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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개악 저지와 노조법 2,3조 개정, 민영화 중단,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 등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개악 저지와 노조법 2,3조 개정, 민영화 중단,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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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업 조장법' '민주노총 방탄법' '노사혼란 조장법' 

노란봉투법이 난타 당하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 안건으로 상정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대한민국 경제를 부정하는 반기업적 법안'으로 규정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일엔 주호영 원내대표까지 나서 "우리 헌법에 노동3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고, 노동조합법에서 정당한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을 면제하고 있다. 그런데 (야당이) 전세계에 없는 불법 파업을 합법화하자는 법안을 일방처리하고 있다"며 "끝내 일방 처리한다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국민의힘 주장이 사실이라면 노란봉투법은 '희대의 악법'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노란봉투법에 뒤집어씌운 누명은 대체로 곡해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노란봉투법을 위한 변론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란봉투법을 위한 변론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를 개정하는 법안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는 노동자의 범위와 단체교섭의 대상을 확대하고, 폭력이나 파괴를 원인으로 한 직접적인 손해를 제외하고는 쟁의행위를 이유로 노동조합이나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은 '현행 노동조합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주호영 원내대표 발언처럼 현행 노동조합법이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고 있다는 논거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현행 노동조합법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방패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압박하기 위해 조합은 물론 간부 개인에게까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신청을 하더라도 법원은 노동조합법의 취지를 깊이 고려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0월 24일 발표한 '손해배상 소송·가압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쌍용차)부터 2022년 8월까지 손해배상 소송은 총 151건, 청구액은 2752.7억 원에 달했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건은 24건(청구액 916.5억)으로, 현대제철(246.1억), 대우조선해양(480.5억) 등이 1심 진행 중이다. 


쟁의행위와 손해배상 금액의 상관 관계 또한 깊이 살피지 않고 대체적으로 연관성을 인정해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손해배상의 액수를 제한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조합과 간부 개인이 수십억, 수백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특히 소송에 앞서 이뤄지는 가압류의 경우 노동3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가압류 결정이 나오는 경우 노동조합 간부 개인은 생활을 위해 필요한 급여의 인출은 물론 금융기관에서의 활동까지 제약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목숨을 던질 만큼의 생계 위협을 느낀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노동조합을 떠나는 일뿐이다.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노동조합은 남아 있기 어렵다. 그 비극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폭탄'이라고 부르는 이유일 테다. 

노동자 위협하는 미로와 폭탄... '방패'가 필요하다
 
지난 6월 2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스스로 가둔채 농성을 이어가던 모습.
 지난 6월 2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스스로 가둔채 농성을 이어가던 모습.
ⓒ 금속노조 선전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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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팔구 파업을 불법으로 만드는 '미로' 같은 법 구조를 고치기 위해서도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노동조합을 만들어 단체교섭과 쟁의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내용 또한 협소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하고 보수를 받으며 생활하는 많은 노동자가 법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 실질적 영향력이나 지배력을 가친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를 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이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현행법이 설치한 '미로'를 단 하나라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불법파업' 낙인은 피할 수 없는 결말이다. '불법파업' 낙인이 찍히는 순간 손해배상과 가압류라는 '폭탄' 벌칙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누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단체교섭과 쟁의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노란봉투법은 '미로'를 없애고 '폭탄'으로부터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지킬 수 있는 '방패'를 만들자고 말한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의 취지에 국민의힘 주장을 비춰보면 '실질적으로 있든 없든 법 규정은 있으니 법을 고치지 말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는 국회의 기능과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다. 국민의힘은 100석이 넘는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으로서 헌법과 노동조합법에 있는 규정이 현장에서 공허한 줄글에 그치고 있는 상황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참담할 따름이다.

'미로'와 '폭탄'은 제거해야 옳다. 미로에 걸리고 넘어져 밟게 될 폭탄이 있는 줄 알면서 내버려두는 일은 '누군가 폭탄에 걸려 죽어도 좋다'는 말을 뒤집어놓은 것과 같다. 국민의힘의 노란봉투법 반대는 폭탄을 내버려두자는 말이다. 언제까지 '귀족노조' 운운하며 정치의 책무를 묵인하고 방기할 셈인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이 절실히 필요한 노동조합은 정규직 고연봉 노동자로 이뤄진 노동조합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도로를 질주하며 화물을 운반하면서 적자까지 감내해야 하는 화물노동자의 노동조합이고, 산업 호황에도 불구하고 안전하지 못한 일터에서 여전히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강요당하고 있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합이다.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일... 이제 그만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3일 대구 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21'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3일 대구 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21'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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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의 내용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노란봉투법을 대하는 국민의힘의 태도 또한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악마로 만드는 일에 급급할 뿐 절실한 심정으로 노란봉투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은 적이 없다.

손해배상과 가압류라는 '폭탄'을 안고 있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직접 만나고 얼굴을 마주해본 적이 있는가. 노란봉투법을 추진하고 있는 야당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 관련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연구자와 전문가, 이해 관계자까지 두루 만나고 있지 않은가.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에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방식의 정쟁을 중단해야 한다. 더 이상 노란봉투법을 욕보이지 말라.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손해배상과 가압류라는 폭탄을 안고 죽어가던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손을 내민 것은 정치도, 행정도 아니었다. 바로 시민들이었다. 절절한 공감으로 써내려간 편지와 함께 피차일반 없는 살림에 한푼 두푼 아껴 모은 돈을 노란봉투에 담아 보낸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낸 법이다. 국민의힘이 무슨 자격으로 노란봉투법을 욕보인다는 말인가.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에 대해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 자당 대통령 집권 시절 벌어진 노동조합 상대 국가폭력에 대해 일언반구 사과조차 없지 않은가. 국민의힘에 당부한다. 노란봉투법을 만들 자신이 없다면 적어도 노란봉투법을 찢어발기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죽음과 동료 노동자의 절규 위에 쌓아올린 법이다. 배달호, 김주익, 최강서... 정치와 행정이 '시장경제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핑계 뒤에 숨어 '노동3권 보장'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외면한 결과 생긴 희생자를 기억할 때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때다. 바로 지금 노동자를 구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헌법의 약속을 지키는 일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는 없다. 시민이 보낸 노란봉투에 담긴 진심 앞에, 이제는 정치가 책임 있는 답장을 내놓기를 바란다. 

태그:#노란봉투법, #국민의힘, #노동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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