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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모로코의 다음 상대가 프랑스라고?"

한참 카타르 월드컵을 마무리하는 글을 쓰는 중이었는데, 이번 월드컵 돌풍의 주역인 모로코의 행보는 쓰던 글을 멈출 수밖에 없게 했다. FIFA에는 아프리카 팀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현지에서 경험한 모로코는 '아랍권 최초의 성취'였다. 축구 팬들은 '우리 모두의 팀'이라며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게다가, 모로코가 스페인과의 악연을 넘어서, 결국 마주친 상대가 오스만 제국의 패망 이후 '아랍 세계의 분열'을 주도한 프랑스라는 사실도, 이 글을 쓸 수밖에 없게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웨일스와 잉글랜드, 미국과 이란과 같은 수많은 '원수 대첩'이 등장했지만, 감히 그중의 최강은 모로코와 프랑스의 4강이 아닐까 싶다. 모로코와 프랑스의 토너먼트 4강은 15일 새벽 4시(한국시각)에 열린다.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프랑스와 아랍 이슬람 국가들의 악연은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나폴레옹은 인도에 식민지를 먼저 개척한 영국의 영향력을 의식하여, 아프리카로의 식민화를 시도했다. 제일 처음 공략 대상으로 선정한 곳은 이집트였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맘루크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고, 끝내 나폴레옹은 전투를 포기하고 혼자 도망치고야 만다.

그런데, 이 원정 때문에 프랑스에 어이없이 먹힌 나라가 알제리였다. 당시 이집트까지 식량을 보급하기 어려웠던 프랑스 군이, 도중에 있던 알제리 지방 총독에게 곡물을 빌렸는데 30년이 지나도록 외상값을 갚지 않았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알제리 총독인 후세인 파샤가 1827년에 프랑스 영사인 피에르 드빌을 관저로 불러서 실랑이를 벌이던 중 들고 있던 파리채로 대사를 건드렸는데, 프랑스는 이를 제국에 대한 모독이라며 군대를 일으킬 빌미로 삼았다.

결국 이 말도 안 되는 '외상값-파리채 스캔들'로 알제리는 프랑스에 점령당해, 그 후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로 지내야 했다.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도 알제리계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물론, 오스만 제국이 평화롭게 400년이나 지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세상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오스만 제국의 아랍지역에서도 민족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오스만 통치에 환멸을 느낀 아랍인들의 수는 1908년의 청년 튀르크 혁명 이후 점점 더 늘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간극을 영리하게 파고든 것이 영국과 프랑스를 위시한 제국주의 열강들이었고,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으로 참전하면서부터 그들의 제국 분할에 대한 야욕은 점차 커져갔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세계대전에서 패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던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기대는 영국과 프랑스의 야욕에 지연되어야 했다. 이러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던 국가 중 하나가, 바로 40여 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모로코이다.
 
프랑스는 1912년에 자신의 북아프리카 영토에 모로코를 편입해도 좋다는 유럽 열강들의 정식 허가를 받았다. 모로코 술탄 물레이 압드 알 하피즈 (재위 1907~1912)는 1912년 3월에 페즈 조약에 서명했다. 그의 가문은 모로코를 계속 통치할 수 있었지만, 모로코는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기 때문에 주권의 대부분을 프랑스에 양도해야만 했다. ... (모로코 민중에 의한 저항이었던) 리프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와 에스파냐는 모로코에 대한 식민통치를 재개했고, 내부 반란에 다시는 직면하지 않았다. 비록 리프 전쟁이 모로코에서는 프랑스나 에스파냐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압드 엘 크림과 그의 운동은 아랍 세계 전역의 민족주의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들은 리프인들을 유럽 지배에 대항하여 영웅적인 저항운동을 이끌고 영토와 신앙을 수호하기 위하여 싸워서 신식 군대에 수많은 패배를 안겨준 아랍인들로 생각했다. - pp. 310~318,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모로코가 프랑스전을 이겨야 하는 이유
 
제가 처음으로 모로코를 만난 경기입니다.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드러내더니, 결국 이 경기를 무승부로 마무리했습니다. 모드리치를 응원하러 갔다가 모로코를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관중석 가득 모로코의 붉은 유니폼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모로코를 만난 경기입니다.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드러내더니, 결국 이 경기를 무승부로 마무리했습니다. 모드리치를 응원하러 갔다가 모로코를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관중석 가득 모로코의 붉은 유니폼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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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도 모로코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스페인이 자국 내에서의 기독교 세력의 완전한 복원을 선언한 레콩키스타 (재정복 운동, 1492년) 이후로, 그라나다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가 쫓겨나면서 가장 많은 무슬림들이 이주한 곳도 모로코 근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모로코의 한 쪽 끝인 세우타와 멜리야 지역은 여전히 스페인의 영토로 복속되어 있으니, 모로코는 스페인과도 '원수 대첩'을 치러야 했다. 게다가, 이제 4강에서 맞붙는 상대가 프랑스라니! 모로코로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었을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는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와 모로코가 동반 출전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그들 팀에 대한 열광은 상상을 초월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현장에서 모로코와 크로아티아, 튀니지와 덴마크의 조별예선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강팀이던 크로아티아와 덴마크의 팬들을 기대하며 찾았던 경기장은 모로코와 튀니지의 깃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예선이 끝나고 본선 라운드가 시작되면서, 모로코는 현지 홈팬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 되어 버렸다. 모로코와 스페인의 16강전을 FIFA 팬 페스트에서 모여있던 팬들과 함께 보았는데, 경기가 모로코의 승리로 마무리되자 감격에 겨운 현장 아나운서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여러분, 모로코가 승리했습니다. 이는 아랍권 최초이자 최고의 성과이며,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모로코와 스페인의 경기를 팬페스트에서 보았습니다. 경기 내내 모로코를 응원하는 함성이 계속 터지더니, 결국 끝나고 나니 모두가 얼싸안고 축하를 나눕니다. 와~ 정말 축하하고 싶었어요!
 모로코와 스페인의 경기를 팬페스트에서 보았습니다. 경기 내내 모로코를 응원하는 함성이 계속 터지더니, 결국 끝나고 나니 모두가 얼싸안고 축하를 나눕니다. 와~ 정말 축하하고 싶었어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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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8강은 아프리카 국가로서도 굉장한 기록이었지만 아랍권에서는 최초의 성취였다. 개최국인 카타르의 부진과 이웃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탈락 이후로 자칫 마음 둘 곳이 없던 그들에게, 모로코는 국기에 그려진 별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제 모로코는 더 이상 모로코만의 팀이 아니었고, 개최국을 위시한 아랍권 국가들의 명백한 '홈팀'이었다. 이런 나라가 4강에서 프랑스와 맞붙게 되다니, 이거야말로 또 하나의 '한일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프랑스에 대한 원한은 모로코의 것만은 아닐테니! 

"모로코 사람들, 오늘도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공항에는 여전히 모로코의 국기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속속 들어오는 중이고, 도하 시내에는 모로코 국기를 달고 경적을 울리며 돌아다니는 차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혹시나 도하까지 육로로 올 수 있는 길인지 구글 지도를 찍었지만, 7천 킬로미터가 넘고 차를 쉬지 않고 운전해도 87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계속 모여들고 있고, 이미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결국 모로코는 프랑스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한 판을 벌이게 됐다. 나는 모로코가 프랑스를 시원하게 이겨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축구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해서, 그저 공을 차고 노는 경기에만 그치지 않고, 그들이 대표하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 모든 것을 걸고라도 이겨야만 하는 '전쟁'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모로코의 승리가 알제리 식민 지배의 단초를 제공한 후세인 파샤의 억울함도, 모로코 저항의 불꽃이었던 리프 전쟁 영웅인 압드 알 크림과 모든 민중의 원한도 한 번에 날려버려주길 기대한다. 모로코, 힘내. 무조건 이기라고!

태그:#카타르 월드컵, #모로코 , #프랑스 , #식민지배의 역사, #이슬람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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