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 서울 중구 명동 중식당에서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정한 영화 시장을 위한 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다. 좌측부터 엄용훈 , 최용배 부회장, 이은 회장, 원동연 부회장

지난 10월 21일 서울 중구 명동 중식당에서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정한 영화 시장을 위한 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다. 좌측부터 엄용훈 , 최용배 부회장, 이은 회장, 원동연 부회장 ⓒ 이희훈


국내 영화 제작 배급사와 대기업 복합상영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영사기 사용료(이하 VPF: Virtual Print Fee)에 대한 논란이 점차 가열되는 분위기다. 지난 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14민사부에서는 영화사 청어람과 디시네마오브코리아(이하 DCK) 간 VPF 징수에 관한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회장 이은. 이하 제협)를 중심으로 한 제작 배급사 측은 '상영관의 VPF 징수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부당 거래에 해당한다'며 오는 18일 국회에서의 토론회 개최를 예고했다. VPF 징수가 부당함을 알리고 합리적 해결방법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디지털영사기 사용료(VPF)에 대한 논란은 지난 10월 영화 <26년>을 제작한 영화사 청어람이 디시네마오브코리아에 2억 3천만 원의 채무부존재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청어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1월 영화 <26년>을 배급하기 위해 롯데시네마, CJ CGV와 영화 상영계약을 체결한 후 DCK로부터 VPF 지급을 골자로 한 '디지털시네마 이용계약' 체결을 요구받았으나 거절했다.

하지만 상영 1주일을 앞두고 예매 서비스가 개시되지 않으면서 불가피하게 이용계약을 체결해야 했고, 이후 예매서비스가 개시됐다. 청어람 측은 DCK와 맺은 디지털시네마 이용계약은 불공정한 상태에서 맺어진 계약이므로 무효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민법 조항에 의거해 무효한 계약에 따른 이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소송의 요지다.

대기업 자본의 불공정행위, 극장 설비비용의 배급사 부담은 부당

VPF는 상영관에서 1회 상영 당 배급사에 1만원을 징수하는 것으로 최대 80만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필름 영사시설이 디지털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2007년 11월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각각 50%의 지분을 투자해 디시네마오브코리아(DCK)를 설립했고, 2009년 말까지 VPF 모델을 적용해 약 1,000개의 디지털 시네마 시스템 구축 계획을 세웠다.

VPF 모델은 극장이 초기 설비비용의 3분의 1을 부담하고 10년 동안 유지 관리비를 DCK에 납부하면 10년 후에 장비 소유권을 극장에 이전해주는 방식이다. 극장들이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기에 부담이 많이 되는 상황에서 일종의 리스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DCK는 초기 설비에 들어간 나머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배급사로부터 VPF를 징수해 왔다.

이에 대해 제작 배급사 측은 디지털 상영 시스템은 극장이 영화 상영을 위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시설인데, 사용료를 받는 것은 적합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사용료를 징수하는 회사인 디시네마오브코리아(DCK)가 스크린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CJ CGV와 롯데시네마의 합작회사라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기업 자회사인 DCK가 배급사에게 디지털 필름 상영 시스템 비용을 부담시킬 경우, 배급사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고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는 강제 거래와 지위를 이용한 부당거래에 해당한다는 것이 제작‧배급사들의 주장이다.

 영화사 청어람이 제작 배급한 영화 <26년>. 디지털영사기 사용료 문제로 법정 공방에 돌입했다.

영화사 청어람이 제작 배급한 영화 <26년>. 디지털영사기 사용료 문제로 법정 공방에 돌입했다. ⓒ 청어람

소송에 들어간 '청어람' 측은 DCK의 VPF 징수가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제1항의 제3호는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행위'로, 제4호는 '자기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무엇보다도 영화 개봉을 담보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극장 설비 비용을 제작비로 떠넘기는 대기업의 독단적인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것이 청어람 측의 입장이다. DCK가 불공정하게 제작사와 배급사에게 청구하고 있는 VPF가 과연 정당한 금액인지, 이에 대한 공정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청어람 측은 덧붙였다.

'청어람'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일 뿐 다른 제작자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일회성 장비가 아니고 극장에 귀속되는 시설에 계속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불만과 함께, 디지털이나 3D영화를 로 만들면서 늘어나는 제작비도 부담이다. 제작비용을 극장에 부과하지 않는 데, 극장 시설비용을 배급사가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제협의 주장이다.

제협은 "디지털상영장비로 인해 극장 운영 인력 및 관리비용이 감축되고 CF의 효율적 배정으로 광고매출이 증가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VPF를 제작사와 배급사에게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시네마 정착으로 배급사 이익 더 커져...VPF 필요"

하지만 청어람과 제협의 의견은 한쪽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일 뿐이며 디지털시네마로 인한 이익이 어디가 더 많은 이익을 얻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운영하고 있고 <마이 라띠마> <남영동 1985> 등을 제작 배급한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DCK 설립을 통해 국내 디지털시네마 정착이 빨리 이뤄졌음을 무시하면 안 된다"며 "필름 영사시설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제작 배급사들이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처럼 필름으로 상영할 경우 프린트 한 벌 제작과 상영 후 소각비용 등으로 평균 150만원~200만 원 정도가 들었다면 지금은 최대 80만원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제작 배급사의 혜택이 더 많아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07년 디지털시네마가 논의될 당시에도 제작 배급부문의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상영부문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영진위는 '디지털 시네마 도입의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연구 자료를 통해 제작비 측면에서 104억, 배급에서 268억 원이 절감되지만 상영 부문에서는 129억의 비용이 증가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 대표는 "극장 측의 영사기 설비비용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35미리 필름 영사기의 경우 수명이 전자기기가 아니기에 30년 이상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디지털 영사기의 도입 이후 날로 발전하는 전자기술에 의하여 교체주기가 5년 안에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국내에 사용되는 디지털 영사기의 경우 도입된 지 5년이 경과한 상태지만 신제품이 계속 출시된 상태에서 10년을 사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2K(풀 HD 2배 해상도)급 영사 설비가 4K급으로 바뀌는 중이고, 8K와도 24K 영사기도 나올 상황이라 대당 1억을 호가하는 비용을 상영관들이 부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10년 동안 유지관리비를 내고 영사기 소유권을 갖는다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VPF는 필요하다"면서 "청어람이 불만이 있었다면 손해를 보든 어떻든 DCK와 계약을 하지 말았어야지 막상 계약서는 써 놓고 나중에 가서 돈 못주겠다고 하는 것은 온당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VPF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영진위에서 극장별 정산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디지털영사기 구입비용이 회수된 곳은 VPF를 받지 않는 쪽으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VPF 청어람 DCK 한국영화제작가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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