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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알게 되는, 새롭게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씁니다.[편집자말]
헬스장
 헬스장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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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이다. 기가 막힌 약속이 있다. 1층 입구 앞에서 친구가 손을 흔든다. 둘 다 가방이 두둑하다. 안에 들은 연장 탓이다. 우린 엘리베이터를 탔다. 8층을 누른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스피커가 둥, 둥, 둥. 울려퍼진다. 안에서 괴로운 신음 소리가 들린다. 침을 꿀꺽 삼킨다. 일일권을 끊는다. 문이 열린다. 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금요일 저녁, 청춘들이 뜨겁게 근육을 불태우는 곳. 이곳은 헬스장이다.

돌이켜보면, 운동에 투자하지 않는 20대들이 드물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간 친구도, 지방에서 일하는 친구도, 회사를 관두고 새로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도 헬스장은 무조건 다닌다. 과거엔 어떤 옷이 예쁘고, 어떤 화장품이 좋은지 얘기했다면 요새는 레깅스 세일 정보 나누기 바쁘다. 하이힐은 뒷전이고 러닝화 성능 얘기 뿐이다.

뭘까. 언제부터 이리 됐을까? 왜 클럽보다 헬스 클럽이 더 즐겁고, 인스타그램에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리지 않으면 허전할까? 오식완·오퇴완·오공완 등의 말은 잘 쓰지도 않는데. 왜 우리는 과거 20대들보다 더 '운동'에 집착할까?

[20대] 시대에 저항하는 근력

우리들의 건배사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언제 나이를 먹었다고, 벌써부터 "건강하자"를 외친다. 꼭 따라붙는 말이 있다. "우리 책임 져 줄 사람 없어. 나중에 독거노인 되면 비실비실하지 않게 지금부터 몸 관리 잘 해놔야 해." 예전엔 우스갯소리로 얘기했지만, 언제부턴가 말 속에 뼈가 있다.

실제로 1인 가구가 증가했고,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기조가 퍼지면서 청년들은 '내 몸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혔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맘도 없지만, 희생시키고 싶지도 않은 맘이다. 한마디로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인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미용이나 치장 이상의 의미다.

복근도 좋고, 훌륭한 삼각근도 좋다. 하지만 청년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나이 들어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만한 튼튼한 허벅지다. 더군다나 1인 가구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수입을 누군가와 나눠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20대들은 막연한 저축보다 확실한 몸에 투자한다. 청년들에겐 시대에 저항하는 근력이 있다.
 
조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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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누구 못지 않은 지구력

40대들은 얘기가 조금 달랐다. 과장님이 어느 날 물어보았다. "PT는 보통 얼마나 해?" 나는 신나서 떠들었다. "보통은 회당 6만~7만 원 정도 하는데요. 제가 한 곳은 좀 싸요. 회당 4만5000원? 최소 단위가 10회니까 45만 원이네요. 혹시 소개시켜드릴까요?" 과장님은 고민하다 이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다음에." 나는 아쉬워했다.

항상 점심시간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실 만큼 부지런한 분이었다. 이참에 배우시면 효과가 좋을텐데. 생각해보니 그는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가장이었다. 아이의 학원비로 45만 원은 거뜬히 낼지언정, 본인 몸에 그만큼 돈을 투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회사에서 조금이나마 운동하는 것이 그에겐 최선이었을지도.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대신 런닝화 하나를 소개시켜드렸다. "저희 PT 선생님이 추천해준 신발인데요. 이게 초보자들이 입문하기에 좋대요. 가성비도 괜찮고요. 퇴근 후에 30분 정도 하천 달리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한번 신어보세요."

과장님의 눈이 반짝 빛났다. 40대에게 운동이란,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많은 시간을 내긴 힘든 것이었다. 청년과 장년 사이에 낀 중간의 위치. 그러나 그들에겐 누구 못지 않은 지구력이 있다.

[50대] 놀라운 적응력과 유연성
 
중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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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50대 아빠가 이상한 춤을 춘다. 자세히 보니 춤이 아니라 운동이다. 강아지를 안고 스쿼트를 하고 있었다. 유튜브 홈트레이닝 영상을 틀어놓고 대충 따라한다. 하지만 영상 속 트레이너는 아빠의 잘못된 자세도 봐줄 수 없고, 중년의 속도에 맞춰주지도 못한다.

난 입을 연다. "아빠. PT 끊어줄까?" 당신은 고개를 젓는다. "아빤 아빠만의 방식이 있어." 몇 십 만 원씩 주고 운동을 배운다는 것이 영 맘에 안 드나보다. 물을 돈 주고 사먹는 것이 말이 안 됐던 것처럼. "운동이 별 것 있나. 산 오르고, 약수터 돌면 되는 거지." 하지만 엄마의 반대가 거세다. "아서라, 아서. 그것도 하던 사람이 하는 거지. 당신처럼 몸 굳은 상태에서 했다가 다치면 병원비가 더 나와."

아빠는 이도 저도 못 하는 신세다. 운동을 돈 주고 배운다는 것은 낯설고, 무턱 대고 산에 가기엔 몸이 굳었다. 가만 보면 아저씨들이 등산이나 족구, 야구 동호회에 드는 것도 이와 영 무관하지 않다.

친목의 목적도 있지만,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몸을 움직이는 것. 그것이 50대에겐 가장 자연스러운 운동의 형태다. 거창한 허례허식도 필요 없다. 그저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면 목적 달성이다. 50대들에겐 놀라운 적응력과 유연성이 있다.

오늘도 꿈틀대는 인생

마냥 운동은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세대마다 느끼는 '운동'의 개념이 다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불타는 금요일, 함께 헬스장에 입성한 20대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했을까?

싱겁게도 로비에서 각자 갈길을 갔다. 나는 하체를, 친구는 상체 운동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루틴을 방해하지 않는다. 알아서 목적을 달성한 뒤, 다시 입구에서 만나면 된다. 상당히 개인적이다. 운동이란 자고로 함께 땀흘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이 모습이 낯설지도 모른다.

운동에는 각 세대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 녹아있다. 어떤 삶엔 폭발적인 근력이, 또 어떤 삶엔 꾸준한 근지구력이, 또다른 삶엔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성이. 우리의 모든 인생이 살아서 꿈틀댄다.

1인 가구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알게 되는, 또 새롭게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씁니다.
태그:#헬스장, #PT, #20대운동, #중년운동, #50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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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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