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3 10:56최종 업데이트 24.05.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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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에서 최신 금기어 : ESG”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 지난 1월 9일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 월스트리트저널


"다수의 회사가 더 이상 ESG라는 세 글자를 말하지 않는다."

지난 1월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미국 기업에서 최신 금기어 : ESG"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고 이미지도 상당히 직감적이다. 손으로 입을 막고 눈도 가린 일러스트다. 최근 유행하는 정치 언어로 표현하면 '입틀막' '눈틀막'이다. ESG를 말하지도, 보지도 말하는 의미로 읽힌다. 기사 제목, 일러스트, 시작 글만으로도 ESG는 미국에서 '금기어'라는 인상을 이 기사는 전달한다.


2004년 처음 등장한 ESG(Environmental 환경, Social 사회, Governance 지배구조)라는 용어는 2006년 책임투자원칙(PRI)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ESG는 당초 투자자 관점에서 고안된 용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주도, 바이든 집권, 코로나19 팬데믹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전 세계에 '광풍'을 일으키며 주류로 부상했다. 그리고 기업, 시민사회, 정부 등 다양한 조직들이 ESG를 자신들의 미션과 전략 속에서 변주해 가며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런데 ESG 회의론이 고개를 들더니, 최근에는 ESG 퇴출이라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옳다면, ESG는 탄생 20년 만에 중대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ESG 회의론의 실체와 근거는 타당한가. 경제‧시장‧정치의 맥락 속으로 들어가 보자.

ESG 회의론의 진원지는 자본주의의 심장 격인 미국이다. 2022년은 코로나 팬데믹이 꺾이고 경기회복이 예상되었던 해다. 하지만 재난지원금 지급, 임금 상승, 공급망 차질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천연가스와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등 고물가가 지속됐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고물가 대책으로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했고, 경기는 침체했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 ESG 신규 펀드는 감소하고 자금도 급격히 이탈했다. 2022년 2분기부터 순유출이 발생해 2023년 말까지 지속되었다. 2023년 4분기에는 세계적으로 ESG 펀드가 순유출되었는데,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51억 달러, 12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직접적인 원인은 수익률 감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업들의 주가는 급등했고, 이들 기업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했던 ESG 펀드의 수익률은 감소했다. 이에 더해 금융상품의 그린워싱(가짜 친환경) 규제는 신규 ESG 펀드 설정에 부담을 주었다.

'수익'은 ESG 경영과 투자를 지속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부진한 시장 상황은 ESG의 주류 부상을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미국 내 다양한 보수 세력들에게 ESG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명분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조직화된 '반 ESG' 캠페인으로 기업과 금융기관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미국 내에서 'ESG는 금기어'라는 암묵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ESG 백래시(역풍)' 현상, 이로 인한 ESG 회의론의 확산은 반 ESG 캠페인에 기인한다.

악의적 ESG 공격자들
 

2023년 3월 9일(현지시간)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워싱턴DC에 있는 의회 의사당에서 퇴직연금 투자시 ESG 요소를 고려하도록 하는 바이든 행정규칙을 막기 위한 결의안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의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ESG를 진보 담론으로 인식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미국 사회에서 기후변화와 불평등, 빈곤 등 모든 환경‧사회 문제를 포괄하고 있는 ESG 이슈는 진영 투쟁의 최전선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정치 역학 구도에서 기업과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ESG 행동은 전통적 보수주의자 시각에서는 '비즈니스의 정치화'이다. 즉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전략가인 앤드류 윈스턴은 ESG를 공격하는 부류를 다음과 같이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 기득권 전통주의자(ESG에 중점, 악의) ▲ 사회적 보수주의자(지속가능성에 초점, 선의) ▲ 진정한 비평가(ESG 초점, 선의) ▲ 정치적 착취자(지속가능성 중점, 악의).

이 중에서 기득권 전통주의자와 정치적 착취자가 ESG에 대한 악의적 공격자이며, 반 ESG 캠페인 주도자다. ESG 투자에서 배제되거나 기후대응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화석연료 및 총기 제조 기업들, 주주 우선주의 및 단기 이익 투자자들은 기득권 전통주의자에 속한다. 공화당 정치인, 인종‧성 차별주의자들은 정치적 착취자들이다.

반 ESG 캠페인은 반 ESG 입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기후위기 컨설팅 회사인 플레이아데스 전략(Pleiades Strategy)은 반 ESG 법안이 "화석연료 기업, 총기 제조업체 등을 선호하는 고위험 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기후변화, DEI(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 노동자 권리 등 비즈니스 관련 주제에 대한 기업의 참여를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분석한다.

플레이아데스 전략이 발간한 '2024 반 ESG 주 법률 전망'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 1월 말까지 미국 38개 주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책임 있는 금융'을 공격하는 318개의 법안을 제출했고, 17개 주에서 37개의 반 ESG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가결된 대다수 법안은 기업, 노동, 재무 담당자, 환경론자들의 강한 반대로 법안의 범위가 축소됐다.

세계적 로펌인 모건루이스는 ESG와 관련한 다양한 규제(반 ESG 규제, 친 ESG 규제)들을 다음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 보이콧 입법 금지 ▲ ESG 기반 차별 금지 ▲ ESG 고려 금지 ▲ ESG 고려 요구 ▲ ESG에 기반하여 투자를 금지. 이중 앞의 3가지 유형은 반 ESG 규제고 뒤 2가지 유형은 친 ESG 규제다.

반 ESG 법안의 핵심 대상은 '금융기관'이다. 금융기관이 ESG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넷제로(Net Zero) 관련 금융 이니셔티브인 '글래스고 금융연합'(GFANZ), 이 중에서 넷제로 보험연합(NZIA)은 공화당 집권 주 정부 법무장관들과 정치인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합의 활동을 미 연방 반독점법 위반 가능성으로 압박하자 30개에 달하던 회원사는 11개로 대폭 줄었다. 창립 멤버들이 대거 이탈할 정도였다.

침묵과 탈퇴, ESG 포기 아니다

반 ESG 캠페인으로 인한 기업과 금융기관의 ESG 침묵과 이니셔티브 탈퇴 등은 ESG 회의론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해석이다. GFANZ를 탈퇴한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 넷제로 달성을 위한 정책과 활동에는 변함이 없다고 천명한다.

블랙록 래리 핑크의 'ESG 용어 사용 전면 중단'도 사실 'ESG의 정치화'로 인한 논란 피하기다. 공화당 집권 주든, 민주당 집권 주든 미국의 모든 주가 블랙록의 큰 고객이며, 모든 주들이 소유하고 있는 공적자금은 포기할 수 없는 비즈니스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블랙록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모든 글로벌 금융기관에도 적용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결정은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일 뿐 ESG 회의론 때문이 아니다. ESG를 내용상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실제로 투자분석 플랫폼인 모닝스타 다이렉트에 따르면, 블랙록의 ESG 운용 자산은 부진한 수익률, 반 ESG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2022년 말부터 2023년 말까지 총 53% 증가했다. 또 <블룸버그>에 따르면 투자은행, 자산운용사 등의 펀드매니저 및 리스크 관리 책임자를 대상으로 한 ESG 데이터 예산 설문조사에서, 반 ESG의 영향권인 북미 금융회사의 응답자가 거의 절반임에도 92%가 ESG 데이터 비용 증가를 예상했다. 이는 ESG 회의론에 대한 좋은 반박 근거다.

ESG 회의론은 아직 미국에 한정될 뿐 전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다. 유럽에서 ESG는 여전히 견고하고, 아시아 등 그 외의 지역에서 ESG는 확산 중이다. 2023년 4분기에 미국, 일본에서 있었던 ESG 펀드런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ESG 펀드의 순유입은 증가했다. 또 ESG 관련 일부 법‧제도‧정책에 대한 반대도 있지만 미국의 반 ESG 현상과는 결이 다르다. ESG에 대한 인정을 토대로 적용 대상과 시기와 강도 등이 문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ESG 생태계 위해 '기본법' 제정 필요
 

2023년 12월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3년도 제2차 ESG 경영위원회의에 앞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앞줄 왼쪽 네번째부터), 손경식 경총 회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도 ESG에 우호적이다. 물론 현 정부는 ESG 정책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공급망 실사법, ESG 정보공개 요구 등 ESG 이슈에 대응하기 위하여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기업들도 ESG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점차 더 커지고 있고, 수출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더 적극적이다. 정치적 논쟁과는 별개로, 우리나라에서 ESG는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요구받는 국제적인 시장 질서로 수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기업의 ESG 투자와 경영 수준을 말하자면 양적 성장 단계다. 우리나라의 총 ESG 금융 규모는 2022년 말 1098조 원으로 성장했고,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인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한 금융기관도 4월 1일 현재 226개에 달한다. 200대 기업 중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를 설치한 기업도 149개에 달한다.

그러나 속살은 여전히 형식적이거나 'ESG 워싱'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정애 국회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ESG 금융 규모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ESG 투자 중 위탁운용 규모의 98%가 ESG 워싱"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기업들은 회의 개최 수, 안건 등에서 ESG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ESG 활동을 질적으로 제고하기 위해서는 'ESG 선순환 생태계 구축' 관점에서 법‧제도‧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느슨하거나 파편적인 ESG 법과 제도는 시장에서 ESG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ESG 워싱 우려를 키운다.

그런 점에서 'ESG 기본법 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기본법에는 ESG 정보의 공시(기업, 금융기관), ESG 정보의 검증, ESG 평가, 분류체계, ESG 공공조달, 공급망 실사, ESG 워싱 방지 등과 관련하여 정부 및 시장 참여자의 역할, 규제와 지원 규정을 종합적으로 담아야 한다.

"ESG 용어를 잊어라, 그러나 개념의 힘 무시 말라"
   
인류는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경제와 사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배제적 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으로, 고탄소 사회에서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이다.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가치창출), ESG는 이 전환의 문을 여는,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키워드일 뿐이다. ESG가 이 열쇠로 부적합하거나 한계가 있다면 다른 열쇠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얼굴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일으킨 건 바람인데 말이오."

송강호 주연의 영화 <관상>에 나오는 명대사다. ESG 등의 용어는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일 뿐이며, '바람'은 기후위기, 불평등, 빈곤 등 '지속가능성 문제'다. 용어에 집착하지 말고, 용어를 탄생시킨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 올해 1월 25일 WSJ의 "ESG 용어를 잊어라. 그러나 개념의 힘을 무시하지 말아라"라는 기사 제목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운동장은 이미 ESG, 아니 지속가능성의 시대로 기울어졌다. ESG와 관련한 법과 제도와 정책들을 전 세계적으로 구축했고, 천문학적인 자본을 재생에너지 등 지속가능한 경제로 투입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속가능성 추구가 시대정신이며, 비즈니스의 명분이자 실제다. 지속가능성 이슈가 해결되지 않고 전 지구적 위협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시대 속에서 호흡하고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장구한 역사에서 ESG 시대는 하나의 시기일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반 ESG 주장자들, ESG 회의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ESG는 죽지 않는다. 다른 용어로 대체될 뿐이다."
 

이종오 /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 이종오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종오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지속가능금융과 지속가능경영 관련 법·제도·정책 구축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탈석탄 금융을 주도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의 변화가 ESG 활성화의 핵심이라고 보고 적극적인 관여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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