 박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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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되는 길이 고시를 통해 관료가 되는 것이어선 안 돼요. 용이 되는 길은 시민의 지지를 받아서 지방자치단체장이건 국회의원이건 지도자가 되거나, 스티브 잡스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에서 성공해야죠. 관료 집단에서 용이 나오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죠. 혹은 예술 작품이나 학문적인 업적을 남기는 등 무언가를 이루면서 용이 되는 것이죠."

정 소장은 우선 고시 제도를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고시 제도 자체가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를 답습했기에 관료들의 선민 의식을 고무한다는 것. 또한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고시를 통해 관료를 뽑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밖에 없고, 그 외에는 모두 일반 기업처럼 필요에 따라 관료를 뽑는다는 점이 지적됐다.

고시 제도가 철폐되면 현대판 음서 제도가 생겨날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5급 이상 공무원을 채용할 때 관련 분야에 충분한 경력이 있는 사람만 채용할 경우 이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5급 이상을 채용할 경우 문화계에서 10여 년 이상 경력이 있는 자만 뽑고, 추가로 적절한 시험을 도입한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피아 철폐해야

"관료 출신이 관피아로 내려가면서 관료와 공생 유착하는 관계로 엮여 있는 게 우리나라 공기업, 금융계거든요. 최소한 관료 출신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 소장은 공기업, 금융계 등에 있는 관피아를 척결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 대안으로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공정한 필기 시험을 제시했다.

"고시를 폐지했으니 기관장 등의 취임을 위한 국가 시험을 만들어서 차라리 조직 관리나 인사관리, 상식, 전공 등을 보자는 거죠. 그러면 소위 말하는 명망가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군에서는 각 기업에서 뽑은 안전 관리 담당자를 이런 기준으로 뽑는데, 억대 연봉에 대우도 좋다보니 퇴직을 앞둔 군인들이 이 시험 공부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우습긴 하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 정치권이나 언론계의 마당발이나 학연, 지연으로 얽힌 사람들이 갈 겁니다. 우리나라가 성숙해져서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괜찮을 텐데 아직 거기까진 힘들고, 과도기적으로 시험을 도입하자고 제안한 겁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정책 역량 강화해야

마지막으로는 정치권과 시민 단체의 정책 역량 강화를 주문했다.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이 대동소이하다고 많은 국민이 느꼈던 것은 그만큼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정치권과 시민 단체가 스스로 정책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관료들의 영향력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원론적인 이야기이나, 우선 정치 지도자들과 시민 단체들이 정책의 중요성을 알고 공부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그들의 기존 인재 영입 방식을 바꿀 것을 강조했다.

"정치권 혹은 시민 단체들이 주로 명망가, 즉 교수나 민간에서 CEO를 지냈던 사람을 영입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훌륭한 말을 하고 훈수는 두지만 정책 역량은 거의 없어요.

정치권이나 시민 단체에서 이제는 그런 사람보다 실무 책임을 맡았던 사람들을 기업이나 공공기관이나 정부 등에서 영입하고 이런 사람들을 통해 정책 개발을 해야 하다고 봅니다. 특히 그런 사람들하고 젊은 사람들을 팀을 만들어서 공부를 시키고 정책 대안을 만들게 하는 거죠."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관료들의 문제가 과도한 책임을 대통령 혼자 지는 대통령 책임제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며, 선출직 정치인들이 직접 부처별로 책임을 지는 의원 내각제로의 개헌이나 지검장 직선제 등을 통해 직접 유권자들이 뽑는 공직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태그:#관료개혁,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다준다, #신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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