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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정 전경
 경이정 전경
ⓒ 이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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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8기 태안군이 태안읍성과 안흥진성 등 문화재 복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정작 기존 문화재에 대한 보존 관리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이자 정자로서는 태안지역에서 유일한 문화재인 경이정에 대한 훼손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특히, 각인해 새겨놓은 편액은 훼손 정도가 심하지만, 관계 부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이정의 가치

태안읍민들에게는 친숙한 공간인 경이정은 1399(정종1년)년 태안읍성 밖에 지어진 관아 건물로 중국 사신이 휴식을 취하거나 방어사가 군사 명령을 내리던 장소다.

'경이'라는 이름은 "오랑캐를 경계하라"는 뜻으로 고려 말부터 왜구에 의한 피해가 극심했던 태안 지역의 상황을 반영해 지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왜구의 침략이 점차 줄어들고 중국 사신의 휴식 장소로 이용되면서 "항해하는 사신의 편안을 빈다"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또 매년 정월 보름날에 주민들과 방어사가 함께 평안과 태평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1925년부터 1927년 일제강점기 때는 주민들이 공부할 수 있는 야학당으로도 이용됐다.

이후 지역 노인들을 위한 쉼터로 이용되다가 1986년 충청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후 복원공사를 걸쳐 1988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저녁이면 태안군민의 안녕과 평안을 비는 중앙대제를 지내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편안한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다양하게 이용되며 여러 차례 고쳐 지은 흔적이 있긴 하지만, 조선시대 관아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역사적 가치 높지만, 관리 상태는?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로 태안읍 중앙에 위치해 많은 사람들이 쉬었다 가고 있지만, 최근 보존 상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다수의 인근 상인 및 주민들에 따르면 밤에 일부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곳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있는가 하면, 공놀이를 하는 어린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군청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음주하는 사례가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음주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면서 "계도는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늦은 시간 음주를 하다 보니 직접적인 계도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때 출입을 제한했을 때가 있었다. 가장 보존하기 쉬운 방법은 출입을 제한하는 것인데, 요즘 트렌드가 그런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지만 누군가 상주할 수도 없고 관리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어로 된 안내판까지 만들었는데 큰 효과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1일 현장을 찾았을 때는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으며, 음식물을 먹고 버린 일회용품 쓰레기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또 문화재 구역은 금연을 해야 함에도 라이터와 담배꽁초도 눈에 띄었다. 매일 오전 노인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어르신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지만 다음날이면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 

또 정자 및 바닥에는 아이들이 놀다 버리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BB탄 총알도 곳곳에 있었다. 기둥에는 낙서가 적혀있는 등 목재 기둥 곳곳이 훼손돼 있었고 처마에는 피스를 박아 나일론 끈을 고정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각인해 놓은 글자가 훼손된 편액
 각인해 놓은 글자가 훼손된 편액
ⓒ 이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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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글귀가 담긴 편액은 마치 누군가 고의로 훼손한 것처럼 훼손 정도가 심했다. 세월이 지나 부식되었다고 보기에는 다른 현판과 차이가 있었다. 다른 현판은 전체적으로 색이 바랜 데 비해, 해당 편액은 유독 글자만 훼손돼 있었다. 

그럼에도 관리 주체인 군청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듯하다. 군청 관계자는 지난 1일 기자와 함께 현장을 확인한 뒤에야 즉각 예산을 편성해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경이정은 목재 건축물로 화재에 취약하지만, 현장에 비치된 소화기들도 관리가 되지 않는 듯했다. 소화기의 압력계는 정상범위를 벗어나다 못해 0을 가르키고 있었고, 안전핀은 어디 갔는지 사라진 것도 있었다.
 
경이정에 비치된 기능을 상실한 소화기.
 경이정에 비치된 기능을 상실한 소화기.
ⓒ 이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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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훼손은 명백한 범죄

경이정이 모든 이들에게 개방돼 있고 오래전부터 주민들에게 친숙한 곳이다 보니 문화재라는 인식이 부족한 면도 있다.

통상 다른 사람 소유의 재물을 훼손하면 형법상 재물손괴가 적용된다. 문화재의 경우 특정 인물의 재산은 아니지만 재물손괴보다 더 무거운 법이 적용되는데, 국가지정 문화재의 효용을 해했을 시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시·도 지정 문화재의 경우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진다.

또 실제 훼손의 결과가 없더라도 고의성이 인정된다면 미수범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관제센터와 경찰, 지역의 자율방범대에 협조를 구하는 등 민·관이 함께 예방활동을 펼치는 방법도 고민해 보겠다"고 적극 대응의사를 내비쳤다.

유지보수와 관련해서는 "훼손 정도에 따라 편액 등 시급한 것은 군비로 먼저 조치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도비를 요청해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경이정, #문화재, #문화재 훼손,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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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을 대표하는 정론지 태안신문 기자 이성엽 입니다. 항상 지역의 발전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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