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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불러드릴까요?

 

먼저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하면서 한 때는 대학 교수셨고, 한때는 인기 방송인이었으며 또 한때는 정치인이셨던 선생의 호칭을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는 말씀부터 드리며 글을 시작해야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정답은 먼 데 있지 않더군요. 선생은 '링컨을 존경한다더니 이게 뭡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 "盧武鉉(노무현)에게 호칭을 붙이지 않는 이유부터 설명해야겠다. 미국의 初代(초대) 대통령은 워싱턴이라고 부른다. 소견이 좁은 탓인지는 모르나 '워싱턴 씨'라고 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밝히신 바 있으니, 제가 굳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도 아니면서 '김동길 교수님'이라거나 '부총재님'이라거나 무슨 위원회의 '이사장님'이라며 위선적인 허례로 공대해드려야 하는 불편한 고민을 말끔하게 해소시켜 주셨으니 선생의 혜안에 탄복할 뿐 입니다.

 

따라서 선생의 의견을 존중하여 '교수님'이라거나 '김동길씨' 같은 존칭 대신 '김동길'이라거나 혹은 '선생'이라고 불러도 과히 예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니 혹여 불편하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아! 사실은 불쾌하게 받아들이실 일도 없겠군요. 선생은 하고 싶은 말씀을 매일 글로 올리지만 글을 올리기만 할 뿐, 선생 자신에 대해 평가나 글에 달린 답 글 같은 남의 글 따위는 읽지 않는 분이시라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사족은 이쯤에서 접도록 하지요.

 

선생 눈안의 들보가 더 큽니다

 

이런 말씀 대단히 불쾌하시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려 우리 사회가 선생의 글에 일일이 반응을 보여야 할 만큼 선생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 아니시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드리고자 합니다.

 

교수질을 오래 해오셨지만 정작 선생의 위명이 높아진 것은 학자로서의 업적 때문은 아니며, 소위 미국물을 먹었다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어눌한 말투와 이제는 '김동길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콧수염과 나비넥타이 그리고 잦은 방송 출연 덕분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 고로 이 글 역시 어떤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 쓰는 격문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해 과대망상을 가진 한 원로 인사의 거듭되는 부적절한 추태에 대한 짜증스런 반응에 불과할 뿐이지요. 그렇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 때 철모르던 시절 선생을 흠모한 적도 없진 않았었습니다. 서슬 퍼렇던 유신독재와 신군부 치하에서의 청년에겐 김대중. 김영삼 같은 정치인은 물론이요 선생의 위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던 시절들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80년대 초반을 전후하여 대전에서 강연하실 때 기대에 부풀어 떨리는 가슴을 안고 경청한 적이 있는 데, 그 자리가 바로 제가 선생에 대해 가졌던 환각에서 깨어났다고 한다면 믿어지십니까? 선생께서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강연에서는 "내가 살아온 인생 역정이 곧 이 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다"며 장황한 자기 자랑과 포장에만 열중하셨지요.

 

그럴 리가요?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분들이 귀한 목숨을 바쳤고, 이 나라 민주주의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피와 눈물이 스며있는지 잘 알고 계실텐 데, 도대체 어쩌자고 그다지 늙지도 않으셨던 분께서 그런 망발을 늘어놓으셨던 것입니까?

 

선생은 글을 통해 "내가 보기에 노무현씨는 '순교자'도 아니고 '희생양'도 아니고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다 누렸고.."라며 노무현을 비판하셨지만 정작 교수로서 인기 방송인 그리고 국회의원 등으로 오로지 우리 사회의 양지만을 넘나들며 모든 영화를 누린 당사자는 선생 자신이 아니셨습니까? 선생의 누님인 김옥길 여사는 최규하 내각에서 장관까지 지내셨지요.

 

나는 선생이 이 땅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고초를 겪었고 어떤 숭고한 희생을 하셨는지에 대해 단 한 가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양지 만을 좆으며 시류에 영합해 온 자신의 비루한 삶을 돌아 성찰하지 못한 채, 남을 비판하기 만을 즐겨하십니다. 탁월한 독설은 그 말끝이 향하는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비수가 되지만 대다수 무관한 사람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요. 이런 무책임하고 탁월한 독설이 선생이 얻은 위명의 일등공신이었다고 평가한다면 너무 야박한가요? 남의 눈 안에 있는 티끌을 탓하기에 앞서 선생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노무현 투신의 의미 추모 열기의 실체

 

위에서도 말씀드린바 있지만 우리 사회가 선생의 발언에 일일이 반응해야 할 만큼 대단한 분이 아니십니다. 반면 연일 비난하고 계시는 노무현은 선생에 비한다면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지요. 마치 참새와 봉황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고인은 60년 헌정사에 단지 10명밖에 되지 않는 이 나라의 대통령 중 한 명이며, 비록 임기중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거나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임기 내내 그리고 임기 종료 후에도 우리 사회를 권위사회에서 민주사회로 진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분이라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생이 몇 편의 글을 통하여 노무현의 부도덕을 비난한 것처럼 저 또한 서거 이전까지 소위 '박연차' 사건에 대한 노무현의 포괄적 책임론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검찰 수사가 노무현을 표적으로 하여 치밀하게 전개된 기획수사라는 점을 인지했으면서도 그것이 '도덕성을'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라고 공공연히 언급했던 노무현 자신의 오만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하여, 수사과정에서 자행된 피의사실 공포 같은 검찰의 불법행위나 확인되지 않은 혐의 사실을 시시콜콜 언론에 흘려 인민재판을 받게 하는 비열한 책동도 애써 못 본 채했던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노무현이(정치적으로) 죽어야 이 땅의 민주주의가 산다'는 제목의 글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땅을 쳐야 할 만큼 후회스럽고 고인에게 죄송스러울 따름이지만요.

 

하지만 고인의 서거 이후 짧은 유서를 보면서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고인께서 투신한 것이 불법 행위 때문에 감옥에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도피가 아니란 사실과, 서거 직전까지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됐던 노무현의 비리 혐의라는 것이 단지 법적으로 따지자면 기껏해야 '포괄적 뇌물죄'라는 애매한 법조항만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실제로는 재임 중 불법 행위가 없었다는 사실, 논란이 언론에 의해 확대재생산 되기 이전까지 노무현 자신은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을 뒤늦게 짐작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고인의 투신은 검찰 수사를 기피하기 위한 자살이나 도피가 아니라 스스로의 도덕적 자부심이 붕괴된 것에 대한 비탄이며 자신 때문에 고초를 당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이며 권력과 검찰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항의이며, 사실 확인 보다는 선정적인 의혹 부풀리기에 앞장선 언론에 대한 항의이며, 자신의 책임은 뒤로 한 채 남을 비판하기만을 즐겨했던 바로 나 같은 사람들에 대한 책망이었으며, 민주발전과 민족 통일을 위한 역사의 발전을 퇴행시키는 이명박 정권의 만행에 대해 민주시민이 단합 궐기하기 바라는 살신성인이었다는 것을 과연 선생이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고인의 자살을 순교자로 미화시킨다고요? 오늘날 순교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오늘날의 순교는 고작해야 자신이 믿는 신으로부터 자신이 칭찬받고 복을 누리기 위한 희생에 불과할 뿐이고 그나마도 인류 구원 같은 숭고한 이념구현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이 원하는 교세확장을 위해 활동하다 죽으면 순교자 되는 세상이 대한민국 아닙니까?

 

노무현의 투신은 이런 세속적(?) 순교의 차원을 넘어선 것입니다. 진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난 장례기간 동안 거의 매일 분향소를 둘러보았고 장례일 서울 광장 노제 현장에 함께 했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시민과 자원봉사자들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자원 봉사자들은 선생이 짐작만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또 하나의 정부"에 의해 통제 받는 노사모 조직원(?)들보다는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처럼 '임기 중에 그리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믿어주고 지지해주지 않았던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라거나, '고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는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서' 같은 부채감을 느낀 사람들이 훨씬 많았었습니다. 선생은 이런 사람들의 진심을 아십니까?

 

500 만 명의 추모와 장례일 당시 백만 이상의 애도 물결에 대한 진실이 궁금하신가요?

노사모 전체 회원은 기껏해야 10만 남짓합니다. 이 수치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의 수치이니 참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폭락한 시점 이후에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노사모 회원은 기껏해야 수 만 명에 불과한 데 그날 서울 광장에만도 수십만의 군중이 운집했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노사모 회원들이 홍길동이나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썼거나, 정부 조직 같은 엄청난 조직력으로 인원을 동원할 경우에나 도달 가능한 수치입니다. 정부의 경우 국민장례위원회를 통해 실무를 지원했을 뿐, 장례기간 내내 공권력은 추모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광장을 봉쇄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이 담긴 인터뷰 방영을 제한하는 등 치졸한 대응으로 일관했으므로 조직적 동원이란 애초부터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 입니다.

 

노사모가 분신술을요?

턱도 없는 말 이지요. 혹시라도 나중에 선생이 믿는 하나님께 기도해 보시지요. 선생 장례에 전국에서 5만 명만 추모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 만약 그리 된다면야 선생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민심은 곧 천심이라고 합디다. 지난 1주일동안 전국의 추모 열기는 누가 시키거나 강요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무리 셈이 흐려도 짐작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것은 뒤늦게 노무현의 진가를 알게된 국민 대중의 깨우침이며 그의 무죄를 믿는 국민의 믿음이며 권력과 검찰의 폭거와 만행에 대한 항의였음을 과연 선생은 짐작이나 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실과 진실을 외면한 독설은 해악이 될 뿐

 

인생의 까마득한 후배로서 그리고 한 때 아주 잠깐 동안 선생을 흠모했던 사람의 한명으로서 갈수록 편협해지고 고루해지는 선생의 모습을 차마 못 본 듯 지나치기 어렵게 되어 결례를 무릅쓰고 감히 한 말씀 올립니다. 진실을 목도할 수 있는 혜안을 달라고 선생이 믿는 신에게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사실이나 진실 파악을 외면한 채 마음 가는 데로 휘갈기는 독설은 음담패설이나 낙서만도 못한 공해이며 패악입니다. 음담패설이나 낙서가 사람을 해치지는 않으니까요.

 

산남(山南) 김동길 선생님.

남은 생애 평안하시길 바라며 길고 지루하고 발칙하며 무례한 글 이만 접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전대통령서거, #김동길, #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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