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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동성애자 연예인이 커밍아웃한 지 12년. 이제 커밍아웃은 다양한 관계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으로 커밍아웃을 주저하고 있는 성소수자나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수많은 이성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커밍아웃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를 직접 만나 그 이후 삶의 변화나 생각들을 들어보고, 왜 커밍아웃이 필요한지에 대해 얘기해본다. - 기자말

친구사이 성소수자 가족모임 사진
 친구사이 성소수자 가족모임 사진
ⓒ 이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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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작은 모임이 열렸다. 성소수자 가족모임이다. 지난 2011년 11월 5일 게이코러스 지_보이스 정기연주회 관람으로 시작한 가족모임은 성소수자들의 가족과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모이는 자리로 이번이 네 번째 만나는 자리다.

이 모임은 가족 내 구성원 중 한 명이 성소수자라고 밝힌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보냈는지, 커밍아웃 이후 가족 안에서 어떻게 함께 고민하고 적응해 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자리다. 참가자들은 모임에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한다. 앞으로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고민하는 성소수자들도 모임에 함께한다.

이 날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한 후 겪었던 문제들을 나누고 이에 대한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커밍아웃을 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사례를 듣고 의견을 나눴다. 태풍 여파로 부모님들의 참석은 저조했다. 하지만 남동생이 게이인 누님이 참석하여 실제 사례를 통해 풍부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이번 글은 이날 참석한 누님의 이야기를 모아서 정리했다.

"'너 편하자고 커밍아웃하냐' 했는데... 내가 이기적이었다"

- 킴(남동생) 누님은 세 번째 참석이다. 바쁜 일정상 꾸준히 참석하기 힘들텐데 어떤가.
"킴이 처음 이 모임에 나가자고 했을 때 나의 대답은 '너는 가라, 나는 괜찮아' 이런 식이었다. 실제 처음 가족모임에 참석했을 때 좌불안석이었다. 내 동생을 받아들이는 것과 다른 동성애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것 같다. 약간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임에 나와서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주변 가족들에게 꾸준히 참석을 권해보는 것이 좋다고 본다."

- 동생이 게이인 것을 알고 난 후 감성이나 태도가 어떻게 변했나.
"킴 덕에 매체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라 종교적으로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킴이 장남이기 때문에 집안의 기대도 컸었다. 그리고 내 동생도 앞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 같아서 걱정됐다. 세상에 나와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와 같은. 또 부모님의 상심이 매우 크실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정신병이라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편견을 극복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다양하고 이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책으로 머리로만 알고 있다가, 실제 내 삶 주변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좋았다. 동생이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서 동생 표정도 밝아졌고 어머니와 대화도 많아졌다."

- 킴이 커밍아웃 한 초기에 어머니와 갈등이 많지 않았나?
"커밍아웃 후 2년 가까이 냉전이 있었다. 그래도 내가 완충지대가 되었다. 최근에 어머니께서 '사람이 정체성 때문에 정서적으로 힘들면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대화중에 말씀하신 적이 있다. 킴이 예전에 자살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한 모양이다. 지금에서야 알고 보니 그 이유가 성정체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실제로 킴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에서 부모가 아들의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종교적으로 몰아붙여 자식이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한 것을 보시고, 킴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혹시나 이성애로 돌아오지 않을까 100%는 아니지만 1%의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 그래도 이제는 아들에게 동성애자라고 열등감을 느끼지 말고 네 길을 가라고 말씀하신다."

- 성소수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은 상처를 준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편하자고 남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처음에는 킴에게 '네가 편하자고 커밍아웃하냐!', '너 하나 희생하면 다른 사람이 모두 편해질 거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태도가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다수가 편하자고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자기생활에 충실하면서 꾸준히 커밍아웃 해야"

- 커밍아웃 이후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면 충격을 받으니깐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굉장히 정신적으로 강하셨다. 내적인 갈등도 보이시고 눈물도 흘리셨지만 결국은 이겨내셨다. 지금 내 동생을 봤을 때 남자가 남자를 당연하게 좋아하는 거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 반대가 상식이다. 부모와 대치 상황을 지속하는 건 좋지 않다. 부모님은 커밍아웃 이후 자식과의 관계가 단절될까봐 두려워하신다. 부모와 대치상황일 때 대화를 단절하고 관계를 끝내기보다, 자식으로서 할 일, 본분을 지켜가면서 대화를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부모가 자식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 남동생을 보면 부모님과 자식 간의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도리어 이런 성소수자 가족모임에 더 관심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커밍아웃 당시 부모가 나를 이해 못한다고 바로 박차고 나가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 몇 가지 덧붙일 말이 있다면
"내 동생은 나에게 문자로 커밍아웃을 했었다. 그래서 커밍아웃은 문자가 아닌 만나서 하는 게 좋다고 본다.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형제자매에게 먼저 하고 편을 만들어두면 중간에 중재자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생활에 충실하면서, 부모님에게 신뢰를 주면서 꾸준히 커밍아웃을 하는 게 더 좋다."

가족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커밍아웃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성소수자임은 감춰서 해결될 것이 아니라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보듬고 고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다. 가족이 그럴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준비할 수 있도록 당사자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 속에서 본인은 삶의 자신감을 얻는다. 가족도 좀 더 튼튼해진다.

덧붙이는 글 | 대화 내용 정리는 친구사이 회원인 데이님이 도와주셨습니다.



태그:#커밍아웃, #게이, #가족, #성소수자, #친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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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이종걸 입니다. 성소수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 공간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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