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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제 참가자들이 소지를 날리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있다. 지난 2월 4일 밤 광주 충효마을 당산제에서다.
 당산제 참가자들이 소지를 날리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있다. 지난 2월 4일 밤 광주 충효마을 당산제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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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날을 만나, 정성을 지극히 하여 정결한 제사를 올립니다. 원하옵건대, 마을이 평안하여 사람은 장수하고, 가문은 빛나게 해주십시오. 엎드려 바라옵건대 당산신께서는 강림하시어 갸륵하게 여기시고 부디 흠향하옵소서.'

축문을 읽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4일, 광주 충효마을의 당산제에서다. 제사상을 받은 당산나무는 수령 200년 된 마을의 느티나무다.

"몇 년간 코로나 탓에, 당산제 맥을 잇는 것도 힘에 부쳤습니다. 마을의 행사라기보다는, 어르신 몇 분만 모여서 지냈어요. 작년에는 저 혼자 나물 세 가지 올리기도 했습니다. 당산제의 맥을 끊지 않으려고요. 올해는 어르신들과 함께 다시 당산제를 지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김환우(광주광역시 석곡동 주민자치위원)씨의 얘기다.
  
광주 충효마을의 당산제 모습.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4일 밤 11시 30분에 시작됐다.
 광주 충효마을의 당산제 모습.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4일 밤 11시 30분에 시작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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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적은 종이, 소지에 불을 붙여 날리고 있다. 지난 2월 4일 밤에 행해진 충효마을 당산제에서다.
 소원을 적은 종이, 소지에 불을 붙여 날리고 있다. 지난 2월 4일 밤에 행해진 충효마을 당산제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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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마을 당산제는 밤 11시 30분에 시작됐다. 겨울 추위를 녹이기 위해 한쪽에 장작불도 피웠다. 제단에는 과일, 포, 나물, 고기, 떡, 밥 등 20여 가지가 차려졌다. 제례는 삼헌, 축문, 음복, 소지(소원지) 순으로 진행됐다.

제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당산나무 옆에 있는 마을회관에 한데 모여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었다. 지난날의 추억을 그리며 이야기꽃도 피웠다. 술과 음식을 먹고 나니, 새벽 2시쯤 됐다.
  
김환우 씨가 당산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소회를 말하고 있다. 지난 2월 4일 밤, 당산제를 끝내기 직전이다.
 김환우 씨가 당산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소회를 말하고 있다. 지난 2월 4일 밤, 당산제를 끝내기 직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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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당산제를 지내고, 집집마다 상도 차렸습니다. 사물놀이패 앞세우고 하루 종일 지신밟기 하면서 액땜도 하고요. 쥐불놀이도 했었죠. 90년대 초까지는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많이 간소화됐습니다."

김환우씨에 따르면 오래 전 정월대보름은 큰 명절이고, 마을의 잔치였다. 충효마을의 정월대보름은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제 준비로 시작됐다. 마을청년들이 모여 공동우물 청소를 했다. 기존의 물을 다 뿜어내고, 새 물을 받았다.

마을 입구에 금줄도 쳤다. 긴 대나무에 새끼줄을 내걸고, 한지를 꽂았다. 정갈하지 못한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였다. 상갓집 같은 데에 다녀온 사람도 지나지 못하게 했다. 당산제 참석도 막았다. 그만큼 당산나무를 신성시했다.

당산제를 주관할 당주는 일주일 동안 스스로 격리생활을 했다. 당산제 참가자도 반드시 목욕재계를 해야 했다. 제물 준비는 당주의 집에서 했다. 당주는 마을의 최고령자나 덕망 있는 어르신이 맡았다. 김환우씨의 아버지는 '단골' 당주였다.
  
복원된 충효마을의 공동우물. 마을의 옛 당산제는 청년들이 모여 이 우물을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복원된 충효마을의 공동우물. 마을의 옛 당산제는 청년들이 모여 이 우물을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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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두고 다시 한번 당산나무 주변과 마을 청소를 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공동우물에 촛불을 태운 조롱박을 띄웠다. 꽹과리를 앞세운 사물놀이로 당산제의 막이 오른다. 사물놀이패는 공동우물을 한 바퀴 돌며 액땜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했다.

제물도 사물놀이패를 따라 당산나무 아래로 옮겨졌다. 제관들이 따르고, 음식이 뒤를 이었다. 제물은 머리에 이고 옮겼다. 제물을 옮기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거나 해찰을 하면 안 됐다. 앞만 보고 가야 했다. 부정을 탄다는 이유였다.

당산제에는 남자들만 참여했다. 지금은 여성들도 참여한다. 음식 준비도 마을회관에서 남녀노소 다 함께 모여서 한다. 집집마다 찰밥과 나물 세 가지를 함께 장독에 올리던 모습도 옛 풍경이 됐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줄면서 달라졌다. 시대의 흐름이다.
  
충효마을 유래비각과 왕버들나무 군락. 충효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이다.
 충효마을 유래비각과 왕버들나무 군락. 충효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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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의 소나무 숲. 증암천변의 누정 환벽당과 솔숲은 충효마을이 품은 큰 보물 가운데 하나다.
 환벽당의 소나무 숲. 증암천변의 누정 환벽당과 솔숲은 충효마을이 품은 큰 보물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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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충효마을은 증암천을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과 경계를 이룬다. 마을 이름을 정조 임금이 내려줬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충장공 김덕령의 형제와 부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서다. 마을주민들의 자부심이 크다.

마을에 김덕령 장군의 생가 터와 부조묘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들나무 군락도 마을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다. 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누정 환벽당과 취가정 그리고 광주호반의 호수생태원도 충효마을에 속한다. 자연과 생태, 문화와 세시풍속이 한데 버무려지는 충효마을이다.
  
환벽당 앞으로 흐르는 증암천 풍경. 환벽당을 품은 왼편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마을, 가사문학관과 식영정을 품고 있는 오른편은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에 속한다.
 환벽당 앞으로 흐르는 증암천 풍경. 환벽당을 품은 왼편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마을, 가사문학관과 식영정을 품고 있는 오른편은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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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당산제, #충효마을당산제, #광주충효마을, #환벽당, #정월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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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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