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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추석이다.
달력에 동그라미 해 가며 며칠 전부터 어머니에게 추석이 몇 밤 자면 오는지 알려 드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동지섣달에 무슨 놈의 추석이냐?”하신다. 어머님의 달력은 늘 얼어붙는 한 겨울, 동지섣달인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어머님의 삶은 늘 한겨울이다. 어머님의 아련했던 옛 기억, 추석을 되살리고 싶어서 송편 빚을 준비를 하고 햅쌀밥을 해 드리기 위해 논에 가서 제법 익은 나락 두 단을 베어 말렸다. 물에 불리는 팥은 어느새 불그레하게 우러났다. 

 

오전에는 산을 헤매면서 산밤을 따고 다래도 땄다. 산골짜기 개울에 걸쳐서 주렁주렁 매달린 다래는 말랑말랑하게 익기 시작했다. 초여름부터 어머니가 다래 따러 가자고 수도 없이 보챘던 것이라 이제야 어머니께 맛을 보여 드리는 구나 싶어 가시에 팔목이 긁히는 것도 모르고 다래넝쿨을 잡쳐가며 땄다.

 

초가집 낮은 호롱불로 가난을 목도리처럼 두르고 사셨던 옛 사람들의 어렴풋한 흔적을 제쳐가며 주인 잃은 지 수 십 년 된 늙은 밤나무를 탄다. 한낮인데도 덕유산 기슭 정적만이 감도는 산비탈을 더듬으며 어머님 추석을 되살리기 위해 밤을 주웠다.

 

오늘 아침에 기력이 부쳐 일어나지를 못하고 눈만 겨우 떴다 감았다 하시던 어머니에게 내년 추석이 기다려 줄지는 알 수 없다. 아무도 모른다. 어머니 앞에 추자와 밤과 다래를 펼쳐 놨다. “아이가. 이기 먹꼬?” 하시는 어머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플라스틱 김치 통에 물을 가득 담아 드렸다. 어머니는 눈치로 알아보고는 손도 씻고 밤도 씻고 다래도 씻는다. 하염없이 씻는다. 또 동지섣달이다. “동지섣달에 웬 다래가 다 열리냐?” 하신다.

 

다시 뒷산에 올라 솔잎을 따 왔다. 어머니는 뒷마루에 오줌 누러 가셨다가 변기에 올라가지 못한 채 옷에 오줌을 눠 놓고는 모로 쓰러져 계셨다. “야야... 나 좀 올려줘라. 내가 기운이 없어 요개를 못 올라간다.” 뼈만 남은 어머니 엉덩이 밑으로 손을 넣어 “하나아...두울 어이싸” 하면서 높이 5cm 의 변기에 올려 드린다.

 

팬티와 바지에 묻은 오줌을 보여줘도 “오줌 안 쌌다”며 극구 팬티와 바지를 거기 놔 두란다. 오줌 안 쌌으니 다시 입으시겠단다.

 

 

송편 소를 만들 팥을 솥에 넣고는 장작불을 모은다. 장작불이 훨훨 타 오르는데 어머니는 물에 젖은 낙엽처럼 방구석에 모로 누워 혼몽한 미망의 세계로 떠나셨다.
“아이고오. 누워 있능기 젤 편하구나.”

덧붙이는 글 | 없음


태그:#치매부모모시기, #치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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