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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요즘 같이 날이 너무 춥거나, 혹은 너무 더워서 밖으로 나가기가 귀찮은 날에는 별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오피스에서 종종 혼밥을 먹는다. 사무실 서랍에 쟁여 둔 각종 컵밥이나 레토르트 식품, 냉동 식품이나 집에서 간단하게 싸 온 도시락(주로 볶음밥이나 샐러드)이 주 메뉴다.

아무도 없는 오피스에서의 혼밥은 자칫 잘못하면 서글프거나 처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혼자 적막한 사무실에 앉아서 밥을 먹을 때면 필요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적막함을 달래 줄 읽을 거리나 영상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는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데, 혼밥은 그게 안 된다. 심지어 밖에 나가서 혼밥 외식을 하는 날에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사람 구경을 하면서 먹기라도 하지만, 오피스 혼밥을 할 때는 이마저도 불가능 하니 영상을 틀어두거나, 휴대폰으로 뉴스 또는 책을 한 권 읽으면서 적막함을 채운다.

식사하는 동안의 적막함을 채웠다면 그 다음은 내 앞에 놓인 음식에 필요한 2%를 채워야 한다. 시판 되는 식사를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양.념. 집에서 가져온 볶음밥도 샐러드도 사무실에 비치해 둔 양념 한두 가지만 더 있으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이것만 있으면 더 맛있는 혼밥
  
스리라차 소스와 구운 달걀은 오피스 혼밥에 필수품이다
 스리라차 소스와 구운 달걀은 오피스 혼밥에 필수품이다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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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샐러드를 가져오는데 양념을 뿌려서 오면 채소가 물러져서 먹기가 좀 그렇다는 내 말을 듣고 친구가 건네 준 한 끼용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이 들어 있는 드레싱 캡슐이 그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랜치 드레싱(Ranch dressing : 샐러드 드레싱의 일종으로 우락유, 소금, 양파, 마요네즈, 잘게 썬 셜롯, 갈릭 파우더, 머스터드 외의 조미료나 향신료로 만든다)도 갖다 두고서는 번갈아 가면서 먹고 있다.

사실 샐러드 드레싱만 두어 종류 구비해 놓으면 채소를 같은 것을 싸오더라도 늘 새로운 샐러드를 먹는 기분을 낼 수 있다. 보통은 양배추나 양상추 혹은 로메인 등의 푸른 잎 채소와 방울 토마토, 파프리카나 오이를 썰어 오는 정도의 초간단 샐러드를 싼다. 가끔 힘을 주고 싶을 때는 소금 후추로만 양념을 해서 구운 버섯이나 가지를 곁들이기도 한다.

전날 먹고 남은 고기류가 있으면 함께 싸 오기도 한다. 치킨이나, 삼겹살, 심지어 불고기 남은 것을 싸와서 샐러드에 곁들여 먹으면 단백질까지 챙길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만사 귀찮은 날의 단백질은 뭐니뭐니 해도 삶거나 구운 달걀이다. 여기에 사무실에 구비해 둔 샐러드 드레싱을 번갈아 가면서 뿌려 먹으면 매번 새로운 샐러드가 탄생된다.

샐러드 드레싱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즐겨 두고 쓰는 양념은 다음과 같다. 맛간장과 참기름, 스리라차 소스 그리고 슈레드 치즈. 참기름은 컵밥의 풍미를 올리는데 사용하거나, 입맛 없는 날 햇반에 간장과 참기름을 스윽 둘러서 구운 계란 하나와 계란밥을 만들어 먹을 때 쓴다.
  
샐러드와 닭가슴살바는 좋은 오피스 혼밥 메뉴이다. 스리라차는 빠지지 않는다.
 샐러드와 닭가슴살바는 좋은 오피스 혼밥 메뉴이다. 스리라차는 빠지지 않는다.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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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가슴살로 만든 소시지는 냉동실에 꼭 한두 개쯤 구비해 둔다. 닭가슴살 소시지가 아니더라도 편의점에 가서 사 오는 핫바도 좋다. 케첩을 뿌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매운 맛을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스리라차 소스를 뿌려 먹는다.

단맛 없는 맵싹한(맵고 싸한) 스리라차와 먹는 소시지는 느끼한 맛이 딱 잡혀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 외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스리라차는 유용하다. 각종 튀기거나 느끼한 음식에 자주 곁들여 먹는다. 나에게 스리라차는 먹는 즐거움을 끌어 올려주는 양념이다.

슈레드 치즈는 볶음밥용이다. 냉동 볶음밥이든, 집에서 직접 싸 간 볶음밥이든, 전자렌지에 돌리기 전에 슈레드 치즈를 올려서 함께 돌려주면 볶음밥의 맛이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김치볶음밥에야 말해 뭐하겠냐마는, 새우 볶음밥이나 매운 것이 들어가지 않은 다른 볶음밥에도 치즈를 얹어서 돌려 먹으면 풍미가 확 산다. 여기에 스리라차를 식당에서처럼 사선으로 샤샤샥 뿌려서 올려주면 금상첨화다.

인생에 활력을 주는 양념들
  
집에서 싸 간 볶음밥에 치즈 올리고 스리라차 뿌려서 구운 달걀과 함께 먹으면 꿀맛이다.
 집에서 싸 간 볶음밥에 치즈 올리고 스리라차 뿌려서 구운 달걀과 함께 먹으면 꿀맛이다.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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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이 없어도 사실 먹는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양념을 곁들이면 먹는 즐거움이 올라간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취미 생활 같은 인생의 '양념'들은 굳이 없어도 인생을 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지만, 그런 것들이 없다면 인생은 조금 무미건조해질 것 같다.

내 인생의 양념 같은 취미 생활은 요즘에는 피아노와 글쓰기이다. 굳이 '요즘에는'이라고 단서를 붙이는 이유는 입맛이 그때 그때 변해가듯이, 취향도 변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그만 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여러 곡을 섭렵하면서 피아노에 대한 감을 익혀 가는 동시에, 배움의 즐거움을 톡톡히 느끼고 누리고 있다.

스스로를 "안정 추구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나는 은근히 새로운 도전을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그런 커다란 도전(이를테면 이직이나 큰 프로젝트를 맡는 일) 말고 사소한 새로운 도전들은 내 인생의 활력소가 되어 주고 있다.

글쓰기 역시 요즘 내 인생의 활력소 중 하나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누구나 하지는 않는. 피아노도 글쓰기도 가계에 보탬이 되거나 먹고 사는 일에 지대한 영양을 끼치지는 않지만, 이 두 가지가 빠진 나의 삶은 색채가 빠져 나간 그림 같은 모습일 것이다. 양념이 없어도 맛있지만 양념을 추가하면 더 맛있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여러가지 오피스 혼밥 메뉴처럼.

취향이나 취미 생활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나의 필수 양념 목록은 독자들의 필수 양념 목록과 다를 수 있다. 매운 맛을 싫어한다면 케첩을, 한식을 좋아하는 입맛이라면 고추장 튜브를 구비해 두어도 좋겠다. 물론 위에 언급한 것 외에도 양념 종류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겠지만, 이 양념들은 어디까지나 '오피스 혼밥'을 살짝 즐겁게 해주는 용도임을 잊지 말자.

게다가 공용 냉장고를 내 양념으로 가득 채우는 것도 자칫 민폐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사무실 공용 냉장고를 사용할 때는 최대한 작은 양념병을 구입하거나, 큰 병을 사서 집에서 작은 용기에 소분해 오는 방법을 이용하는 센스를 발휘해보자.

혹시 반찬을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일반 김치 말고 양념을 모두 씻어 내고 물기를 꼭 짠 김치를 싸가면 좋다. 양념이 묻은 김치는 아무리 밀폐 용기에 담더라도 냄새도 많이 나고 자주 문을 여닫는 사무실 냉장고 특성상 빨리 익어서 쉬어 버릴 수 있다. 씻은 김치를 밀폐 용기에 담아서 냉장 보관하면 익는 속도도 느려지고 냄새도 덜 나서 사무실에 구비해 두고 먹기에 적합하다.

명절 지나고 남은 음식이 처치 곤란하다면 도시락을 싸보자. 그리고 그 도시락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시켜 줄 수 있는 양념도 함께 곁들여 보자. 적적할 수 있는 오피스 혼밥이 한층 더 즐거운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SNS에도 게재 예정입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우리들의점심시간, #오피스혼밥, #필수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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