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2 13:39최종 업데이트 22.06.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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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잡지를 만들고 있다고 소개하면 늘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기삿거리가 있어요?'와 '아이고, 고생하시네요'. 두 말은 다른 듯 같다.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 의도가 어떻든 내심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이유다.

이런 동병상련(?)을 겪어왔을 지역 매체 종사자들을 6월에는 유독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월간 옥이네> 7월호 취재를 하며(특집 주제가 '지역잡지'다), 또 지역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는 컨퍼런스에 참가하면서 말이다.
 

전라도닷컴은 온라인에서 시작했다가, 현재는 오프라인 잡지를 내고 있다. ⓒ 원동업

 
그중에서도 '전라도닷컴'과 '뉴스민'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2002년 월간지로 창간한 전라도닷컴(앞서 2000년 웹진으로 출발)은 전라도의 말과 사람, 풍경을 길어 올리는 매체로 현재까지 한 호도 쉬지 않고 발행해온 대한민국 대표 잡지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라도 말을 그대로 살려 담아낸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2012년 대구경북의 인터넷 뉴스 매체로 창간한 뉴스민은 '지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역 속으로 파고든다. 지역 현안을 지역 주민의 목소리로 풀어내며, '보수의 땅'으로만 덧씌워진 대구경북에 대한 편견을 한꺼풀 벗겨내는 일을 하는 독립언론이다.


2000년대 초반 창간해 벌써 20년의 세월을 지역을 기록하는 데 쏟아온 전라도닷컴, 대구경북 독립언론으로 올해 창간 10주년을 맞은 뉴스민 모두 월간 옥이네에게는 맏언니 같은 존재다. 옥이네뿐 아니라 어디에선가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 모두에게 '동지'일 테고.

"너네 3년은 가겠냐?"는 소릴 듣던 월간 옥이네가 다음 달이면 창간 5주년을 맞는다. 1부터 4까지 지나온 시간 모두 각별했지만 5는 새삼 더 하다. 이만큼 버텨온 시간에 대한 감격과 업계 시니어(?)로서 새로운 트랙 위에 서게 됐다는 부담이 공존하는 숫자.

이런 때에 전라도닷컴, 뉴스민과 같은 매체는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했다가도, 뜨거운 불길을 일으키게도 한다. 각자 발붙이고 선 지역을 묵묵히 기록하는 '시대의 목격자'와 동지가 돼 등을 맞대고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기도,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도 한다.

어디선가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 또 다른 동지들 역시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전라도닷컴 황풍년 전 편집장(현 광주문화재단 대표)과 남신희 현 편집장, 뉴스민 천용길 대표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정리해본다.

말과 글을 담는 기본에 충실했던 이야기
       
"항상 힘들었어요. 언제랄 것도 없이 늘 힘들었지요."

'언제가 제일 힘들었냐?'는 질문에 대한 황풍년 전 전라도닷컴 편집장의 답이다. 듣고 보니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구나 싶어진다. 지역 유지나 기업인, 정치인 이야기를 담는 게 아니니 광고가 잘 될 리 없고, 지역 출판 시장이 좁으니 판매량에 기댈 수도 없다. 원고 작성은 물론 제작비와 운영비를 만드는 것 등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을 터다. 남신희 현 편집장 역시 "말 그대로 힘들지 않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며 "이 힘듦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문제"라고 덧붙인다.

이런 상황은 뉴스민 역시 비슷하다. 뉴스민은 창간 당시 기자 월급이 50만 원이었다. 그럼에도 광고성 기사는 실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3년만 버텨보고 안 되면 다른 거 하자"고 시작했던 것이 벌써 창간 10주년을 맞았다고 천용길 대표는 말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이 10년을, 20년을 '버텨온' 데는 이유가 있다. '지역 언론의 역할', 여기에 '서울 중심 뉴스의 홍수' 속에서 '진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이다.

"2000년대 초반에 인터넷 시대가 열렸죠. 그러면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 지역이 그대로 휩쓸려 버리고 마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거예요. 지역의 삶과 문화가 서울 중심의 거대하고 획일적인 문화에 쓸려가는 것을 보면서, 이걸 막을 대안 언론의 역할을 해보자고 만든 게 전라도닷컴이었고요." (황풍년 전 전라도닷컴 편집장)

"그동안 매체에서는 그분들의 언어나 생애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죠. 하지만 역사 속에서 분명히 흐름을 만들어내고 장하게 자기의 한 생애를 일구어온 분들이에요. 우리는 권력 중심의,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하고 그렇게 살도록 훈육돼 왔습니다. 그것을 조용히 뒤집는 시도를 하고 싶었던 거지요." (남신희 현 전라도닷컴 편집장)
 

대구경북 지역언론 '뉴스민' 홈페이지 ⓒ 뉴스민 홈페이지 갈무리

 
기존의 언론 지형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는 뉴스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구경북, 흔히 TK로 불리는 이 지역은 '보수'의 상징이기도 한데, 그런 만큼 선거철마다 TK 선거 결과를 단편적으로 해석하며 '민심'을 운운하는 기성 언론이 넘쳐난다.

뉴스민은 다르다. 지역의 이야기를 그대로 바라보고 전한다. 그 덕에 독자는, 우리는 이 지역에 왜 보수 성향이 짙을 수밖에 없는지(혹은 왜 그렇게 비춰져 왔는지) 이해하게 되고 비로소 알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전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면 뉴스민이야 말로 기존 언론과 달리 진짜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셈이다.

이 매체들이 '길'을 내는 법

다른 이의 말과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은 결국 세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전라도닷컴, 뉴스민 같은 매체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형태로 지역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선순환이 비슷한 결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10년, 혹은 20년 각각의 방식으로 지역을 기록해온 이 매체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어떤 방향일까. 뉴스민 천용길 대표는 대구경북에 더 많은 독립언론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전한다. "경북 23개 시군에 5개의 독립언론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 독립언론에 뉴스민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와 함께.

"지역에서 독립언론이 지속가능하려면 기자 양성이 제일 중요합니다. 경북 5개 지역에 각 1명씩의 독립언론 기자를 양성하는 것이 앞으로 10년의 목표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뉴스민이 하려고 하고요."

전라도닷컴 남신희 편집장은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는 모습이 뒤에 올 이들에게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의무감이라면 의무감이지만, 그런 마음으로 전라도닷컴을 만들고 있다"고 말이다.

"잡지를 만드는 게 항상 힘들었다고 했지만, 힘들다는 말이 표면 그대로 '힘들기만 했다'는 말은 아닐 겁니다. 힘들어도 그걸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의지의 표명이라고 생각해요. 시대나 상황이 어렵더라도 꿋꿋이 헤쳐가자는 힘을 가진 말이라고요."

미래를 보고 나아가는 사람들, 힘들어도 헤쳐가자고 다짐하는 이들의 연대가 지금도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 결국 이런 이들이 세상을 바꿔왔고, 바꾸고 있고, 바꿔 갈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우리 모두 함께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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