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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태안사 앞 연못과 3층 석탑.
 곡성 태안사 앞 연못과 3층 석탑.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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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산 태안사는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에 있는 절이다. 신라 경덕왕 때 적인선사 혜철이 창건한 사찰로, 구산선문 가운데 동리산파의 본거지였다. 태안사는 사찰도 사찰이지만 계곡에 걸쳐 있는 정자 '능파각'과 연못 가운데 세운 삼층석탑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일주문 옆 부도와 부도비도 보물로 지정돼 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높다.

태안사로 간다. 태안사는 호남고속국도 석곡 나들목에서 30여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보성강을 오른 편에 두고 18번 국도를 따라 석곡에서 압록 방면으로 달린다. 지난 달 벚꽃으로 흐드러졌던 강변도로다. 군데군데 원두막이 세워져 있어 운치를 더한다.

강물에서 다슬기를 채취하는 주민들이 눈에 띈다. 무릎 정도 차는 물에서 한 손에 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다슬기를 줍는다. 물이 맑아 다슬기들이 눈에 선한 모양이다. 하지만 허리를 잔뜩 구부렸다 폈다 하는 일이 쉽게 보이지만 않는다. 잠깐 허리를 구부렸다 일어서서 또 잠깐 허리를 펴는 게 여간 힘든 것 같다.

보성강에서 다슬기를 채취하고 있는 주민들.
 보성강에서 다슬기를 채취하고 있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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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도로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드니 오른쪽으로 태안사를 알리는 이정표와 함께 다리 하나가 놓여있다. '태안교'다. 이 다리를 건너 왼편, 순천 월등 방면으로 달린다. 3㎞쯤 갔을까. 폐교된 터에 '남도사진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종권이 운영하는 곳이다. 밖에는 철따라 피어날 야생화가 둥지를 이루고 있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다양한 야생화를 한두 그루씩 고루 갖추고 있다. 푯말로 만들어 놓은 작은 이름표가 정겹다. 전시관 안에는 남도의 비경을 담은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다.

사진관을 나와 다시 태안사 방면으로 향한다. 오른편에 초가와 어우러진 물레방아가 눈길을 끈다. 내려서 보니 쉼터다. 논물을 그대로 물레방아로 흐르게 해놓은 게 다른 곳과 다르다. 부러 만들어 놓은 것인데도 인공적인 것 같지 않은 것이 훨씬 더 정겹다.

태안사 가는 길. 양 쪽으로 뿌연 먼지가 내려 앉았다.
 태안사 가는 길. 양 쪽으로 뿌연 먼지가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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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태안사 입구다. 고속국도 나들목에서 태안사 입구까지 해찰을 하면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참 좋은 길이다. 큰 느티나무가 서 있는 이곳에서부터 태안사까지는 2㎞ 남짓.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진다. 비포장 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볼 요량으로 차를 세운다. 그런데 웬걸. 자동차 3대가 나란히 지나더니 하얀 먼지를 일으킨다.

나도 모르게 손을 코와 입으로 가져간다. 잠시 뒤, 먼지가 가라앉는가 싶더니 차 한 대가 또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번엔 두 대가 용용하게 먼지를 휘날리며 내려온다. 걷고 싶은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러고 보니 석가탄신일이다. 평소보다 절로 향하는 자동차들이 눈에 띄게 많다.

그냥 돌아갈까 잠시 망설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 틈에 끼어들어 차를 타고 숲길로 들어간다. 태안사에서 내려오는 차들을 피해 뿌연 먼지 사이를 뚫고 능파각 앞에 닿는다. 쉬엄쉬엄 걷던 호젓하던 숲길은 간 데 없다. 고로쇠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잎사귀엔 먼지가 무성하게 내려앉았다. 잎사귀가 노랗게 질려있는 것 같다.

예슬이가 태안사 능파각 아래 계곡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다.
 예슬이가 태안사 능파각 아래 계곡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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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파각을 지나 절로 향하는 숲길로 들어선다. 그제서야 물소리, 새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잠시 마음을 풀어 숲에 기대 놓는다. 길도 여러 갈래다. 자갈 깔린 숲길도, 풋풋한 흙길도 아름답다. 굵직한 돌을 깔아놓은 길도 보인다. 숲길 따라 만들어 놓은 돌계단은 극락으로 향하는 계단 같다. 그 돌계단에 예슬이가 주저앉는다. 다시 길을 가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다.

하긴 절을 보러 온 것도 아닌데, 서두를 이유가 없다. 마저 주저앉아 다리를 편다. 사방 들꽃에 일일이 눈을 맞춰본다. 쑥스러운지 하늘색 꽃이 나풀거리며 눈길을 피한다. 아름다운 숲길이다. 갓 만난 남녀가 이곳에 왔다면 금방이라도 사랑이 활짝 피어날 것 같다.

연등을 단 경내는 신자들로 북적인다. 삼층석탑이 세워진 연못가에도 차들이 주차돼 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지 않고 부도밭과 연못을 돌아 다시 차에 몸을 싣는다. 먼지 날리는 길을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가고만 싶어진다. 서둘러 절을 빠져 나온다.

먼지 날리는 숲길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조태일 시문학기념관도 그냥 지나쳐 나온다. 밖으로 나오니 맑은 하늘이 반긴다. 숨통도 좀 트이는 것 같다. 석가탄신일에 절에 걸어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방금 군내버스에서 내려 태안사 방면으로 걸어가는 한 할머니가 걱정이다. 어떻게 먼지 사이를 뚫고 걸어가실 것인지….

태안사 숲길. 능파각에서 부도밭으로 가는 길이다.
 태안사 숲길. 능파각에서 부도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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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숲길. 차가 다니는 바깥 길과 달리 호젓함이 느껴진다.
 태안사 숲길. 차가 다니는 바깥 길과 달리 호젓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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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태안사, #동리산, #곡성, #능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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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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