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산업이 위축됐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요즈음, 국내에 몇 안 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침체기에서도 나름의 자구책,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에무시네마 양인모 프로그래머 에무시네마의 양인모 프로그래머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에무시네마 양인모 프로그래머 에무시네마의 양인모 프로그래머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편하고 자유롭게 예술영화를 향유한다'

권위적인 당대 종교원칙주의자를 비판한 르네상스 시대 사상가 에라스무스의 정신을 잇자는 의미가 담긴 에무시네마는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진 상영공간이다. 사실 위치로 보면 서울 광화문역에서 도보로 약 20분은 거리, 그것도 언덕길 구석이라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다. 이곳 상영 및 기획 전반을 담당하는 양인모 프로그래머를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공간과 기획 상영에 담긴 철학
 
영화관 역사만 치면 그리 오래된 곳은 아니다. 2010년도 전시 공연을 위한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설립된 후 리노베이션을 통해 2015년 1개 상영관을 마련했고, 2018년 1개 상영관을 추가했다. 초반엔 몇몇 제작사들의 영화 후반 작업을 돕거나 소소하게 독립영화를 상영한다는 취지였는데 복합문화공간의 정체성을 확장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방송국 피디 출신인 양인모 프로그래머는 영화정보 프로그램 연출 경력을 십분 살려 해당 공간을 활용한 다채로운 기획을 마련해오고 있었다.
 
"개관 첫해부터 저도 관객으로 자주 오던 곳이었다. 그때도 느꼈지만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운 상영관이랄까. 물리적으로 스크린과 거리도 그렇지만 창작자와 거리도 가까운 게 인상적이었다. 당시 SNS 홍보 내용이나 자료를 보면 친근감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처음 이 상영관이 생겼을 땐 아무래도 공간이 외진 곳에 있으니 스태프들이 같이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했다더라. 그러다 SNS가 강화되면서 오히려 잘 알려지게 된 것 같다. 한번이라도 다녀가신 분들이 입소문도 내주셨고.
 
역과 가까우면 접근성은 좋아지겠지만, 공간의 분리감이랄까 그런 건 없어진다. 극장 내부의 분리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보고 역까지 갈 때 거리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길을 걸으며 방금 본 영화를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반대로 극장에 올 때도 마음을 먹고 와야 하니 동기부여도 더 강해지고. 그만큼 이 극장이 희소하다는 느낌이 드는 거지."

 
단순히 지리적 특성이나 공간적 특성만 있는 게 아니다. 에무시네마는 상영관 위아래로 자리한 팡타개라지(공연장)와 루프탑을 활용한 각종 기획 상영으로 입소문을 탔다. 영화를 본 뒤 지하로 내려가 춤을 배우는 '씨네댄스'라든가 야외 루프탑에서 관람하고 대화하는 '별빛영화제', 실제 뮤지션의 공연을 보고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콘서트 프로그램 등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별빛영화제는 2018년 때 처음 시작했고, 2019년엔 1년에 10회 정도 한 것 같다. 그러다 주기성을 갖고 1주에 몇 회씩 하게 됐는데 그게 자릴 잘 잡은 것 같다. 작년엔 5월부터 10월까지 목, 금, 토, 일로 주 4회씩 운영했다. 처음엔 계절감과 맞는 영화를 틀다가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을 틀기도 했는데 다 좋아해 주신다. 50석 규모의 좌석이 거의 매회 매진이었다.
 
기획 상영은 여러 작품을 할 때도 있고 한 작품을 쭉 상영할 때도 있다. 최근 <몽상가들>을 진행했는데 시의성이나 계절성을 보며 하니 관객분들 반응도 좋은 것 같다. 또 '살롱데뷰'라고 상영 후 1층 카페에서 창작자와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최근엔 못했지만, 좀 다른 콘셉트로 재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이후 영화 모임을 한다면 새롭게 설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영화제에 가도 점점 프라이빗해지는 분위기가 있잖나. 이곳에선 창작자와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다. 특히 독립영화 창작자와 관객 간 거리가 예전보다 많이 멀어진 느낌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도 전처럼 서로 어울리는 느낌이 없고. 아무래도 소속사나 엔터 회사가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것 같은데, 에무시네마에서 희미해진 그 접점을 찾고 싶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에무시네마 전경.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에무시네마 전경. ⓒ 에무시네마


 
1020 세대가 열광하는 이유
 
이런 운영의 묘 덕일까. 에무시네마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당히 빠르게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예술영화관 지원금 외에 공기관 지원이 전무한 상황은 다른 예술영화전용관과 비슷하지만, 앞서 언급한 여러 기획들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관객 수는 오히려 2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물론 팬데믹 때 굉장히 힘들었다. 우린 좌석 수도 적어서 사회적 거리두기 운영 땐 매진된다고 해도 20석 수준이었으니. 임대료나 유지비, 인건비가 다 오르기도 했고. 그래서 영진위나 공적 자금 지원이 늘면 당연히 좋지. 하지만 개인적으론 거기에만 의존하면 극장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본다. 신규사업이든 지적 콘텐츠 생산자 역할을 잘 찾아서 부가가치를 만드는 게 올바른 방향이지 않을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게 되지 않게 극장 스스로도 연구하고 새 기획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OTT 플랫폼이 흥하는 시대라도 공간 경험의 희소성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공간에서 관람하는 것 자체가 부가가치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매주 기획 상영을 했다. 그냥 독립영화 쿼터만 채우려고 막 틀면 관객은 오지 않는다. 계절과 묶는다거나 어떤 화두를 제안하면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양 프로그래머는 에무시네마를 찾는 관객층 중 10대와 2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흔히 시네필들이 많이들 봤고, 아는 클래식 영화를 틀더라도 크게 반응하는 관객이 10대·20대라며 그는 "옛날 영화를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라고 짚었다.
 
"예를 들어 '개강 전에 꼭 봐야만 하는 영화들'로 제안하는 식이었다. 굳이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어떤 주제로 묶어 제안하면 그만큼 호기심을 가지시더라. 사실 30, 40대들은 기회비용을 따져서 관람하거나 이미 본인의 취향이 확고해서 낯선 건 안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10대 20대는 경험에 기꺼이 비용을 투자하고 어떤 인사이트(insight, 관점)를 얻어가겠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한창 영감과 경험을 강력하게 흡수하는 시기잖나. 저도 20대를 돌아보면 좋은 영화라는 걸 찾아다니며 보곤 했다. 그런 특성을 나름 우리가 이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영화의 시대가 끝났다며 자조적 목소리가 나오는 최근 업계 분위기를 그는 경계하고 있었다. 양인모 프로그래머는 "OTT 플랫폼과 극장이 서로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호보완하는 관계"라고 소신을 밝혔다.
 
"OTT 플랫폼을 많이 경험할수록 오프라인 경험이 절실해지는 것 같다. 소위 시네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돌이켜 보면 국내에 개봉 안 하는 영화를 컴퓨터로 찾아보곤 했지만, 극장에도 그만큼 많이 왔잖나. 다만 이런 희소성만 강조해서는 극장이 살 수는 없고 지금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어떤 인사이트를 제공할 것인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전 영화의 위기는 극장보단 창작 영역에 있다고 본다. 특히 독립영화계에서 창작자들의 힘이 적어지고, 지속성도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OTT로 돈이 몰리니 기성 창작자들이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독립영화 쪽에서 중소 제작사나 창작자들이 지속성을 갖고 작품을 만드는 게 그만큼 어려운 요즘이다. 단순히 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해당 영화를 지속할 수 있게 기다리고, 기회를 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에무시네마 양인모 프로그래머 에무시네마의 양인모 프로그래머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에무시네마 양인모 프로그래머 에무시네마의 양인모 프로그래머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같은 맥락으로 그는 영진위나 영상자료원 등 공적 기관에서 한국영화 라이브러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저예산 영화의 경우 개봉 후 3주 안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상영관에서 사라지는 환경인 만큼 공적 영역에서 해당 영화들의 판권을 일정 기간 보유해서 단체 관람, 영화제 상영 등에 적극 기여하게끔 해야 한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이나 단편들은 지금 어느 극장에서는 상영되고 있어야 한다. 프랑스에선 고전 영화에 대한 판권을 정부가 일정 기간 갖고 있거든. 다른 나라에서 협조 요청하거나 자국 내 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싶을 때 소정의 돈을 지불하고 언제든 틀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근데 한국은 판권 자체를 누가 갖고 있는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서 틀기 쉽지 않다. 유명 감독은 대기업에서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 큰 비용을 요구할 때도 있고. 공기관에서 5년이든 7년이든 판권을 보유해서 많은 관객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끔 하면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도 좋을 것 같다."  

에무시네마 예술영화 독립영화 한국영화 양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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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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