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0 13:58최종 업데이트 22.11.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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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옹진군 한 섬에서 장병들이 해안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지난 7일, 소청도에서 해병대 하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채로 발견되었다. 사망 원인은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으나, 지난달 30일 김포에서 해병대 병사가 사망한 사건이 확인된 직후에 또 사건이 발생한 터라 군인 자살 문제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국방부가 2022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군에서 자살한 인원은 총 271명이다. 이 중 병사는 99명, 간부는 158명, 군무원은 14명이다.


국방부의 다층적인 노력을 통해 병사 자살자 수는 과거와 비교해 상당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나, 간부의 자살자 수는 꾸준히 늘어왔다. 현 병력 총원 중 간부가 40%, 병사가 60% 정도임을 고려하면 간부의 인원이 병사보다 적음에도 자살자 수가 1.5배나 높은 현실은 군에서의 자살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지 오래임을 방증하는 수치다.

특히 간부 자살자 158명 중 60%에 해당하는 96명은 소위 '초급간부'로 분류되는 저년차 직업군인들이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하사, 중사, 소위, 중위 등 통상 근속이 10년을 넘지 않은 간부들인데, 이 중에서도 전체의 34%가량인 33명은 하사다.

하사는 간부 중 가장 계급이 낮고, 평균 연령도 2019년 기준 23.1세로 가장 어리다. 다시 말해 직업군인의 꿈을 품고 입대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군인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초급간부 자살에 대한 문제 지적 역시 꾸준히 이뤄져 왔다. 안타깝게 사망하는 이들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당위는 물론이고, 군 인력 운영의 관점에서도 인력을 획득하여 교육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군이 직업군인을 획득, 양성하는 시스템 전반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민간 기업에서 신입사원이 해마다 10명씩 자살하고 있다면 어떻게 비추어질지 생각해볼 때, 이러한 지적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국방부 역시 관련한 문제의식을 갖고 간부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구조적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매번 일선 부대에서 자살 사건을 처리하는 전반의 과정을 보면 과연 이러한 문제의식이 군 저변에서 잘 작동하고 있는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여군 하사 사망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유가족 요청에 따라 현장 감식에 동행한 적이 있다. 군사경찰, 군검찰의 주도하에 민간 검찰, 경찰,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 관계자가 모두 입회한 가운데 이루어진 감식이었다.

오후 4시경 시작된 감식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본래 감식 현장에서 수사기관이 망인의 흔적을 챙기는 가장 큰 이유는 타살 혐의점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혐의점이 없다 하여도 변사(變死)의 원인을 밝히자면 망인이 남긴 흔적들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날 군사경찰 감식 과정에선 군이 '범죄 혐의점'을 가리는 데에만 관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사경찰은 망인이 평소 주변인들과 나눈 편지 더미 등을 보더니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보지도 않고 수거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대부분 과거에 나눈 편지였다는 이유였다.

한편, 신발장에서 나온 신발 끈이나 힘든 감정을 기록해 둔 메모는 곧장 증거물로 가져갔다. 사망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규명하는 일보다는 타살 여부, 자살이라면 평소 우울한 감정을 느끼진 않았는지 등에 더 초점을 두는 듯 보였다.

이 사건 외에도 군에서 진행되는 변사사건 수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유가족들에게서 들을 때면, 인권침해와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자꾸 발생하다 보니 변사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 군이 방어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망인이 생전에 인권침해나 성폭력을 당했는지 확인한 뒤 해당하는 것이 없어 보이면 종합적인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개인의 우울감, 부적응에 따른 사망으로 정리하고 군은 모든 책임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대 전 건강하게 생활하다 신체검사 기준을 통과하여 자원입대한 직업군인들이 얼마 되지 않아 극단적 선택에 이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보다 더 복잡할 것이다. 극단적 선택에 이른 초급간부의 경우 대부분 면담 기록, 신인성 검사 등에서 자살 징후가 발견되지 않는다.

통상 아무 징후도 발견되지 않으면 군은 '주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왜 아무도 모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버리는데 동료 중 누구도 감지하지 못했다면 조직 자체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군은 이 죽음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에만 온 관심을 쏟는다. 딱히 책임질 사람이 없는 죽음은 곧 '남의 죽음'이 된다. 

망가진 외양간에선 계속 소를 잃게 된다
 

2021년 12월 20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강원도 철원 육군 3사단 부대(백골 OP)를 방문해 생활관에서 장병들과 대화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이런 인식으로는 간부 자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망인이 나약해서, 우울한 사람이라, 적응력이 떨어져서 사망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한 해에 50명 가까운 간부가 세상을 떠나는 기막힌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사회초년생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공통의 현상이다. 낯선 상황과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거기에 폐쇄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군 조직에 적응하는 일은 한층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직업군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초임 하사나 소위에게 체계적으로 업무를 지도하고,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각자도생하는 방식으로 눈치껏 업무를 파악하고, 어깨너머로 일을 배운다는 것이다. 결국 알아서 적응하는 사람은 남고, 그렇지 못 한 사람은 군을 떠나게 된다.

이러한 조직 운영이 가능했던 건, 우리 군이 그동안 '대량 획득-단기 활용' 중심의 인력운영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100명의 하사가 임관하면 의무복무기간인 4년을 채운 뒤 '진짜' 직업군인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장기 복무에 선발되는 인원은 40명 정도에 불과하다. 60%가 간부 생활을 '경험'해본 뒤 전역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굳이 초급간부의 조직 적응을 돕지 않아도 '알아서 잘 적응하는 사람'만 남기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군을 떠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발생해도 그 원인을 종합적으로 따져볼 이유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절벽, 군 구조 개편 등이 맞물리면서 장기적으로 부사관의 비율을 늘려가고자 하는 국방부의 계획에 따라 우리 군은 '소량 획득-장기 활용'으로 인력운영구조를 변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는 군인이 우리 사회에서 '해볼 만한 직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보수나 근무 여건이 좋지 않음에도 사명감과 보람을 소명으로 군인의 길을 걷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고생만 하고 배우고 남는 것은 없으며, 직업 안정성마저도 불투명한 직업에 사명감만으로 뛰어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육군 부사관 경쟁률은 2018년 3.6:1, 2019년 3.5:1, 2020년 2.9:1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군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군은 병력 확보가 안 되는 근본적 난항에 봉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좋을 리 없지만, 망가진 외양간에선 계속 소를 잃게 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조직이 병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우리 군이 지속 가능한 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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