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0 13:25최종 업데이트 23.10.2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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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사람들은 고통없는 죽음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고, 고통없는 죽음(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역사와 같이한다. ⓒ 셔터스톡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하지만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다. 단지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어림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겪을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고통없는 죽음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고, 고통 없는 죽음(안락사, Euthanasia)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역사와 같이한다.

지난 몇 년간 많은 언론에서 우리나라 시민들의 안락사 찬성률이 80.7%라고 하면서 이제는 성숙한 죽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라는 보도를 내놨다. 이와 관련해 이른바 '조력존엄사법'이라는 명칭으로 '의사조력 자살'을 허용하자는 법률안도 제출되었다.


여론조사에서의 80%는 대부분의 사람으로 보아도 무방하긴 하다. 하지만 인간이 고통 없는 죽음을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안락사나 존엄사 개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오염되고 왜곡되어 있는 개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안락사 찬성률이라는 수치는 의미가 없다. 즉 학술적인 개념으로서 안락사에 대한 찬성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죽음의 과정에서 고통받지 않고 싶고 인위적인 생명의 연장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존엄사는 넓은 의미에서 안락사 논의 범위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안락사'라는 용어가 오랜 역사를 갖는 반면 '존엄사', '존엄하게 죽을 권리'라는 용어의 탄생은 1975년 미국의 카렌 퀸란 사건이 계기가 됐다.

1975년 당시 21세였던 퀸란은 약과 술을 함께 마시고 항구적 식물인간 상태(PVS, Persistent Vegetative State)가 되었다. 6개월이 지난 후 부모는 퀸란이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연명의료의 중단을 요구했으나 의사는 이를 거절했다. 1976년 법원 판결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으나 퀸란은 9년간 더 생존하다가 사망했다. 이후 PVS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았고 이때부터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밖의 '존엄사' 사례로 7년간 PVS에 있다가 1990년 인공영양 공급 중단으로 사망한 낸시 크루잔 사건, 10년 이상 법정 공방이 이루어지다가 결국 15년 만에 PVS 환자에 대한 연명장치를 제거한 2005년 테리 시아보 사건이 대표적이다. 존엄사는 위와 같은 PVS 환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용어로, PVS 환자는 연명의료가 무의미한 임종환자와는 다르다.

안락사, 연명의료 중단, 존엄사 등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자가 '의사(醫師)'임을 전제로 논의가 된다. '의사조력 자살'도 넓은 의미에서 안락사 범위 안에서 논의가 이뤄지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환자가 스스로 사망에 이르는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차이가 있다. '의사조력 자살'이 환자가 스스로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더 보장하는 것처럼 언뜻 보이기는 한다.

의사의 임무와 환자의 자기결정권

위에서 보았던 모든 논의에는 의사가 관련된다. 그래서 의료행위 과정에서 의사의 임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엇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의사의 임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며, 고통을 덜어주고, 죽어가는 환자일 경우에는 사망할 때까지 곁에서 돕는 것(호스피스)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의사의 임무는 바뀐다. 모든 상황에서 생명유지 의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고, 적절한 처치 방법이 없으며,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고통의 연장을 의미한다면, 즉 임종환자라면 오히려 그 의료행위를 중단하는 것이 의사의 임무에 속한다.

반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의료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의사에게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환자의 생명을 연장해야 할 의무도, 무의미한 의료행위에 대한 요구에 따를 의무도 없다. 소위 선진국들이 임종환자가 아니라 임종기 이외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환자의 사전의료 의향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연명의료 결정법을 시행하는 이유다. 임종환자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른 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의학적으로 필요한 의료행위에 대해 환자가 그 의료행위를 승낙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의사는 충분한 설명을 통해 의료행위를 하기 전 환자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 환자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의료행위라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임종기 이전의 환자라도 의료행위를 거부하는 경우 그 뜻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환자 자기결정권의 핵심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자살할 권리는 포함하지 않는다. 소위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라 연명의료를 거부함으로써 죽음을 받아들이는 '반사효과'를 말하는 것이지 법적 권리가 아니다. 즉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자신의 생명을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 타인이 자신의 생명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권리는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사조력 자살은 직접적인 자살할 권리, 즉 자신의 생명에 대한 처분권을 인정해야 허용할 수 있다. 특히 촉탁‧승낙 살인죄와 자살관여죄를 예외 없이 처벌하는 현행 형법의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의사조력 자살을 언급하면서 독일, 스위스의 예를 들지만 스위스에서 의사조력 자살이 가능한 이유는 다른 특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달리 형법에서 자살 관여 행위를 원칙적으로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살관여죄를 예외 없이 처벌하는 우리 형법에서 독일과 스위스의 예를 드는 것은 부적절하다.

연명의료 결정법은 임종환자만 대상
     

임종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를 중단하는 것은 의사의 임무에 속한다. ⓒ 셔터스톡

 
현행 연명의료 결정법은 '임종환자'만을 연명의료 중단이 허용되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임종환자가 아닌 PVS 환자는 다른 질병 등으로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이 아니다. 대법원도 "원칙적으로는 환자가 의료행위를 거부하면 의사는 중단해야 하지만, 만약 환자의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라면 의사는 의학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하여 실제로는 같은 입장이다.

임종환자만 연명의료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임종환자가 되기 전에는 본인이 스스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의사에게 중단을 요구할 수 없다. 즉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연명의료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자유주의 국가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연명의료 결정법 제정 당시 임종환자로 대상 환자를 제한한 것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혹은 본인의 의사가 제3자의 영향을 받아 금전적인 이유로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연명의료 중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3자는 가족 등 금전적인 이해관계인이다. 고가의 연명의료 비용을 가족이 부담하거나, 본인이 부담하더라도 가족은 그 상속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따라서 가족의 동의와 무관하게 의사가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의사는 살인이 되고, 가족이 동의했다면 가족은 살인죄의 공범이 된다. 반대로 가족의 동의로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한다면 가족의 동의 없이도 의사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이 점은 환자 부인의 요청으로 의사들이 환자를 퇴원시킨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부인은 살인죄로, 의사들은 살인죄의 방조범으로 처벌된 사례로도 알 수 있다. 우리 연명의료 결정법은 가족의 동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그 대상인 임종환자에 대한 연명의료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연명의료 중단의 핵심 논의 대상인 PVS 환자는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PVS 환자가 사전 연명의료 의향에 따라 연명의료의 중단을 요청했다고 하더라도 중단할 수 없고, 그 비용도 환자 본인 또는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 PVS 환자의 경우 의료비 부담은 상상 그 이상이다. 임종환자가 아니면 살아야 할 의무를 부과하면서 그 비용도 부담시키는 셈이다. 우리 연명의료 결정법의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물론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지 못하니 죽고 싶으면 죽으라고 하는 비도덕성을 피하기 위함이겠지만, 계속 생명을 유지하는 대신 비용은 환자가 부담하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비도덕적이다.

죽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의료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해야 한다. 즉 연명의료 결정법의 개정 방향은 의사조력 자살의 허용이 아니라 임종환자 이외의 환자에게도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원하지 않는 의료행위에 대한 거부권이 환자 자기결정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의료행위 거부권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죽을 권리를 전제로 하는 의사조력 자살의 허용은 선후가 뒤바뀐 주장이다.

우리나라가 독일·스위스와 다른 이유
     

연명의료 중단이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환자가 의료비 걱정 없이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 셔터스톡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임종환자 이외의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고, 의사조력 자살까지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은 의료비를 의료보험이 거의 전액 부담한다. 그래서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때 의료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최소한 금전적인 고려 없이 온전히 환자 본인을 위해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필자는 20년 전 독일에서 이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배적인 견해와 달리 사람은 죽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다른 경제적·환경적 영향 없이, 특히 의료비에 대한 걱정 없이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독일의 경우 "우리는 사는 동안 국가와 사회에 의무를 지는 것이지 국가와 사회에 살아야 할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자유주의적 입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연명의료 중단이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환자가 의료비 걱정 없이 결정할 수 있는 환경부터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 이 문제는 임종기 이전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을 입법하는 데 실패한 하나의 이유였으며, 이제는 연명의료 결정법의 적용 범위를 임종기 이전 환자로 확대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의 전제조건이다. 독일, 스위스 등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원하지 않는 의료행위를 임종기 이전에는 강제로 받게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최소한 의료비는 걱정하지 않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의료행위를 거부할 수 있도록 치료 거부권을 보장하는 것이 옳은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답은 자명하다.

의사조력 자살의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가족의 지원 없이 본인 부담으로 의료비를 충당할 능력이 있는 중증 질환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조력 자살의 합법화는 의료비, 간병비 등 경제적인 이유로 환자가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하게 만드는 '사회적 타살'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명의료 중단이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 나아가 자살이 죽을 권리의 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환자가 의료비 걱정 없이 스스로를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부터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고 의사조력 자살이 입법화된다면 국가가 나서서 국민에게 자살의 선택을 강요하는 최악의 입법으로 기록될 것이다. 

[관련기사]
'죽음산업'을 아십니까... 한국서 '존엄하게' 죽을 수 없는 이유 https://omn.kr/25eqt

 

이석배 /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이석배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석배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한국생명윤리학회와 한국비교형사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독일 Martin-Luther-Uni. Halle-Wittenberg 법학박사이며, Martin-Luther-Uni. Halle-Wittenberg 의료-윤리-법 학제간 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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