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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일보 창간호
 민족일보 창간호
ⓒ 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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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일보>가 창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모았다. 기성언론사에 비해 기자가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구조에서 이 같은 현상은 특이했다. 특히 장면 정부의 미숙한 정국 운영과 혁명과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자 이를 매섭게 비판하였다. 그것도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민족일보>는 파격적인 주제의 기획기사와 현지 취재로 지면 차별화를 도모했다. 혁신계 인사들의 칼럼(기고)을 통해 진보적 주장을 펴는 한편 '광야(曠野)의 소리'같은 고정란을 통해 독립운동가와 혁신계 인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사회면에서는 가난에 허덕이는 농민과 도시빈민들의 삶을 추슬렀으며, '가고파라 내 고향'연재물을 통해 통일의 염원을 담아내기도 했다. 

민주당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정치면의 단골메뉴 가운데 하나였다. 민주당에 대승을 안긴 7.29총선 때 민주당은 수많은 공약을 내놨다. 그런데 그 공약들 가운데 제대로 이행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오소백 부국장과 상의하여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은 공약들을 골라 시리즈로 연재하였다. 제목은 '45도 공약'이라고 붙였는데 공약한 대로 바로 서지 않고 삐딱하게 섰다는 의미에서 그리 붙인 것이었다. 제목 이름은 오소백 부국장이 붙이고 연재는 주로 내가 맡아서 썼다. (주석 13) 

<민족일보>의 공정한 논조와 시시비비가 신문의 선호도, 그리고 발행부수에서 기성 신문들을 추월하면서 권력의 촉수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무릇 독재자와 그 권력이 용서받을 수 없는 것 중에는 후임자들의 가슴 속에 악습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장면 민주당 정권은 이승만의 유산을 답습하여 혁신계에서 '2대악법'으로 규정한 악법제정을 강행했다. 

이승만 정권은 언론탄압의 목적으로 신문발행은 반드시 인쇄소 등록을 허가 조건으로 만들어왔다. 갓 출범한 <민족일보>는 인쇄소를 설치할 여력이 없어 서울신문사 발행인 오종식과 민족일보사 발행인 조용수 사이에 계약을 맺었다. 1961년 2월 3일자이다. 

그런데 <민족일보>가 창간하고 20여 일이 지난 1961년 3월 2일 갑자기 <서울신문>이 더 이상 인쇄를 못하겠다고 통보했다. 당시 서울신문사는 정부기관지여서 정부의 조종에 따른 조처였다. 정헌주 국무원 사무처장은 "이같은 조처가 언론자유를 논하는 문제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발뺌을 하고 나섰지만 정부의 탄압이란 것은 뻔한 일이었다. 

갑작스런 인쇄 중단 조치로 <민족일보>는 3~5일 사흘간 신문을 발행하지 못했다. 6일자부터는 민족일보사 인근 조선일보 인쇄소를 이용하여 발행하게 되었다. 4.19 시민혁명 1주년 만에 장면 정권이 자행한 반민주적인 폭거였다.

김자동은 어처구니없는 정권의 작태를 지켜보면서 이를 악다물고 정치 취재와 외신번역으로 날밤을 지새웠다. 당시 <민족일보>에는 외신부가 별도로 없고, 영어에 능한 기자도 드물어 주요 외신은 그의 몫이었다.  

창간 당시 4개 면 중에 외신면이 한 면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국제뉴스 비중은 높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민족일보>에는 외신부가 없었다. 나는 정치부에 소속돼 있으면서도 외신부 일을 겸하였다. <조선일보> 시절 외무부도 출입하고 했으니까 자연스럽게 내게 일이 주어졌다.

나는 외신기사 번역보다는 국제 문제에 대해 논평이나 해설성 기사를 주로 썼다. 논설위원 중에 영어를 잘했던 고정훈도 더러 해설기사를 쓰곤 했는데 내 마음에는 별로 들지 않았다. 차라리 이건호(李健鎬) 논설위원의 글이 훨씬 더 좋았다. 고려대 법대 교수로 있던 그는 <민족일보> 비상임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나중에 <민족일보>사건 때 그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주석 14)


주석
13> 앞의 책, 355쪽.
14> 앞의 책, 356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자동, #김자동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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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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