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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비를 꺼내는 할머니
▲ 남양면 보건지소 치료비를 꺼내는 할머니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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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자전거를 타던 여행자 한 분이 보건지소에 들렀다. 구면이었던 터라 반갑게 인사하고 그간의 근황을 물었다. 이번에 남해안을 따라 울릉도까지 가 볼 계획이라고 한다. 마침 동선이 고흥을 거치기에 사나이들끼리 뜨거운 만남이 가능했다.

"그건 그렇고, 여기에 우도가 있는 거 알아요?"  

제주도에 있는 우도가 여기 왜 있단 말인가. 전혀 처음 듣는 말이라 그 다음 말이 궁금했다. 

"화성시에 제부도라고 있거든요. 밀물일 때는 섬이 됐다가, 썰물이 되면 길이 드러나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요."

그러면서  전라남도 고흥군에는 '남도'의 제부도라는 '우도'가 있단다. 내가 근무하는 바로 근처에 말이다. 이런 신기한 곳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모르다니. 파랑새가 집 안에 있는지도 모르고 먼 길 떠난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된 기분이다. 누군가 '여행자는 현지인보다 아는 게 더 많다'라고 했는데, 그 말을 새삼 실감했다.

"다음에 한 번 가 봐요. 가까우니까."

이 말을 남기고 라이더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밀물 때라 섬에 못 들어간 그를 대신해 임무 하나를 떠맡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진료실에서 평소와 같이 근무를 하던 때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의자에 앉았다. 성함을 보기 위해 진료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주소란에 적힌 '우도'라는 두 글자가 순식간에 망막 안으로 확대되어 들어왔다. 여행자의 말이 씨가 되었나 보다.

박동심 아주머니는 이렇게 '우도'마을에서 온 첫 환자가 되었다. 바다는 마을 주민들에게 하루 두 번 문을 열어주고 두 번 문을 닫는다. 자연이 열어준 문을 통해 나온 아주머니는 문이 닫히기 전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때를 놓치면 1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월든 호숫가에 살면서 자연적인 삶을 온 몸으로 살아내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봐도 꽤 재미있는 광경이었겠다.

'그래, 문 닫히기 전에 들어가셔야지.'

다리가 저리다는 아주머니 몸에 여기저기 침을 놓는다. 15분이 지나고 침을 뺐다. 총총걸음으로 바다로 향하는 아주머니께 또 오시라는 얘기를 건넸다.

다음 날, 진료실에 온 분은 박씨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같은 동네에서 왔다는 김연옥 아주머니. 어제 왔던 박씨 아주머니가 소문을 낸 모양이다. 한번 가 보라고 했단다. 그 옛날 탐라국(제주도)에서 한양으로 관원이 번갈아 나오듯, 마을 주민들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이 분은 골반 쪽에 문제가 있다. 오른쪽 엉덩이의 근육이 심하게 뭉쳐 있어서 굵은 침으로 강한 자극을 줬다. 섬에서 만날 하는 일이 바닷일인지라 여기저기 문제가 많다.

편하게 누워 계신 김씨 아주머니와 어느덧 담소를 나누는 한방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우도의 신비가 조금씩 벗겨진다. 40가구에 100명 정도가 사는데 초등학교 분교도 있을 정도라니 은근히 큰 마을인가 보다.

"얘들이 얼마나 있다고 분교가 지금도 있어요?"

아닌게 아니라 현재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아이가 있단다. 그럼 걔 졸업하면 폐교하겠네? 그건 또 모르는 소리란다. 걔가 졸업할 때쯤 입학할 녀석이 있는데 지금 4살배기다. 또 생후 6개월 짜리가 입학 대기 중이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우도 마을 이장님이 곧 결혼할 예정이다. 이래저래 우도에 분교가 없어지기는 힘들게 생겼다.

바다 건너 오신 귀한 손님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15분이 금세 지나갔다. 12시 전에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이 분도 치료가 끝나자 총총걸음으로 진료실을 나선다. 내일은 우도에서 누구를 사신으로 보낼지 궁금해진다.


태그:#공보의, #보건지소, #고흥군,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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