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6 12:10최종 업데이트 24.03.0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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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을 아시나요?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의 약자인 디엠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유저들이 1대 1로 보내는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국회로 가겠다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DM 보내듯 원하는 바를 '다이렉트로'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이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진솔하게 담은 DM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현직교사가 정부와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보내는 DM ⓒ 오마이뉴스

 
'백년지대계 교육 정책조차 정치적 이해득실로만 판단하는 무책임한 정부.'

현직 교사들이 이구동성 말하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한 줄 평이다. 임기 초 '초등학교 5세 입학'을 추진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계획을 접었을 때 깨달았을 줄 알았다.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할 때는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자세로 신중하고 치밀해야 한다는 점을. 하물며, '온 국민이 이해관계자'라는 교육 정책임에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임기 3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도 여전히 주먹구구식 교육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세부적인 로드맵이 없다 보니, 중간 다리 역할을 담당해야 할 교육청도 일선 학교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거칠게 말해서,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정부에서 내린 공문을 학교에 전달하는 것뿐이다.

당장 전국의 초등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는 '늘봄 학교'가 정치판에 휘둘린 가엾은 교육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본디 2025학년도 시행 예정이었던 사업인데, 정부의 방침에 따라 느닷없이 한 해 앞당겨지면서 대혼란이 빚어졌다. 학교마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아우성쳤으나, 정부는 마치 군사 작전하듯 밀어붙였다.

전면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각 시도의 교육청마다 업무를 담당해야 할 기간제 교사의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교육부는 기존 교사에게 '늘봄 학교'의 업무 부담을 일절 주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업무 담당자가 신규 채용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플랜B'도 딱히 마련된 게 없다. 자칫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가 서로 책임을 떠넘길 우려마저 나온다.

늘봄학교 시행이 코앞인데, 발만 동동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5일 경기도 하남시 신우초등학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아홉 번째,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간제 교사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남과 경북 등 농어촌 지역의 경우 구인난은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70세 이상의 퇴직 교원과 중등교사 등으로 채용 범위를 넓힐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까지 들린다. 전문성과 실효성을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결국 교육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당분간 담임 교사나 돌봄전담사에게 업무가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늘봄 학교'의 도입으로 기간제 교사가 '귀하신 몸'이 되면서, 육아 휴직과 병 휴직 등을 대체해 학급 담임과 교과 수업을 맡길 기간제 교사를 초빙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계약서를 쓰기 직전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버리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당장 시행은 코앞인데, 학교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늘봄 학교'의 전면 시행 방침이 초등학교를 들쑤시고 있다면, 정부의 돌발적인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발표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학사 운영에 직격탄이 됐다. 지난 2006년 이래 18년간 3058명으로 묶여있던 의대 정원을 무려 65%나 늘린다는 소식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이로 인해 설왕설래하던 모든 사회적 이슈가 한꺼번에 덮여버렸다.

신문과 방송마다 연일 정부와 의사단체와의 갈등을 다룬 뉴스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다. 향후 의사의 수요 추이와 같은 아전인수식 통계만 오가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작 중요한 국민, 곧 환자의 생명권과 건강권에 대한 책무성 등은 곁가지로 치부된 채 '치킨 게임'을 벌이는 중이다.

의대 2천 명 증원은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메가톤급 파괴력을 가진 뉴스였다. 한 아이는 "서울 한복판에서 지진이 났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한 동료 교사는 학교 안팎에서 재수생과 반수생, 자퇴생이 폭증하면서 덩달아 사교육이 창궐하게 될 게 불 보듯 환하다고 말했다.

듣자니까, 지금 최상위권 대학 이공계열 학과 재학생을 중심으로 반수 열풍이 시작됐다고 한다. 최근 어느 대학에선 전공 교과 수강생의 절반 가까이가 강의실을 떠나 노량진으로 향했다는 당혹스러운 이야기도 들린다. 어차피 한두 문제 차이로 의대 진학의 당락이 결정되는 현실에서, 2천 명 증원은 그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희소식'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에너지공과대학(KENTECH) 같은 과학기술인 양성을 목적으로 한 대학조차 크게 동요하는 모습이다. 과학과 연구가 좋아 선택했지만, 졸업 후 미래의 삶에 대한 상시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더욱이 현 정부 들어 R&D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과학도들의 의대를 향한 곁눈질이 빈번해진 모양새다.

'N수'를 미리 앞당겨서 경험하는 아이들

여느 전공 분야와 달리, 의대 정원 2천 명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일단 의대 진학에 성공만 하면 평생 풍요로운 삶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를 '도박'에 나서게 하는 동인이다. 3천 명에서 단숨에 5천 명으로 늘어나면서, 실제의 정원 수보다 더 크게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년 수능 응시자 세 명 중 한 명이 이른바 'N수생'이었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솔깃해 '물수능'을 기대하고 수능 시험장을 다시 찾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킬러 문항 없는 불수능'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기더니, 올해는 의대 정원의 증원을 미끼로 그들을 유혹하고 있다. '약발'은 작년에 견줘 훨씬 셀 게 분명하다.

올해 수능 응시자 중 'N수생'의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고작 킬러 문항 하나에도 애면글면하는데,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린다는 발표는 차라리 아이들에게 좌고우면 말고 다시 도전하라는 메시지다. 기존의 'SKY, 서성한, 중경외시'라는 학벌 구조에 '메디컬'이라는 옥상옥이 생겨 'N수'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학벌 구조가 층층이 세분화하고 완고해질수록 사교육은 꽃놀이패를 손에 쥐고 공교육을 마구 흔들어댈 것이다. 벌써 전국의 학원가에는 '초등 의대반'이 개설돼 성업 중이라고 한다. 발 빠르게 '메디컬 사관학교'라는 이름을 내건 학원도 있다.

학교에선 'N수'를 미리 앞당겨서 경험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졸업 후에 재수할 바에야 애초 고1 과정을 '리셋'하겠다는 경우다. 학년말이면 의대 진학이 가능한 내신 등급을 따내기 위해 미련 없이 자퇴를 결행하고 고등학교에 재입학하려는 거다. 후배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는 건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등급 경쟁에선 친구도, 선후배도 모두 '적'이다.

'그동안 뭐 했냐'는 질문
 

전공의 집단사직 돌입하나…정부·의료계 갈등 최고조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 필요성 및 의사 집단행동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1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의 모습. ⓒ 연합뉴스

 
'늘봄 학교'든, 의대 정원 증원이든, 이러한 연쇄적인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던 사안인데다 여론도 우호적이었고, 특히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다 실패한 경험을 반면교사 삼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른 꿍꿍이를 의심하게 된다. "그동안 뭐 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역대 정부 중에서 이렇게 '무대뽀' 정책을 남발하는 경우가 있었나 싶어요."

한 동료 교사는 대통령실 이전부터 고속도로 노선 변경, 언론 장악, R&D 예산 삭감, 요식적 장관 청문회, 기자회견 거부, 거부권 남용과 '입틀막'에 이르기까지 몰상식하고 비정상적인 일들이 횡행하는 현실을 이렇게 꼬집었다. 작년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잼버리 파행과 부산 엑스포 참패가 사소해 보인다고 말했다. 차라리 만신창이가 된 공교육이 가장 멀쩡하게 보일 지경이라는 거다.

그는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황인데도, 실을 바늘허리에다 묶어 쓰려는 듯 서두르는 이유는 오직 하나, 총선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슈를 이슈로 덮는 정치 공학의 일환일 뿐, 우리 교육에 미칠 파장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늘봄 학교'와 의대 정원 증원의 경우, 정부에 맞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안이다. 방과 후에도 학교가 자녀를 돌봐준다는 건, 기실 학부모에겐 최고의 복지 정책이다. '1시간 기다려 1분 진료받는' 현실에서 의사 수를 늘리자는 것 또한 온 국민의 숙원이었다. 준비 부족을 탓할지언정 취지엔 동의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아무리 총선이 중요하다지만, 국민의 삶과 미래세대 아이들의 교육보다 중요할 리 없다. 그 흔한 로드맵도 없이 덜컥 정책을 내놓고선, 국민을 반대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찬성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으로 내모는 건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태다. 취지에 부합하는 실효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교육을 정치적 이해득실에 활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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