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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나만의 머그잔을 사용하고 있다. 비단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은 한두 개 이상의 머그잔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1500여 년 전의 '신비의 고대왕국'으로 알려진 가야 사람들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형태의 머그잔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야문화유산을 집대성한 경남 김해 구산동 구지봉 언덕에 있는 국립김해박물관을 찾아보면 고고학자도 아닌 일반인 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야의 아름다움을 탐하다' 특별전으로 가야 유물 고갱이를 만날 수 있어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김해 김씨 후손으로 조상을 찾아뵈어야 한다는 가상한 뜻과 아이들에게 조상을 비롯해 고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익한 곳이라는 학부모 된 자의 교육의미도 곁들여 국립김해박물관을 8월 초 찾았다.

가락국 본거지인 김해는 물론이고 경남 전역에 흩어져 있는 금관가야⋅대가야⋅소가야⋅아라가야⋅비화가야 등의 가야유물을 우리나라 아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한 김해박물관. 철의 왕국 가야의 철광석과 숯을 이미지화하기 위해 지상 3층, 지하 1층의 건물 외벽은 검은 벽돌을 사용했다는데 찾을 때가 무더위가 절정인 한여름이라 오히려 시원한 그물막처럼 느껴졌다. 아쉽게도 본관 건물만 볼 수 있다.

2013년 4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상설 전시장 개편 전시 준비로 <가야누리> 3층에서 가야유물의 고갱이만 모은 '가야의 아름다움을 탐하다.' 특별전으로 달래야 한다. 하지만 고갱이만 모아 놓은 탓에 한눈에 가야문화를 살필 기회였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어린이박물관

어린이 박물관에는 가야 전사를 체험할 수 있는 갑옷과 투구가 갖춰져 있다.
▲ 나는야 가야전사 어린이 박물관에는 가야 전사를 체험할 수 있는 갑옷과 투구가 갖춰져 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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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관인 가야누리는 어린이박물관이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가족휴가로 특히 학생을 둔 학부모 처지에서 더욱 반가웠다. 회차당 50명으로 제한된 인원이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박물관은 50분 동안 진행된다. 무더위도 피하면서 신 나게 가야문화를 익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잡아서 구워먹으리"로 유명한 노래 <구지가>를 시작으로 5분 정도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곁들인 전문 자원봉사자의 구연동화 덕분에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가야의 첫 번째 왕 수로의 탄생설화를 들을 수 있었다. '가락국기 이야기 방'이 본 요리에 앞서 식욕을 돋우는 전채요리처럼 먼저 가야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수로왕의 탄생설화로 가야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면 본격적인 가야여행으로 떠나는 안쪽에서는 먼저 '나도 가야 전사' 체험코너가 흥미를 끈다. 조형 말과 함께 갑옷과 투구를 써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성인 남자인 내게 다소 작지만, 갑옷을 입어보았다. 멋진 모습 너머로 갑옷 무게에 칼까지 들고 싸우려면 체력이 받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마흔 살에 터져 나온 배 때문일까. 내 아이뿐 아니라 입장한 모든 아이가 이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타 멋진 자세를 취했다.

가야 시대에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전쟁이 잦았다는 것을 느껴보는 시간이었을지 궁금했다. 가야 사람들의 마을을 재현한 이곳에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당시 먹었던 음식을 살펴보며 가야 사람들의 삶을 쉽게 체험하는 가야의 집과 가마, 철기 공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가야로 떠나는 신 나는 여행 "한 판 더!"

주사위를 던져 가야 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돌아보는 게임. 아이는 신나서 연신 엄마를 재촉했다.
▲ 가야 여행 한판 더! 주사위를 던져 가야 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돌아보는 게임. 아이는 신나서 연신 엄마를 재촉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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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로 떠나는 신나는 여행이라는 개념에 맞춰 주사위를 던져 가야 유물을 살피는 게임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는 "한 판 더!"를 외치며 연신 엄마와 신 나게 게임을 즐겼다. 퍼즐을 맞추듯 깨어진 도자기를 맞춰나가는 동안 가야 시대의 토기를 느낄 수 있다. 역사와 관련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펼쳐지는 당시의 목책을 재현한 울타리 너머로 '우리들 아틀리에'.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박물관을 찾은 이유 중 하나인 한여름의 찌는 더위를 잊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가야 관련 책들이 없었다. 영유아와 초등학생 수준에 걸맞은 역사책이 없이 단순히 '마법천자문'과 같은 특색 없는 만화책과 'WHY' 시리즈가 놓여 있었다.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가야 유물 기념전시 도록과 하다못해 박시백 화백이 그린 '조선왕조 실록'과 같은 책을 갖추면 아이와 함께 온 어른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가야로 가는 길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게 후다닥 지났다. 1층 어린이박물관을 나와 이제 본격적으로 가야 역사와 문화를 찾으러 떠났다. '가야의 아름다움을 탐하다.' 특별전이 열리는 3층의 1실은 '가야로 가는 길'이라는 대주제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야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수렵과 어로, 채집을 통한 도구의 발달로 시작하여 김해 지역에 가야 문화의 뿌리가 되는 변한의 생성과 발전, 권력화된 개인의 등장, 그리고 금관가야⋅대가야⋅소가야⋅아라가야⋅비화가야와 같은 연맹체 성격의 가야 문화의 차이점에 대해 일러주었다.

가야 사람들의 사랑과 영혼

새들이 죽은 이의 영혼을 옮긴다고 믿었던 가야 사람들이 부장품으로 오리 모양 토기를 만들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이 떠오른다.
▲ 오리 모양 토기 새들이 죽은 이의 영혼을 옮긴다고 믿었던 가야 사람들이 부장품으로 오리 모양 토기를 만들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이 떠오른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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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실에 들어가다 몇 걸음 옮기자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글이 있었다. '죽은 이여! 큰 새 깃털처럼 훨훨 날아다니게···.' <삼국지>위서 동이전 변진조 기록에 나온다고 한다. (물론 중국글자인 한자로 적혀 있었겠지만) 새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한다는 믿음을 가졌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낙동강에 찾아오는 철새와도 무관하지 않은 모양이다.

오리 모양토기는 두 마리가 한 쌍을 이루어 무덤에서 출토된다고 한다. 새를 본떠 만든 토기라 여겨진단다. 구멍이 몸통은 비어 있고 등과 꼬리 부분에 액체를 담거나 따를 수 있는 구멍이 있어 주전자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주전자이면서도 영혼의 전달자인 오리 모양토기는 가야 사람들의 제례의식을 엿보게 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토기를 빚으며 떠난 이와의 사랑을 못내 잊지 못한 것은 아닐지.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보인다더니 이젠 오리 모양토기도 제대로 보이려나.

내내 둘러보는 동안 532년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가 떠오른다. 왜 투항했을까? 왜 신라·백제·고구려처럼 강력한 고대 왕국을 만들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들이 꿈틀거렸다. 도시국가로 서로의 다양성을 가진 채 연맹체로 존재했던 가야. 아직 신비롭고 궁금하다.

가야 사람들은 어떤 머그잔을 사용했는지 1500여 년 전으로 여행 떠나

'가야와 가야사람'이라는 기획전시실인 2실에서는 가야문화의 특성을 장신구⋅토기⋅철⋅교류라는 주제로 꾸며져 있다. 특히 신라의 황금 문화와는 달리 화려한 황금빛으로 무장하였으나, 단출한 미적 감각을 전해주는 가야의 황금 장신구와 교역의 일등공신이었던 철을 중심으로 해 살펴볼 수 있다.

가야 사람들이 사용한 기하학적인 무늬와 한자. 기록의 중요성을 느꼈다.
▲ 가야 사람들이 사용한 문자와 기호 가야 사람들이 사용한 기하학적인 무늬와 한자. 기록의 중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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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문자와 기호. 중국 지역과 철을 매개로 철로 활발한 교역을 하면서 일찍부터 한자가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토기 뚜껑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과 간단한 부호 등은 문자와 더불어 가야의 정치, 사회 등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라니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현재 4~5kg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가야 전사가 입은 판 갑옷. 녹슬기 전에는 더 무게가 나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쟁이 일상이 된 긴장의 시간 속에 갑옷은 중요한 보호장비였을 것이다.
▲ 가야 전사가 입은 갑옷 현재 4~5kg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가야 전사가 입은 판 갑옷. 녹슬기 전에는 더 무게가 나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쟁이 일상이 된 긴장의 시간 속에 갑옷은 중요한 보호장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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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갑옷의 무게가 4~5kg 정도지만 녹슬기 전에는 더 무거웠던 것으로 추정한다. 갑옷은 판 갑옷과 비늘 갑옷으로 나누어진다. 판 갑옷은 긴 사각형, 사각형 등의 철판을 못이나 가죽끈으로 결합했다. 비늘 갑옷은 비늘처럼 생긴 작은 철판을 가죽끈으로 엮은 것으로 어린이박물관에서 직접 입어보니 움직임이 판 갑옷보다 편했다. 판 갑옷은 보병용, 비늘 갑옷은 기병용으로 추정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컵을 닮은 '컵형 토기'. 우리의 머그잔처럼 술과 물을 여기에 담아 1,500년 전 가야 사람들도 마셨을 것이다. 물론 커피는 마시지 않았겠지만.
▲ 가야 사람들이 사용한 '머그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컵을 닮은 '컵형 토기'. 우리의 머그잔처럼 술과 물을 여기에 담아 1,500년 전 가야 사람들도 마셨을 것이다. 물론 커피는 마시지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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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잔은 모양이 매우 다양하다. 원통 모양의 잔에 손잡이가 한쪽에 붙어 오늘날 컵과 비슷해 '컵형 토기'라 불리는 머그잔이 있다. 비록 지금처럼 커피를 따라 마시지는 않았겠지만, 술과 물을 저장해 마셨을 것이다. '굽 다리잔'은 굽다리에 위가 넓은 원통형의 잔을 붙이고, 굽다리에서 잔까지 이어지는 큰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 밖에도 박물관 밖에는 고인돌과 널뛰기, 굴렁쇠 굴리기, 사방 치기, 줄다리기 등 체험 도구가 마련돼 있다. 또한, 구지봉과 왕비릉으로 갈 수 있는 산책길이 붙어 있어 무더위가 가시는 때에 찾는다면 좋을 듯하다.

한국사 대학 수능포함보다 살아 있는 역사 체험이 더 중요

박물관 기념품점에서 8000원에 산 <국립김해박물관 들여다보기>는 집에 돌아와서도 다시 읽으면서 유물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요즘 한국사를 대학 수능에 포함해야 하느냐로 시끄럽지만 살아있는 우리 역사를 살피기에는 박물관만 한 곳도 없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낯선 가야와 가야인을 만나기에는 국립김해박물관한 곳도 없다. 또한,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에는 국립김해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금상첨화다. 가야 사람들은 어떤 머그잔을 사용했는지 살피는 기회를 잡으러 1,500여 년 전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 신문 <경남이야기>에도 8월16일 게재했습니다. http://news.gsnd.net/?p=34171



태그:#국립김해박물관, #가야, #경남 김해시, #가야 유물과 문화,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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