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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과 물통, 스티로폼 상자 등을 이용한 옥상텃밭, 무더운 날씨에 고생들 하면서도 잘 자라주고 있다.
▲ 옥상텃밭 화분과 물통, 스티로폼 상자 등을 이용한 옥상텃밭, 무더운 날씨에 고생들 하면서도 잘 자라주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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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물통, 스티로폼 상자. 흙을 담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물 상자가 될 수 있다. 나무로 박스를 짜서 제법 큰 옥상 텃밭 농사를 수년간 지었더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일단은 방수 문제가 심각했고, 나무와 흙이 썩으면서 바퀴벌레가 창궐했다.

할 수 없이 몇 해 전 거금을 들여 옥상 텃밭을 철거했다. 그 철거비용만 해도 몇 년 동안 채소를 사 먹을 만큼의 비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하고, 또 하나 둘 늘려가기 시작한 옥상에는 제법 많은 채소들이 자라나고 있다.

행복은 돈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므로 행복을 사는 비용이라 생각하며 옥상텃밭 농사를 짓는다.

매일 풋고추를 식구들이 일인당 열개씩 먹어도 남는다.
▲ 고추 매일 풋고추를 식구들이 일인당 열개씩 먹어도 남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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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행복은 그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아침저녘으로 물만 잘 주면 쑥쑥 자라 어느새 우리 식구가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풍성한 수확을 거둔다.

아무런 수고 없이 결과물만 사다 먹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더군다나 상품으로 나가기 전, 그러니까 약간의 '풋풋한' 채소나 상품성을 잃어 버린, 그러니까 조금은 '늙은' 채소는 스스로 가꾼 채소가 아니라면 맛볼 수 없는 최상의 선물이다.

게다가 수확해서 30분이 지나기 전에 식탁에 올라온 채소는 그 싱싱함과 맛에서 돈을 주고 산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아무리 빠른 직배송이라고 할지라도, 산지에서 30분 안에 식탁에 올 수 없을 것이다.

'오이 자라듯이 쑥쑥 자란다'는 말 실감

지인이 준 토종오이는 많이 열리지 않아도 아삭함과 꼭지부분의 쓴맛이 일품이다.
▲ 토종오이 지인이 준 토종오이는 많이 열리지 않아도 아삭함과 꼭지부분의 쓴맛이 일품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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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오이 씨앗을 매년 받아두는 지인이 있다. 올해 처음으로 토종오이 씨앗을 받아 심었더니 하루에 두 세 개씩은 따 먹는다. '오이 자라듯이 쑥쑥 자란다'는 말이 실감이 안 났는데, 겨우 손가락만한 오이를 봤다 싶으면 사흘 이내에 따먹을 만큼 자란다.

게다가 토종 오이의 꼭지 부분은 쓴맛이 강하다. 아삭거리는 식감에 더해지는 쓴맛은 입맛을 돋우는 데 일품이다.

방울토마토의 일종인 대추토마토는 세 그루 심었는데, 다 따먹질 못할 정도로 많이 열린다.
▲ 대추토마토 방울토마토의 일종인 대추토마토는 세 그루 심었는데, 다 따먹질 못할 정도로 많이 열린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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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이 열릴 줄 알았으면 토마토 모종을 하나만 샀을 것이다. 하우스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노지에서 키우는 것이고, 게다가 사실은 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 옥상에서 자라다 보니 껍질은 상품용 토마토보다 질기다. 그러나 장점은 완숙될 때까지 기다렸다 따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필요할 때는 붉은빛이 돌 때 따서 사나흘 두면 채소가게에서 사 먹는 토마토와 다를 바가 없다.

조금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직접 키운 것이니 그 맛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심심치 않게 많이 열려서 이웃과 나눠야할 정도다.
▲ 호박 심심치 않게 많이 열려서 이웃과 나눠야할 정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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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물컹물컹하여 젊었을 적에는 싫어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맛을 알게 되었다. 그냥 애호박을 숭숭 썰어서 지짐을 하여 양념장을 찍어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호박은 거름을 잘해야 잘 자란다. 그래서 큰 물통에 심어두고,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거름으로 준다.

옥상 텃밭이 있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냥 버려질 것을 다시 우리의 몸으로 모셔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면서, 여타의 쓰레기도 함부로 만들어내지 않게 된다. 물론, 너무 많이 버리면 파리가 들끌을 수 있으므로 적당한 만큼, 흙이 소화할 만큼만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잘라먹고 또 잘라먹어도 어느새 훌쩍 자라나는 부추, 참 고마운 채소다.
▲ 부추 잘라먹고 또 잘라먹어도 어느새 훌쩍 자라나는 부추, 참 고마운 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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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는 신기한 채소다. 뿌리만 남겨두고 잘라 먹으면 며칠 뒤에 또 잘라 먹을 만큼 자란다. 생으로 양념장만 뿌려서 먹기도 하고, 부추전을 해 먹기도 하고, 많진 않아도 옥상에서 딴 토종오이를 하나둘 모아두었다가 부추를 듬뿍 넣어 오이소박이도 해먹는다.

잘라도 잘라도 뿌리만 남아있으면 '나 여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부추, 그 부추를 통해서 삶의 근성을 배운다. 아마도 그런 근성때문에 부추는 강장식품의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된장을 술술 풀어 아욱국을 끓여 먹으면 그 미끌한 촉감이 아주 좋다.
▲ 아욱 된장을 술술 풀어 아욱국을 끓여 먹으면 그 미끌한 촉감이 아주 좋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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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욱은 된장과 아주 잘 어울리는 채소다. 아욱국을 끓일 때에는 토종 된장을 쓰고, 조갯살을 넣어주면 좋다. 아욱도 미끈거리는 식감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좋아지는 채소 중 하나다.

요즘은 좀 억세게 자라서 봄만큼 맛은 없지만, 그래도 부들부들한 것을 따서 된장국에 넣으면 제법 맛나다. 이것들은 꽃 필 때까지 기다려 씨앗을 받을 용도로 남겨둔 것들이다. 줄기에 숨어 피어나는 작은 아욱꽃은 접시꽃의 축소판이다.

이파리를 뜯어먹는 동안 줄기가 길게 자랐다. 이 정도 자란뒤면 쓴맛이 강해서 입맛을 돋우는데 그만이다.
▲ 상추 이파리를 뜯어먹는 동안 줄기가 길게 자랐다. 이 정도 자란뒤면 쓴맛이 강해서 입맛을 돋우는데 그만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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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는 씨앗을 뿌린 뒤, 아주 작게 싹이 올라오면 뿌리째 솎아서 쌈으로 먹는다. 부지런히 솎아주지 않으면 너무 배게 자라서 자잘하다. 그렇게 솎아 먹다가 적당한 크기가 되면 적당한 간격으로 나누어 심는다.

며칠 시들하다가 옮겨놓은 상추를 보면, 그냥 씨앗을 뿌렸던 곳에 남아 있는 것들보다 몇십 배는 크게 자란다. 이파리만 따먹다 보면 사진처럼 줄기가 계속 올라가고, 올라갈수록 상추는 쓴맛이 더해진다.

하얀 액이 나오는 채소, 쓴 맛을 간직한 채소, 그게 몸에 아주 좋단다. 요즘 먹을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방가지싹 같은 것도 여기에 속하고, 상추도 여기에 속한다. 어느 정도 이파리를 따먹다가 꽃이 피기 전에 줄기 윗부분을 뚝 잘라서 통째로 먹으면 줄기의 맛도 일품이다.

쓴오이로 불리는 여주는 피를 맑게 하고, 당뇨를 치료하는데 좋은 채소다. 올해 처음 심었는데 꽃만 피더니만 본격적으로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한다,
▲ 여주 쓴오이로 불리는 여주는 피를 맑게 하고, 당뇨를 치료하는데 좋은 채소다. 올해 처음 심었는데 꽃만 피더니만 본격적으로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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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는 올해 처음 심었다. 노랗게 익었을 때에 붉은 열매가 탐스럽지만, 맛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고 씨앗이 커서 별로 먹을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여주다. 그런데 여주가 '쓴오이'이라고도 불리며 피를 맑게 하고 당뇨를 치료하는 데 아주 좋다는 소리를 듣고 심었다.

한동안은 꽃만 열심히 피우더니만, 이제 때가 되었는지 여주가 열리기 시작한다. '쓴오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오이줄기 부분보다 더 쓸 것이고, 그렇지만 입맛을 돋우게 하는 데는 아주 좋을 것 같다.

욕심을 내어 모종을 열 개 심었는데 반타작을 했다. 그나마 시름시름한 듯하여 그냥 꽃이나 보고 말 것인가 했는데, 줄기가 퍼지기 시작하자 하루가 다르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오늘도 나는 옥상텃밭에서 보물 한 바구니를 거뒀다

과일찌꺼기 같은 것들을 퇴비 대용으로 사용했더니 개똥씨앗이 올라왔다. 참외인지, 수박인지, 호박인지 더 자라봐야 알것 같다.
▲ 새싹 과일찌꺼기 같은 것들을 퇴비 대용으로 사용했더니 개똥씨앗이 올라왔다. 참외인지, 수박인지, 호박인지 더 자라봐야 알것 같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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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을 심은 물통에서 삐죽이 올라온 새싹, 아직은 그 친구의 정체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음식물 찌꺼기 중에서 나온 것일 터이니 수박이나 참외가 아닌가 싶다. 조금 더 자라보면 알겠지만, 옥상의 작은 텃밭에서 생명의 신비로움을 맛볼 수 있는 예기치 않은 행운이다.

나는 옥상 텃밭에서 거두는 모든 것들을 '보물'이라고 한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차례 물을 주면서 바구니를 들고 올라가면 어김없이 한 바구니씩은 거둔다. 그러니까, 하루에 물 두 번 주고 보물 한 바구니를 얻어오는 셈이다. 게다가 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것(솔직히 말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상품으로 나오지 않는 '풋' 혹은 '늙은' 채소들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조금 불편한 점은 있다. 흙이 있다 보니 조금 불편하게 여겨지는 곤충(바퀴벌레, 파리)도 있고, 화분에서 흙이 조금씩 새어 나오면서 옥상을 조금은 지저분하게도 한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불편함으로 얻는 행복의 크기에 비하면 감당할 만하다.

오늘도 나는 옥상텃밭에서 보물 한 바구니를 거뒀다. 며칠째 거두다 보니 제법 양이 많아, 지인들 몫을 나눈다. 이것 또한 행복이다.


태그:#옥상텃밭, #토종오이, #토마토, #상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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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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