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8 12:04최종 업데이트 22.08.1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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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입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남긴 김 전 대통령의 발자국은 명징합니다. 13주기를 맞아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책, 국정관리 능력을 재평가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정치 양극화 시대, 여야 정치권이 김대중의 유산에서 배울점을 찾자는 겁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각 분야별로 다섯 차례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정책적 유산을 재조명하는 전문가 기고를 싣습니다. 그 네 번째는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지지자들이 초상화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1997.12.19. ⓒ 연합뉴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는 속담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외환위기 속에 취임하면서 국민들에게 '국가적인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고통을 나누자'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이에 화답하듯이 국민들의 자발적인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고 김 대통령은 취임 100일 플랜을 통해 IMF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들을 하나하나 전개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만들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경제 위기의 경중을 20여 년 전 우리가 경험한 IMF 경제 위기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와 물가상승은 외부 요인 때문이니 대통령이 어찌할 수 없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러면서 과거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방역선진국 기초 닦은 김대중의 헌신
 

2021년 1월 6일 오후 서울역앞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 권우성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기까지 짧지 않은 역사가 있었고, 근현대사에서도 여러 대통령들과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재가 만들어지기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수가 다시 폭증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고 국제기구가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방역 선진국이었다. 그렇게 된 근저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과 헌신이 있었다.

미국과 같이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에서도 코로나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개인이 큰 부담을 져야 했다. 민간의료보험이 있어도 본인 부담금은 170만 원(약 1400달러)이 넘었다. 의료보험이 없는 이들은 아예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워 진단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대유행 초기에 벌어졌다.

특히 치료비가 너무 비싸서 코로나 감염이 의심돼도 집에서 혼자 있다가 사망하는 일이 속출했다. 뉴욕 시내 한 가운데에 컨테이너 박스를 두고 시체들을 모아서 처리하는 장면이 CNN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에서 대부분의 비용을 지원해 본인부담금이 '0원'이었다. 그야말로 무상진료 혜택이 가능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국민건강보험 기반 닦은 의료보험 통합

건강보험 급여비로 코로나 진단 비용뿐 아니라 치료 비용까지 국가가 모두 부담할 수 있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가 2000년 의료보험 통합을 달성한 덕분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500여 개의 직장 의료보험조합들과 항상 적자가 나는 지역의료보험을 조합을 묶어, 단일 의료보험공단으로 만드는 결단을 내리고 실행했다. 국민들을 설득하고 국민들의 연대를 제도로 조직해 낸 것이다.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문재인케어를 통해, 의료보험 통합 당시 12조 9000억 원에 불과하던 연간 건강보험 급여를 20년이 지난 지금, 본인부담금을 포함해 연간 105조 원(2020년 결산) 규모로 확대시켰다. 마치 영국 국민들이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영국의 자랑으로 생각하듯이, 이제는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없는 대한민국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대가 크다. 

그동안 코로나19 진단비와 치료비 등을 건강보험 급여화한 것은, 국가가 국민 안전을 위해 질병 관리에 드는 비용을 부담한다는 상징성이 있었다. 질병 관리를 국가의 책임으로 하면서 국가도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권고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감기나 폐렴 환자가 줄어 전체적인 의료비가 줄어드는 효과도 누렸다. 덕분에 코로나 진단비나 치료비를 국가가 보조하면서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건강보험 재정도 적자가 아니라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권이 바뀐 이후 연일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코로나19 재유행의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은 자가 검사 키트가 많이 보급돼 스스로 검사를 할수 있게 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진단에 본인부담금을 부과하거나, 재택 치료를 위해 직장에서 유급휴가를 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을 철회한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확진돼도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지원이 없기 때문에 감염 사실을 숨기고 출근을 하거나, 심지어는 감염 사실을 무시하고 사회 활동을 계속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대통령
 

2000년 6월 12일,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평양방문을 하루 앞두고 청와대 관저에서 창밖을 응시하며 남북정상 회담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 연합뉴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데 그 기반은 김대중 정부가 닦았다. 김대중 정부는 1급 및 2급 중증재가와상 노인에 대한 요양급여 서비스와 3급 장애 노인에 대한 재가방문서비스 실시 등을 주축으로 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준비하고 제정했다. 

나는 매주 하루 노인요양원에 회진을 가서 120명 정도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만일 김대중 정부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매주 보는 이들 120명 환자 중 100명 정도는 공적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환자 보호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처음 들었다고 하는 분이 아직도 많다.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많은 일들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가 주변의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듯이,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많은 정책들이 김대중 정부에서 준비되고 추진돼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의료·복지 분야뿐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시 이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첨단 IT 산업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와 비젼이 있었다. IMF로부터 진 빚을 매년 갚아야 하는 그런 어려운 시기에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상당 부분을 투입해 전국에 광통신망을 깔고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지금은 모바일로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하고, 핸드폰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을 하고, 확진자 동선에 따른 검사 대상자 통보를 받는 등 방역 시스템을 당연한 듯 이용하지만, 그렇게까지 되는 데는 IT산업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김 대통령의 혜안과 정책 실행의 뒷받침이 있었다.

국내 영화의 연이은 칸 영화제 수상이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유행, BTS를 필두로 하는 K-POP의 물결 등 K-한류의 단초를 제공한 것도 일본 대중문화개방이라는 과감한 정책과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정부의 문화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18일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 13주기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경제·외교·사회 정책들을 보면서, 역으로 시대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는 '김대중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라고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상구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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