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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무대.
 오디션 무대.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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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군산은 '시간여행 축제'라는 이름의 축제를 연다. 각 지방마다 차별화된 축제를 여는 걸로 알고 있다. 한동안 코로나로 멈추었던 축제가 다시 활발하게 열려 일상으로 돌아온 듯해 반갑다. 평범하고 무료함을 느꼈던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다. 몇 년 쉬었던 축제들이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다시 열리고 있다.

어제는 가을에 열리는 '시간여행 축제' 프로그램을 미리 만들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 날이었다. 군산의 끼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에 참가해서 구경하는 맛도 있다.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디션에 합격해야만 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구경만 하는 관객이었는데, 이번은 축제에 참가하는 예술인 자격이 주어져 오디션을 보아야 한다고 하니 참 생소하다. 시 낭송을 하면서 몰랐던 일을 알게 된다.

내가 몸 담고 있는 '한시예' 시 낭송 회원들은 문인 협회에서 주관하는 '시극(대사가 시의 형태로 이뤄진 희극)'을 한다. 얼마 후면 공연해야 하는 날을 앞두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맹연습 중이다. 그와 함께 '시간여행 축제' 오디션팀도 함께 연습을 해왔다. 80이란 나이에 오디션이라니, 생소하기도 했지만 주어진 일이라서 열심히 시를 암송하기 위해 외우고 또 외웠다. 나이 많음이 벼슬은 아닌데 틀리면 무슨 망신일까 싶어 더 열심히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를 낭송한다

시란 언어 예술이다. 아름다운 시어들은 인간의 깊고 깊은 사유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은 샘물 같은 언어들이 아닌지, 시인들의 시를 대하면서 나는 놀랄 때가 많다. 사람 마음을 울게 하는 언어, 그립고 애틋한 감정을 마음 안에 담고 위로 받고 행복해한다. 아름다운 시어들의 매력에 빠져 지내는 요즈음 참 편안하다.

늦은 나이에 나하고 놀 수 있는 시와 글쓰기가 있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다. 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걸 도전했던 날들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다. 나는 나에게 소중한 것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군산이란 지역에서 하는 행사라서 되도록 이 고장 시인의 시를 낭송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김영철 시인님의 시를 골라 외웠다. 시인은 시를 쓰고 누군가가 본인 시를 사랑해 주고 낭송해 주기를 기다린다는 말에 공감한다. 

어느 날 우연히 시인님의 시집을 두권이나 선물 받고 감사한 마음에 김영철 시인님의 시를 골라 외웠다. 시는 길지 않고 짧았지만 시어들이 조금은 생소하고 어려웠다. 시 낭송을 하기 위해 무대에 서려면 300번 이상을 읽고 외워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게다가 나는 암기에 약하다.  그러나 용기를 내여 꾸준히 하면 되겠지 하며 연습을 했다. 시 하나를 외우고 혼자서 낭송하는 시간이 좋다.

과정을 즐깁니다

드디어 오디션의 날. 군산의 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오디션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무대에 올라 외웠던 시를 빠지지 않고 낭송을 했다. 틀리지 않고 해냈다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나는 과정을 즐긴다.

시 낭송을 하는 분들은 나보다 훨씬 젊다. 젊은이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에게는 신선하다. 무대 오디션이 끝나고 카피숍에 앉아 수다를 떠는 시간도 퍽 유쾌하다. 서로의 삶을 향하는 용기와 덕담은 서로를 살게 하는 일이다. 같은 취향,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삶의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나는 지금 세속적인 것에서 멀어져, 정신적인 영역을 누리고 살 수 있어 마음 안이 가득해진다. 80이란 나이에 시 낭송 오디션을 해 본 참 생소한 경험이다. 나는 이 순간순간이 남은 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오디션, #시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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