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단순한 열정> 포스터 이미지

영화 <단순한 열정> 포스터 이미지 ⓒ (주)영화사 진진

 
지난해 3월 개봉한 오드리 디완의 <레벤느망> 이후 두 번째로 만나는 아니 에르노 원작의 영화화다. 2022년 노벨문학상 특수로 출판뿐 아니라 영상도 버프를 받는 것 같다. 작가의 대표작인 만큼 영화화는 오히려 <레벤느망>보다 1년 먼저이기도 하다. 자기 경험을 반영하되 일기장이 아니라 그 상황 하에서 본인이 품었던 생각들을 전달하려는 의도로 집필된 일련의 작업들은 (초창기엔 상당한 논란도 불러왔지만) 이제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기 위한 집요한 투쟁의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니 에르노의 작업은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단지 자기를 과시하거나 노출하고픈 일기장 공개와는 분명 다른 독자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그런 작가의 스타일을 가장 전형적으로 풀어냈다고 평가되는 대표작인 <단순한 열정>은 불과 60쪽 전후의 분량으로 단번에 끝까지 읽어 내려가기 딱 좋은 호흡을 가졌다. <레벤느망>의 원작인 '사건'은 24살 무렵 작가 자신이 (아직 낙태시술이 불법이던 시절) 임신중절을 위해 혼자 좌충우돌하며 겪었던 체험 기록이다.

그리고 <단순한 열정>은 그 이후 결혼과 출산, 이혼을 겪은 작가가 유부남과 가졌던 은밀한 시간 동안 느낀 심상을 기록하기 위한 작업의 결실이다. 그래서 엎치락뒤치락 시차가 뒤엉킨 두 작품이 개봉 시기로는 연대기적으로 조율된 셈이다. 그렇게 작가이기 이전 한 여성의 지난한 인생 궤적을 시간 순서대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책을 먼저 읽었다. 어딘가 다녀오는 기차 안에서 휴대전화 액정 들여다보는 대신 참으로 오랜만에 책을 들었던 셈이다. 물리적인 분량의 간략함이 그런 호기로움에다 힘을 보태준 것 같다. 1시간 반 남짓한 이동시간 동안 본문과 작가 연보를 독파하고 책에 같이 수록된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훑어보다 기차에서 내렸다. 며칠 후 새벽에 영화를 봤다. 소설을 읽던 시간과 영화를 보는 데 소요된 시간은 얼추 비슷했다. 신기하다면 그럴싸하게 신기한 일이다.
 
제목 그대로 열병 같은 '단순한 열정'의 연대기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 이미지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 이미지 ⓒ (주)영화사 진진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며 시인에 대해 연구 중인 엘렌에게는 한창 뜨겁게 만나는 애인이 있다. 이혼 후 어린 아들 폴과 함께 지내던 엘렌은 그와 만난 후 필사적으로 일상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겉보기엔 별다를 바 없을 뿐 뒤늦게 찾아온 열정적인 사랑에 푹 빠져 헤어날 생각이 없다.
 
엘렌의 시간은 ① 그의 연락이 오기만을 무한정 기다린다.
②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필사적으로 그를 맞이할 준비에 전념한다.
③ 그와의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필사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④ 그가 떠나면 기약 없는 연락을 기다린다.
무한 반복으로 순환되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엘렌의 운명적 사랑 상대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 심지어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국인이다. 둘의 만남은 항상 그 남자, 알렉산드르의 연락과 방문으로 이뤄진다. 엘렌은 그가 찾아와 함께 정사를 나누고 시간을 보낼 때마다 공들여 몸단장을 하고 아들을 다른 곳에 보내는 등 지극정성이지만 그에게 매달리거나 아내의 자리를 요구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학문적으로나 그를 만나기 전 삶의 방식이나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전형과도 같던 엘렌은 이제 스스로 억누를 수 없는 '단순한 열정'에 몸과 마음이 통째로 종속된 상태다.
 
엘렌은 과연 이 관계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다. 알렉산드르가 아내와 장기간 여행을 떠난 기간 내내 그를 애써 상상해 보고, 같이 밤을 보내자며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 그런 그녀의 변화를 지인들은 걱정하고 완벽하게 유지하던 균형에 균열이 가면서 아들 폴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훌쩍 남자는 떠나버린다. 엘렌은 알렉산드르가 돌아간 모스크바에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들르기도 하지만 재회는 일어나지 않는다. 몇 달이 지나 간신히 이전의 일상을 회복한 엘렌에게 문득 알렉산드르의 전화가 걸려온다.
 
과연 간신히 그와 처음 만나기 전 평상심을 겨우 되찾은 엘렌은 알렉산드르와 다시 만날까? 그 답은 소설, 그리고 영화를 통해 확인하면 될 일이다.
 
'자전소설'의 영화화 과정이 겪은 난관과 원작과의 대비
 
영화는 소설의 충실한 영상화에 1차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몇몇 부분에선 마치 뮤직비디오 배경영상을 깔아 둔 채 가사가 흘러나오듯 소설의 문장이 고스란히 펼쳐지는 수준이다. 특히 도입부는 TV 문학관 영상소설 버전에 가깝게 원작 감흥을 되살린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가 분명히 차이를 드러내는 구석도 없지 않다. 원작이 에세이처럼 독백조로 전개되는 서술방식이기에 90여 분의 드라마를 동일한 문법으로 끝까지 몰고 갈 순 없는 노릇이다. 마치 좀비 아포칼립스 물의 바이블 중 하나인 <세계 대전 Z>가 유엔 조사관의 전후 보고서 형태 서술을 취했던 걸 설정만 유지한 채 액션 스펙터클 <월드워 Z>로 변모시켜야 했던 영화의 고민을 연상케 하는 고충일 테다.
 
물론 <단순한 열정>은 지극히 개인사적인 설정 덕분에 그렇게 파격적으로 기본 틀을 벗어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동일한 내용이라도 낭독에 가까운 소설의 독해법과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영화의 관람 법은 상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이 영화는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할 때 어쩔 수 없이 드러났던 제약을 감수해야 할 운명에 처한다. 즉 순전히 작가가 텍스트로 구성해두기만 한 채 독자가 상상을 통해 완성하게 열어둔 원작의 연상효과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이다.

영화화 과정에서는 관객에게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으로 영상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각적 황홀경과 현란한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대신 겪게 되는 상상력의 휘발이다. 천 개의 상상력 대신 근사한 획일적 비주얼에 귀의하게 만드는 방법론이다. 물론 이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소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실험영화를 만들 게 아닌 다음에야 해당 측면을 온전히 극복하기란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런 측면을 감안해 본다면, 영화는 시간적 배경과 일부 설정 수정을 제외하면 충실히 원작의 시각화에 집중하고 있다. 소설의 기본 설정과 전개를 고스란히 따르지만 영화는 1991년에 출간된 소설에서 30년이 지난 현재를 무대로 삼는다. 1940년생인 아니 에르노의 생물학적 연령(과 작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시기)을 감안하면 거의 반세기가 넘는 시차다. 그 때문에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집 전화와 엽서, 편지 정도만 사용할 수 있었던 정보통신수단이 구글 검색과 스마트폰으로 확장되어 영화에는 등장한다. 하지만 원작 속 주인공이 선보였던 캐릭터와 태도 측면에서 본다면, 오리지널 설정이 더 '단순한 열정'이 뿜어내던 열기와 잘 어울리는 편이다.
 
빼어난 원작의 충실한 영화화, 하지만 아쉬운 싱크로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번민하고 갈등한다. 그는 겉으로는 학자이자 교육자, 무엇보다 독립된 삶의 주역으로 변함없는 일상을 영위하는 중이다. 물론 지독한 사랑의 열병은 사춘기 청소년들 첫사랑처럼 주인공을 활활 불사를 것 같은 위험에 상시 그를 노출시킨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심경을 노출하거나 (감당하기란 여간 힘겹긴 해도) 자신이 소화해야 하는 공적 역할을 등한시하지 않는다. 반면에 영화 속 엘렌은 오직 순수한 열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늪에 빠진 중년 여성의 순수 vs. 불륜의 긴장에 몸부림치고 마는 집착형 캐릭터 사이를 거듭해서 위태롭게 넘나들고 만다.
 
게다가 시간 배경을 여성의 자주적 삶 지향과 사회 전반에서 페미니즘 전선이 수립된 현재로 옮기다 보니 운명의 상대와 만나기 전 엘렌의 관심과 입장에 비해 그가 이후에 보이게 되는 혼란들이 마뜩잖게 여겨질 구석도 제법 된다. 엘렌은 자신과 취향 및 태도가 정반대에 가까운 연하의 매력남에 매달리는 것으로 종종 비치는데 요즘 분위기에서 신파 캐릭터로 보일 여지도 다분하다. 주변 지인들과 엘렌이 나누는 대화에서도 공적 입장과 사적 경험 사이에서 겪는 그런 혼란이 자주 지적되곤 한다. (소설에선 유의미하게 지인들과 교류하는 묘사는 아예 없이 철저하게 주인공의 심경 토로 위주로 흘러간다)
 
한편 작품 속 시공간이 현재로 이전되면서 또 다른 특이점이 발견된다. 구소련 붕괴 전야의 혼란과 함께 철의 장벽 너머 신비감을 겸비한 존재였던 엘렌의 애인은 푸틴 시대의 러시아 외교부 관계자로 변형되어 등장한다. 그렇게 바뀐 설정이 된 애인 알렉산드르는 낯설고 위험한 이방인 남자의 전형이자 '힘'과 '강함'을 숭상하는 존재로 이미지를 선보인다. 배역을 맡은 세계적인 발레리노이자 댄서 출신인 세르게이 폴루닌은 엘렌을 매혹의 열병에 빠지게 할 만한 미모와 육체의 매력을 뿜어내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캐릭터다. 그렇게 소설 속 등장인물이 뚜벅뚜벅 화면으로 들어온 것 같은 위력을 뿜어내지만 배우가 실제 생활에서 드러내온 몇몇 논란 측면과 영화 속에서 현재화된 알렉산드르 캐릭터는 (긍정이건 부정이건) 기이한 싱크로를 자아내기도 한다.

시각적 개연성과 관객들의 감정이입 편의를 위해 좀 더 나이가 든 캐릭터였던 엘렌은 젊어졌다. 그로 이해 두 자녀에게 엄마의 연애를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자리를 비워주길 요청하던 캐릭터가 아직 엄마의 관심과 훈육이 필요한 어린 아들을 밖으로 내몰고 방치하는 캐릭터가 되고 만다. 그리고 애인에게 잘 보이고픈 여자의 마음이 시각화된 '섹스어필' 이미지로 기우는 게 소설 대목을 상상하던 몽환에 비해 구체적인 대신 은유의 멋은 사라지게 만든다. 못내 안타까운 현재화다.

무엇보다 다시 소설을 집어 들게 만드는 영화의 효능
 
영화화 과정에서 특별히 아쉬운 지점을 하나 더 들어야겠다. 바로 영어로 진행되는 언어 선택이 원작에서 연인들이 겪는 모호한 상황의 공감을 희석시켜 놓는 게 바로 그 특별히 아쉬운 지점이다. 엘렌은 러시아어를 하지 못한다. 알렉산드르는 대사관에 근무하는 터라 프랑스어를 할 줄 알지만 그렇다고 원어민 화자처럼 깊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하는 설정이다. 그로 인해 연인들 사이의 대화는 평범한 의사전달에는 별반 문제가 없지만 온전한 '소통'이 과연 둘 사이에 이뤄지는지에 대해선 불분명하게 묘사된다. 서로 다른 상황과 입장이 명확한 남녀 사이의 미묘한 단절을 언어적으로 풀어내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런 절묘한 간극의 표현을 통한 상호 교감의 공백이 영화에선 휘발되어 버린다. 영화 속에서는 둘 다 영어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극 중 설정 상으로 국제공용어 격인 영어로 대화를 해서 언어 장벽을 극복하고 연인이 된 것으로 설정할 수 있긴 하지만 원작소설에서 조성했던 긴장이 소실된 셈이다. 해당 소설을 읽는 행위가 유독 작가의 독백을 경청하는 경험처럼 다가오던 원작의 맛이 날아가 버린 것처럼 아쉬움이 생기는 대목이다. 영혼의 허전함을 육체의 대화로 메우지만 서로 떨어지면 내내 열병을 앓던 원작 속 주인공의 심리가 너무 간략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몇 가지 아쉬움이 제법 남긴 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파격적인 작품세계를 시각화된 형태로 목격하는 기회는 더 많이, 더 자주 기대할 만한 지금의 분위기가 반갑기만 하다. 80줄에 들어선 대작가의 작품들이 근래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그의 작품을 최대한 누수 없이 온전하게 영상화하는 도전이 완성되길 기원해 본다. 무엇보다 소설 속 상상의 이미지를 영화로 1차 확인한 뒤 다시 소설을 펴 들고 거슬러 올라 그 꾹꾹 눌러쓴 매혹적인 문장들을 숙고하게 만드는 효능은 확실하게 각인되는 영화화 시도다.
 
작품정보

단순한 열정 Passion simple
2020|프랑스, 벨기에|드라마/로맨스/멜로
2023.02.01. 개봉|98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다니엘 아르비드
출연 라에티샤 도슈(엘렌 역), 세르게이 폴루닌(알렉산드르 역)
원작 Passion Simple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수입 및 배급 ㈜영화사 진진
 
2020 73회 칸영화제(공식 경쟁)
2020 25회 부산국제영화제(월드시네마)
2020 68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공식 경쟁)
2020 42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미싱 픽쳐스)
2020 16회 취리히영화제(갈라 프리미어)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다니엘 아르비드 감독 라에티샤 도슈 세르게이 폴루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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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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