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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벌써 4일이 지났네요!

지난 토요일 별안간의 비보에 하루 종일 TV를 보는 것 밖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서거 소식은 정말 부지불식간에 둔부를 흉기로 맞은 것

같은 커다란 충격으로 느껴 졌습니다.

속보를 보며 저는  "아냐! 이건 현실이 아냐! 뉴스가 잘못 된 것이야!" 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는지 모릅니다.

주말이 지나고 또 다른 주가 시작돼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건만

아직도 당신의 죽음은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X 세대였던 우리들에게 당신은 부산의 인권변호사였습니다.

시위현장에서 늘 없는 자, 소외된 자를 엄호하던 새파랗게 젊은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다 당신은 정치에 입문했고, 5공 청문회 스타 의원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당시 대학생이던 저는 기성 권력자들과 당당히 싸우던 당신의 그 기개와 정치 철학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당신의 정치 역정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습니다.

3당 합당을 거부했고, 부산에서의 연이은 낙선, 겨우 종로에서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이후 또 부산에서 낙선..

누구는 당신을 바보라고 불렀고..

누구는 당신을 오뚝이라고 불렀고..

누구는 당신을 철없는 공상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그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라도 좋았습니다.

그런 꿈을 꾸는 정치인을 대한민국 유사 이래 본 적이 없으니까요!

지역주의에 맞서서 장렬히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점점 더 당신에게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민주당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에서 영남 출신인 당신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였고, 이어 승승장구 당신은 제 1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공상이 상상으로, 상상이 꿈으로,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광주 무등 체육관에서 경선 승리에 벅차있던 당신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정말 존경할 만한 대통령이 없다고 늘 생각했는데, 당신의 당선은 우리세대가 존경할 수 있고,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대통령의 출현이었습니다.

 

호사다마라고 했을까요? 하지만 이때부터 당신과 저의 사이는 멀어졌습니다. 한미 FTA 추진, 이라크 파병 등 역대 정권과 별 다를 바 없는 신 자유주의 정책과 한미관계는 저를 실망하게 만들었고, 당신은 점점 애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과의 대 연정 제안은 이러한 애증 관계마저도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참여정부에 기대를 접고, 좀더 진보적인 정당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저로서는 완전히 등을 돌린 셈이지요!

 

그리고 작년 촛불이 점화 되던 때까지 현실 정치에 냉소적인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지지했던 정권에 바람맞은 기분 때문인지, 그냥 저자세로 MB 정부의 출현을 수수방관했습니다.

하지만 박원순 변호사님 표현대로 참여정부가 MB보다 얼마나 나은지,

얼마나 개혁에 가까운 정부였는지를 최근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겨우 깨달았을 무렵 당신은 다시 언론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것도 도덕적인 대통령이라 자부했던 당신이 비도덕적인 일로

그것도 돈과 관계된 스캔들로 언론의 중심에 섰더군요!

검찰의 수사가 편파적이고, 좀 심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한때 좋아했던,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못내 당신이 서운하고, 안타깝더군요!

그게 가족이든, 당신이든, 누구든, 조금만 더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더군요! 검찰은 수사만 하지 결과는 내놓지 못하고,

언론은 ~ 카더라 ~ 했다더라! 같은 시중 전단지 같은 내용만 양산하더군요!

지방의 조그만 기업체가 마치 몇 천억 대 대기업 비자금 사건처럼 다루어지고, 명품 시계가 어떻고, 뉴욕의 호화 맨션이 어떻고,

그리고 당신의 신병 처리는 차일피일 미루어 졌습니다.

그런 정황에서 저는 의구심을 느꼈고 또 한편으로 희망을 보았습니다. 재판정에서 진실의 실체를 두고 검찰과 진검 승부를 벌일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전에 5공 청문회 때 썩은 권력을 상대로 시시비비를 가리던 그 모습이 데자뷔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 기대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당신이 서거했다는 비보와 함께.

맞습니다! 당신의 말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 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낸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합니다.

아직도 규명해야 할 진실의 실체가 남아있고,

싸워야 할 대상이 남아있고,

더 좋아져야만 할 대한민국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당신의 마지막은 정말 파란만장했던 당신의 삶처럼

정말 노무현답다고도 생각해 봅니다.

죽음으로서 자신의 결백을 드러낸, 그리고 당신의 친구들을 위기에서 구해낸,

또한 아직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을

일깨워준 당신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감히 당신의 큰 뜻을 헤아릴 순 없지만 의도했든 안 했든 당신의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이 사회에 커다란 울림과 교훈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나 아쉽습니다!

"봉하 마을 이장" 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당신은 너무나 소박하고, 인간적인, 면모의 우리의 노짱이었으니까요!  이번 여름에도 예의 그 트레이드 마크인 밀집모자를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이 이다지도 제 가슴 깊이 와 닿을 줄은 몰랐습니다.

 

누군가 그런 애기를 하더군요!

"코끼리에게는 길이 없다!

코끼리가 가는 길이 곧 코끼리 길이다. 아니 코끼리의 길로 만들어진다. "

맞습니다. 당신은 평생 그 코끼리 길을 갔습니다.

아니 그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작은 코끼리가 되어 그 길을 따라 가려고 합니다.

진보의 방법으로, 좀더 뜨겁게 이웃과 사회를 끌어안고 가겠습니다.

그 길에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어디로 가시든 그 걸음 편히 가시기 바랍니다.


태그:#바보, #노무현,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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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학생들과 나누는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입니다. 영화가 중심이 되겠지만 제가 관심있는 생활 속에 많은 부분들을 오마이 독자들과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여럿이 다양하게 본 것을 같이 나누면 혼자 보는 것 보다 훨씬 재미있고 삶의 진실에 더 접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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