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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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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이 미술관이 되기까지

덕수궁(德壽宮) 석조전은 1910년에 완성된 서양식 건물이다. 당시 고종황제가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 덕수궁에 이처럼 서양식 건축물이 들어선 것은 대한제국 근대화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덕수궁의 원래 이름(宮號)은 경운궁(慶運宮)이었다.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07년이었다. 그해 7월 고종이 순종에게 황제를 양위하면서부터다. 그리고 11월 순종황제는 창덕궁으로 옮겨간다.

덕수궁 석조전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스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으로, 건물 앞과 동서 양면에 발코니를 설치했다. 1919년 고종황제 승하 후 석조전은 일본 회화미술관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1938년 3월 코린트 양식의 서쪽 별관이 들어서 이왕가 미술관으로 사용됐다. 그러므로 덕수궁 석조전이 미술관으로 변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이후 1945년까지 덕수궁 석조전에는 현대미술품이 전시됐다.

덕수궁 현대미술관
 덕수궁 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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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인 1945년 10월 덕수궁 석조전에서 해방 기념 미술전람회가 열렸다. 1955년 6월부터는 덕수궁 미술관이 국립박물관에 소속됐다. 1992년에는 석조전에 궁중유물전시관이 문을 열었고, 1998년 12월 석조전 별관(서관)이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으로 개관했다. 2005년 8월에는 궁중유물전시관이 국립 고궁박물관으로 이전하게 됐다. 현재 석조전 본관은 수리 중이고, 별관은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시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전시회장 구성

10월 29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명화를 만나다 - 한국 근현대회화 100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0세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 57명의 작품 100점이 전시된다. 수묵채색화가 30점, 유화가 70점으로, 전시작품은 192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 회화의 대표작이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김인승·오지호·구본웅·배운성의 것이 있다. 이들 작품은 대상의 재현을 위주로 한 사실주의 기법을 보여준다.

"한국 근현대회화 100선" 걸개 그림
 "한국 근현대회화 100선" 걸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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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들어 이중섭·박고석·박수근·김환기는 새로운 표현기법을 모색했다. 구상과 추상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형성됐고, 작가만의 개성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 부류는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계열의 화가들은 전통적인 내용을 현대적인 양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응노·변관식·김기창은 채색수묵화를 통해 전통적인 자연과 인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냈다.

다른 한 부류는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추상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조형이념과 보수적인 사고체계를 과감히 깨뜨리고 당시로서는 전위적인 예술을 추구했던 것이다. 김환기·유영국·이성자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 추상 또는 비구상 미술이 현대미술의 한 부류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내면적인 의지와 주제의식을 화면에 자유롭게 표출했다.

새로운 표현을 모색한 제2전시실
 새로운 표현을 모색한 제2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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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는 크게 네 개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제1전시실에는 1920~30년대 작품이 걸려 있다. 주제는 근대적 표현의 구현이다. 제2전시실에는 1940~50년대 작품이 걸려 있다. 주제는 새로운 표현의 모색이다. 제3전시실에는 1950~60년대에 이르는 동서양화가 걸려 있는데 주제는 전통의 계승과 변화다. 제4전시실에는 1960~70년대 작품이 걸려 있다. 작품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많이 옮겨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전통의 모색이냐, 새로운 표현이냐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화가는 이중섭과 박수근이라고 한다. 그것은 이들의 작품에서 전통과 새로움 두 가지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추구한 소재는 가족·마을·동물 등 우리 가까이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이 두 작가는 대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이중섭은 후기인상파 또는 표현주의 방식으로 대상을 단순화하거나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중섭의 작품 중에서 '황소'를 가장 선호했다.

박수근의 빨래터
 박수근의 빨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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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선호하는 작품이 박수근의 '빨래터'라고 한다. 여인들이 개울의 빨래터에 앉아 빨래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전쟁 후인 1954년 그린 작품으로 구도와 색채 모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첫째, 평면적인 화면에 여인들을 클로즈업시켜 다중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둘째, 채색과 구도의 새로움이다. 갈색을 바탕에 깔면서 전통적인 여인의 한복을 검은색·주황색·노란색·흰색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개울을 좌하에서 우상으로 흐르는 사선구도로 표현했다. 그런 측면에서 박수근은 1950~60년대 가장 한국적인 작가다.

그렇지만 이들 외에도 새로움을 추구한 작가로는 김환기·이응로·김기창 등이 있다. 수화 김환기는 1930년대 일본으로 유학, 아방가르드 미술을 배우게 됐다. 그리고 1950년대까지는 한국적인 모티프를 서양화 기법을 통해 표현했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면서 추상미술에 경도됐고, 1960년대 이후에는 추상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1965년에 그린 '아침의 메아리'에 오면, 구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추상 또는 조형적인 요소만 남게 됐다.

이응로의 '수(壽)'
 이응로의 '수(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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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로는 전통 수묵화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1935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에 유학하면서 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새로운 화풍을 전개한다. 동양 산수화가 추구하는 사실적 묘사보다는 먹의 농담을 이용한 구상적 표현에 중점을 두게 됐다. 그가 1957년 프랑스로 간 이후로는 전위적인 서양화 기법을 받아들여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동양화의 경지를 개척했다. 1972년에 제작된 '수(壽)'는 문자 추상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리고 동양화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또 하나의 화가로 운보 김기창이 있다. 김기창은 전통의 틀을 크게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한 작가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향토적인 정서를 강조한 그림을 그렸다. 해방 후 우향 박래현과 결혼하면서 그림이 세밀해지고 스케일이 커졌다. 50년대 전반 그는 '예수의 생애' 연작을 그렸으며, 여기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동양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50년대 말 60년대 초에는 군집도(群集圖)를 그렸다. 군마도·군해도·군작도에서 운보는 말·게·참새 무리를 표현했다. 60년대 후반 이후 그의 화풍은 또 다시 변모한다. 정적인 대상에 동적인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 강렬한 선과 색을 사용했다. 이때 그린 그림 중에는 '아악의 리듬'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을 통해 운보는 한국적인 정체성을 색채와 선의 울림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림의 추상성은 또 어떻고...

유영국의 추상화 '무제'
 유영국의 추상화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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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추상성에 있어서는 앞에 언급한 김환기 외에 권옥연·남관·유영국·장욱진의 그림이 두드러진다. 이들 중 권옥연과 남관이 프랑스 유학을 통해 추상미술을 배웠다면, 유영국은 일본에서 추상미술을 배웠다. 김환기·유영국·장욱진 등은 1947년 신사실파를 결성하고 그림의 새로운 경향을 추구한다. 처음에는 구상성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60년대로 들어가면서 이들의 그림에서 구상성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권옥연은 1950년대까지 후기인상파·야수파 계열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1957년 프랑스에 유학하면서 앵포르멜을 알게 됐고, 추상미술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 서사적인 주제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내면의 의식을 환상과 암시라는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다. 남관은 1954년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1958년 살롱 드메 전시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도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만큼 추상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에서는 기호학적인 특징과 원시적인 이미지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추상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는 유영국이다. 그는 선·면·원과 같은 조형적인 요소를 통해 추상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선을 통해 길을, 삼각형을 통해 산을, 원형을 통해 해와 달을 표현하는 식이다. 그는 또한 청황흑녹적이라는 동양의 오방색을 기본 색조로 해 음양오행의 동양사상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유영국은 동양적인 생각을 서양식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화가다.

시대정신을 구현했다고? 아닌 것 같은데...

소정 변관식의 '외금강 삼선암 추색'
 소정 변관식의 '외금강 삼선암 추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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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과는 상당히 다른 길을 가면서 새로움을 추구한 작가로는 장욱진이 있다. 그는 외국유학을 하지 않은 토박이 한국 화가였다. 또 자유분방함을 추구해 주류에 끼려고도 하지 않았고, 서울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가 추구한 그림은 간결한 구도와 단순한 형태로 이뤄져 있다. 압축적이고 대담한 구성을 토대로 인물·동물·집·나무 등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모기장' '가족도' '가로수'도 구상성을 토대로 해서 추상적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동양 수묵담채화 중에서는 소정 변관식의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것은 그가 전통적인 서화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화풍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겸재 정선에서 시작된 진경산수의 전통이 느껴진다. 그것은 소정이 실제로 전국 각지의 절경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금강과 외금강의 그림, 단발령에서 바라본 내금강 전도 등은 장쾌하고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는 또한 농촌의 일상을 아주 인상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덕수궁 도담길에서 만난 짝퉁 '황소' 그림
 덕수궁 도담길에서 만난 짝퉁 '황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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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시소개 글에서 표현한 것처럼 이번 근현대회화전에 출품된 작품 모두가 도전적인 실험정신, 치열한 창작의지,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들 작가가 시대정신을 구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하기는 더 더욱 어렵다. 왜냐하면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가거나 단순히 수용한 작품들도 많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에서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앵포르멜의 아류가 보인다. 또 동양화에서도 뭔가 새로운 것(Something new)이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대가라는 이름으로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을 근현대회화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다. 이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림을 아는 대중들을 통해 좀 더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에 대한 평가도 인문학적인 차원의 평론을 통해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미술에 대한 평가가 더 이상 미술평론가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명화를 만나다. 한국 근현대회화 100선'은 2014년 3월 30일까지 열린다. 전시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안내는 국립 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http://www.mmca.go.kr/



태그:#덕수궁, #한국 근현대회화 100선, #이중섭과 막수근, #새로운 표현,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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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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