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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어느 날 오후, 상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녀분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되었다. 살짝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첫째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결혼식이 2주 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언제부터인가 실물 청첩장을 안 받아본 지 꽤 됐다. 이제는 주변에 결혼할 만한 지인이 없기도 하지만 회사 내에서도 대부분 인트라넷을 통한 전체 공지나 모바일 청첩장으로 결혼 소식을 알리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전달하는 방식을 포함, 시대가 변하면서 결혼식 문화도 바뀌어 가고 있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절차를 과감하게 생략한 간소화한 결혼식, 결혼 당사자들의 취향을 반영하여 스스로 준비하는 개성 있는 결혼식도 늘어간다.

하객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만 참여하는 결혼식도 은근히 많아졌다. 회사에 소식은 알리되 축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경우부터 계좌번호를 안내해 놓은 실리적인 청첩장까지 다양한 결혼식을 만나게 된다.

거기에 코로나가 결혼 문화를 많이 바꿔 놓았다. 결혼식 자체를 연기하는 경우도 많았고, 부득이 결혼식을 올려야 할 경우, 식사 대신에 식사비나 답례품을 주기도 했다. 신혼여행을 갈 수 없으니 결혼 1주년 기념 여행을 예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하객에게도 변화는 찾아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는 동안, 결혼식을 비롯한 경조사는 직접 참석하는 대신 성의만 전하는 것에 서서히 익숙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었지만 고물가로 인해 식사비 부담이 치솟으면서 축의금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많아졌다. 온라인상에서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식사비 보다 적게 축의금 5만 원을 냈다는 말에 논란이 오가기도 하고. 나는 직속 상사의 경사에 축의금만 달랑 보내기도 그래서 결혼식에 참여한 케이스인데, 정확히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2월 이후 3년 만에 결혼식 나들이에 나섰다.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오랜만의 뷔페
▲ 뷔페 오랜만의 뷔페
ⓒ engin akyurt,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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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 도착해 식장 안을 들여다보는데 예전 부서 사람들과 딱 마주쳤다. 본부를 떠나 지사로 온 지 여러 해가 훌쩍 넘어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아이도 있고 해서 축의금만 전달한 뒤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오랜만에 직원들과 마주치고 나니 살짝 아쉬웠다. 모처럼 얼굴 봤는데 점심이나 먹고 가라는 말에 식권을 받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결혼식 하면 뷔페다. 그러고 보니 뷔페도 오랜만이었다. 자리를 잡았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 아는 얼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먼저 온 회사 사람들이 이미 식사 중이었다. 테이블로 가 인사를 드리고 음식을 고르러 자리를 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뷔페를 잠정 운영 중단하고 도시락이나 쿠폰을 제공하기도 했다. 식사를 할 수 있어도 일회용 장갑과 손소독제 사용을 철저히 했고, 투명 또는 불투명한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식사를 했다.

이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되었다.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일회용 장갑과 손소독제가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나, 식사 시간 외에는 마스크를 착용해 달라는 안내 문구가 보인다는 점만이 치열했던 코로나 시기의 증거일까?

오랜만에 뷔페에 온 아이가 들떠 하는 가운데, 음식이 진열된 곳을 돌아보았다. 뷔페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음식들을 한자리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도 나도 한꺼번에 많이 못 먹는 편이지만 먹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접시에 담아 자리로 돌아왔다.

음식을 가지러 간 길에 마주친 선배 직원과도 인사를 했다. 얼굴은 몇 년 만에 보지만 업무 때문에 몇 달에 한 번 통화하다 보니 어색함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몇몇 반가운 얼굴들에서 발견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눈가에는 주름이 깊어졌고 머리숱도 제법 준 것을.

그래도 잔칫날, 음식을 앞에 둔 사람들에게서 웃음꽃이 피었다. 외곽 부서에 떨어져 심적으로 의지할 곳 없는 지금, 오랜만에 소속감에 대한 향수가 밀려들었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로 인해 어렵게 잡은 모임 날짜들이 계속 미뤄지다가 취소되는 일이 많았다. 회식 등 단체 활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가졌던 선배들과의 자리, 대화가 종종 그리웠다. 이렇게 앉아 있자니 함께 일하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음식은 고루 맛있었다. 즉석 코너에서 바로 구워내는 스테이크도 먹을 만했고, 쌀국수도 시원했으며, 고르곤졸라 피자도 고소했다. 적당히 다 맛있었지만, 아직 못 먹어 본 다른 음식의 유혹을 이길 만큼 다시 먹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틈틈이 짧은 대화가 오갔지만, 음식을 가지러 들락날락 하는 부산함에 소통에 대한 욕구도 채우기 어려웠다. 다양한 구색을 갖춘 뷔페에서 여러 음식을 맛보는 재미와 즐거움을 누릴 수는 있지만 깊은 맛의 음식을 찾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비어 있던 바로 옆자리에 낯선 사람들이 합석하게 되었다.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람 많은 장소에서는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밥을 먹었던 아이가 바로 곁에 모르는 사람들이 앉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제 인생 9년차, 무려 3년을 코로나와 함께 생활한 아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에 식당까지 왔지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달라진 경조사 문화 실감

나가면서 내부를 훑어보니 참석한 직원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역시 아직은 코로나의 여파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굳이 결혼식을 안 와도 되는 분위기가 된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실제로 식을 치르고 돌아온 상사가 말하기를, 축의금을 대부분 송금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송금한 사람들에게는 문자로 감사 인사를 전하며 모바일 커피 쿠폰을 보냈다고 한다. 달라진 경조사 문화를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첫 결혼식 나들이. 결혼식장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해서 좋았고 음식도 맛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은 남았다. 언제가 될지 기약하기 어려울 걸 알면서도 '조만간 날 잡아서 보자'라는 말을 나누며 돌아섰다. 하지만 서로 알고 있다. 다음 번 볼 날도 누군가의 경조사 자리가 될 것임을. 그 자리조차 줄어가고 있지만.

서서히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코로나 이전과 흡사하게 많은 것들이 정상화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지인에게 들어보니 요즘 도서관 강의에 모객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이미 비대면을 경험한 사람들이 굳이 집을 나설 동력을 잃은 것이다.

다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날 거라 한다. 이젠 생활 독감 정도로 인식되어 가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예전의 부담스러운 문화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합리적으로 변한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마냥 좋은 방향이기만 한지 생각해 보게 되는 결혼식장에서의 짧은 점심이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이왕이면 슬픈 자리보다는 오늘처럼 축하를 나눌 수 있는 자리이기를 바라며 결혼식장을 나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우리들의점심시간, ##일요일의점심, ##오랜만의결혼식장, ##점심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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