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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 박는 모습을 보아도 막상 내 주변을 보면 그 시끄런 국회와는 전혀 다른 평범한 일상이 이어진다. 어쩜 저리 태평할까, 하는 뜬금없는 궁금함이 몰려들면서도 삶이란 그런 건가 보다 한다. 하지만 그건 늘 해왔던 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 세상 돌아가는 일에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것을 뜻하진 않을 게다. 왜냐면 알게 모르게 '너'와 '나'는 늘 무언가로 연결되고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이상섭이 그간 발표한 소설들을 모아 내놓은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실천문학사 펴냄, 2009). 그 안에 담긴 소설들은 마치 크고 작은 여러 터가 셀 수 없이 많은 실핏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사회라는 좀 더 큰 터에서 생기는 일과 가족이라는 아주 작은 터를 배경으로 삼아 벌어지는 일이 정말 자연스럽게 만난다. 저 멀리 국회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알게 모르게 어느덧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드는 것처럼 말이다.

 

'바닷가에 그 집에서, 이틀'은 사실 꿈도 꾸기 어려운 숨가쁜 일상과 드러누운 꿈들이 소설에 아니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리고 지금 우릴 불러 세워 말문을 연다.

 

숨 고를 틈 없어 나자빠진 많은 꿈들이 지금 거칠게 말문을 연다

 

꿈을 활짝 피워보지 못하고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 일상이 비정규직 문제와 마주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러 엄마가 거쳐 간 한 가정에서 경찰 아빠는 가정사 문제 뿐 아니라 '촛불'들에 주의를 기울여 살피느라 고민에 빠져 산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은 서민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일품이다.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보다 더 적나라할 수 없겠다 싶은 말들이 잔치라도 벌이는 양 쏟아내는 말, 말, 말을 이어 들려준다. 삶이란 그런 거야, 라고 말하는 이야기꾼 한 사람을 제대로 만난 것 같아 알게 모르게 스쳐가는 투박한 사투리를 미처 확인하지 못할 정도다.

 

"새똥만 한 식당 홀에 남자 하나만 달랑 앉아 있다. 첩첩 사람에 첩첩 그릇이 쌓이는 백 여사의 꿈은 오늘도 무너질 모양이다. 괜히 남자에게 눈길이 쏠린다. 양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근처의 직장인인 모양이다. 갑자기 양복 때문에 남자가 부럽게 느껴진다. 백 여사 광내기 위해서라도 나도 저렇게 정장을 한 채 피곤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아, 나에게는 정녕 달콤한 피로는 꿈이란 말인가. 와 이리 늦노? 동남해운에 퍼뜩 가라. 안 온다고 계속 전화질이다. 흡, 거기라면 남항? 이건 곤란하다. 거리도 거리지만 거리에 깔린 게 줄동창이기 때문이다. 혹시 길거리에서 초등학교 동창 하나만 만나도 내 처지, 대놓고 공개방송 하는 격이다. 거긴 너무 멀어, 그리고 나 지금 내부 사정이 안 좋아. 부러 아랫배를 싸쥔다. 미친놈, 지랄도 곱게 해야 봐주제. 얼른 갔다 와, 밥 묵고 싶으몬! 공짜밥 먹는 게 미안해 양심수 같은 마음으로 몇 번 도왔더니 이젠 아예 종업원 취급이다. (…) 국숫발 붓기 전에 나서는 게 몸에 이롭겠다. 이럴 때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신 아버지는 왜 안 보이는 거지?"(<그 집에서, 이틀>에서 '플라이 플라이', 15)

 

엄마, 아빠가 없는 상황은 아예 기본 배경인데다 늙으신 할머니뿐 아니라 언제 세상과 이별할지 모르는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한 여자 이름은... 묻지 말자. 그런 젊은 여자가 한 사람 있다. '그녀'를 소개하는 작가의 말을 넘나드는 '그녀'의 말과 삶이 매우 거칠다, 아니 투박하기 그지없다.

 

마야 누나인 그녀는 역사 속 이야기로만 남은 마야문명을 살려내겠다는 것처럼 마야를 살려내기 위해 바쁘게 산다. 제 몸도 아끼지 않은 덕에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지독한 세상만 경험하게 되었지만 그런 것들은 마야를 돌보는 일로 가득한 일상에 서둘러 파묻힌다. 마야를 위해서, 그래서 다른 이를 위해 허락하던(?!) 것을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 길'을 가게 된 동생과 그녀가 서로 깊은 눈길로 마주한다.

 

'사라지는' 마야와 '살아가야만 하는' 마야 누나가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삶이란 그런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나. 그렇고 그런 삶을 다 어쩌겠나, 하고 푸념하고 싶었나. 설명도 해명도 거부하고 무엇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서둘러 내뱉는 해설을 절대 거부하는 그녀의 몸짓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조용한 내 주변 어딘가에서 세상을  향해 거칠게 내뱉는 신음소리들이 오늘도 분명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을 안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빌린 돈 받아 휴가를 보내고자 친구를 찾아간 상만과 여자친구 혜주. 친구 동만 집에 간 이 두 사람은 정작 만날 사람은 만나지 못한 채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다 그 집 할머니와 간간히 드나드는 사람들을 만나 두서없는 말을 나누기 시작한다. 집안 구석구석을 주인처럼 살펴보고 바닷가도 다니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휴가를 보낸다. 이 둘이 나누는 거친 입담은 서로 다르면서도 같아 보이는 가정사를 주고받는 사이사이에서 대책 없이 툭툭 튀어 오르면서도 어느새 그 사이로 자연스레 스며든다. 바닷가 그 집에서 며칠 보내는 그 짧은 시간동안 둘은 거친 삶을,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을, 그 둘만이 기억할 거친 경험을 남긴다. 삶이란 그런 거다, 라고 말하고 싶은 이들 중에는 이 둘도 포함될 듯하다.

 

쓰리고 아파 더욱 애달픈 가족이 있고, 거칠고 암담한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법대로'를 들이대며 사람을 떠밀고 내달리는 세상이 있고, 부러 온몸으로 반대를 표시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드러내는 몸짓이 있다. 바닷가 냄새 짙게 나는 배경들이 두루 퍼진 이상섭 소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은 '작은' 가족과 '큰' 세상, '작은' 사람과 '큰' 사회가 맞물린다. 드넓고 거친 바다는 삶을 일구는 터이면서도 동시에 가늠할 수 없는 개개인의 삶과 복잡한 세상을 대신하기도 한다.

 

잡을 틈 없이 거세지는 빈부격차를 걱정하는 '작가의 말'을 남긴 지은이는 그의 세 번째 소설집인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을 세상에 내어놓고 아픈 가슴을 틀어쥐었는지도 모른다. 뭐라 달리 설명할 길 없는 여러 모습을 또 서로 얽어맨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자니... 소설은 그렇게 여기 이곳 거칠고 아린 삶을 그대로 이어받고 또 넘겨준다.

덧붙이는 글 |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이상섭 지음. 실천문학사, 2009.
이 서평은 제 블로그(blog.paran.com/mindlemin)에도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이상섭 지음, 실천문학사(2009)


태그:#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소설, #이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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