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8 06:04최종 업데이트 22.06.0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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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50년 넘은 수학계 난제 '리드 추측', '로타 추측'을 모두 풀어내 '블라바트니크 젊은 과학자상'(2017) '뉴호라이즌상'(2019) 등 세계적 권위를 지닌 과학상을 수상한 천재수학자 허준이 박사는 초등학교 때는 구구단도 못 외웠고, 고등학교 땐 학교를 자퇴한 수포자였다고 한다. 중학교 때 과학고에 진학하고 싶어 교사에게 상담을 했더니, '너는 너무 늦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20년도 지난 이야기이니 지금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허준이 박사의 사례는 수학, 과학 분야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내 두 딸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모두 이공계를 선택했다. 두 딸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다양한 실험과 프로젝트 활동을 경험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두 딸은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특별한 실험 수업도, 관심 있는 프로젝트를 해볼 기회도 없이 지냈다. 둘째가 다닌 학교는 과학중점학교였지만, 큰딸이 다닌 학교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별도로 편성된 과학중점 학급 2개 반에는 약간의 실험수업이 더 있었지만, 그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고, 겨우 과학교과 중 심화과정이 개설되는 정도에 머물렀다.

큰 딸은 중학교 때 스페인어를 접하고 간단히 배운 경험이 있었고, 스페인어 배우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큰 딸이 입학한 학교는 제2외국어로 일본어와 프랑스어만 가르쳤다. 그 학교에는 스페인어 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가 다니는 학교는 일본어와 중국어 수업만 개설이 되었고, 둘째는 덜 싫어하는 중국어를 마지못해 선택했다. 큰 딸은 대학에 입학해서 스페인어를 배울 기회가 주어졌지만, 마음이 이미 식어버린 다음이었다.
 

‘특권학교 부활 선언 인수위 규탄 교육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이 지난 4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앞에서 전교조,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참가자들은 ‘이제 겨우 자사고, 외고, 국제고 폐지가 확정되고, 이에 따른 교육계의 준비가 착착 진행되는 과정에서 돌연 특목고를 부활시키겠다는 건 대한민국 교육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 권우성

 
특목고로 가는 길은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나는 두 딸을 학원에 거의 보내지 않고 대학에 보냈다. 하지만, 학원에 가보고 싶다는 둘째를 학원에 보내던 몇 달 동안 늦은 저녁과 주말 오후에 학원에서 데려오는 일을 했다. 학원 근처에 가서 기다리는 동안 과학교과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학원에 내건 플래카드를 보고 놀란 경험이 있다.


"과학고, 영재고 준비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는 늦습니다!" 이후 주변에서 자녀를 과학고에 보낸 부모 몇몇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그 플래카드의 구호가 현실이라는 점을 절감했다. 모두들 중학교 때 시작해서는 가망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동의했다. 외국어고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예술고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넘사벽 수준으로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었다. 다들 예술고에 가려면 부모의 재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고, 우리 부부의 수입으로는 힘겨운 시기를 한참 견뎌야할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그러니, 특목고로 가는 길에는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갖추어진 특별한 계층을 위한 학교라고 비난받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특수목적 고등학교가 있다.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이다. 조기 직업교육을 수행하는 특목고인 마이스터고에 입학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것을 서약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암암리에 대학진학을 금기시하고 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저소득층 학생 비율이 일반고에 비해 높을 것임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4개의 마이스터고 2021년 재학생 중 법정 저소득층과 중위소득 70% 이하 가구 학생의 비율은 일반고 5.6%보다 3배 높은 17.7%였다.

또한, 법령상으로는 특목고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내용상으로는 특수목적을 지닌 학교로 특성화고가 있다. 특성화고는 조기 직업교육을 받고 일찍 취업하고자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분야의 직업교육을 실시한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특성화고 재학생 중 법정 저소득층과 중위소득 70% 이하 가구 학생 비율은 2021년 기준으로 18.9%로 일반고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인해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는 공정한 사회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특목고와 일반고에서 수행되는 학교교육의 과정 또한 공정하지 않다.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라는 구호와 "한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 속에는 모두에게 공정한 과정이 제공되어 모든 학생이 자신의 소질과 관심에 따라 교육받을 수 있도록 고루 살필 것이라는 약속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지표로써, 학교 종류별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살펴보면 현실은 매우 불공정하다. 2020년 기준, 서울시에 설치된 일반고의 1인당 교육비는 450만 원 정도이다. 반면, 과학고는 1160만 원, 국제고는 760만 원, 마이스터고는 900만 원, 특성화고는 680만 원, 체육고는 2000만 원(이상의 수치는 교직원 인건비, 학부모 부담금을 제외한 금액임), 예술고는 1250만 원(예술고의 경우 교육비 대부분은 학부모 부담)이었다.

2021년 서울시 전체 고등학생 중 70%의 학생이 다니는 일반고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과학고의 40%, 국제고의 60%, 마이스터고의 50%, 체육고의 23% 수준이었고, 특성화고의 66% 수준이다. 교직원 인건비 등을 포함해서 계산한다면, 일반고와의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왜냐면, 특목고의 교사 당 학생 수가 더 적기 때문이다. 일반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특목고에 대한 투자가 여러분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는 일반고에 비해 2배, 3배 지원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동의하는 지를 물었을 때, 대부분의 학부모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정하지 않은 차별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아이가 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소질을 개발하기는 매우 어렵다. 서울에 있는 예술고는 모두 사립학교로, 학교 운영비 대부분을 학부모의 부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목고 교육의 결과는 더욱 정의롭지 못하다. 과학고나 영재고의 경우, 의대 진학을 금지하고, 의대계열로 진학하는 경우 장학금을 회수하고 졸업자격을 박탈하는 조치가 강화되자, 입학경쟁률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는 특목고가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웅변한다. 예를 들어, 경기과학고의 경우 20대 1이 넘던 경쟁률이 2020년에는 10대 1, 2021년에는 2대 1로 급격히 떨어졌다.
 

양산특성화고등학교 설립추진위원회는 2020년 9월 9일 양산교육지원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양산특성화고등학교 설립’을 촉구했다. ⓒ 경남도교육청

 
모든 학생을 특목고로 보내자

왜 특목고 학생들만 2배, 3배의 재정 지원을 받아야하는 걸까? 자원과 인력이 부족한 시기의 인재양성 전략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식으로 진행해야 효율적이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고 자원은 풍부해진 반면, 저출생으로 인해 사람은 부족한 시대로 접어든 현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특별한 집단에게 투자를 집중하는 전략이 효율적인가?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렸다. 이미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 필요한 전략은 모두가 선발대를 따라 집중된 화력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광야로 나가 수많은 길을 만들고, 모두가 프런티어가 되는 것이어야 한다.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의 특별한 교육을 제공해 한명 한명이 특별한 인재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그 핵심 정책으로 모든 학생들이 특목고 과정을 자신의 관심과 소질, 수준과 진로에 따라 수강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대한민국은 추격의 시대를 지나 이미 추월의 시대에 접어든 선진국이다. 모든 국민은 선진 경제의 혜택을 함께 누려야하고, 모든 혜택은 국민 모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2020년대 대한민국에는 평준화와 특목고, 다양화와 개개인화, 기본학력 보장과 특수 교육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교육전략이 필요하다. 나는 영국의 일반고가 우리나라 전문대 수준 이상의 실험 실습 시설과 장비, 인력과 재원을 갖춘 점을 확인하고 매우 놀랐다. 내가 10년 전에 방문한 독일의 고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의 모든 일반고에 그와 같은 수준의 교육환경을 갖추려면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보다 효율적이며 교육적인 전략으로 모든 특목고를 과학교육센터(과학고), 영재교육센터(영재고), 공학기술교육센터(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외국어 교육센터(외국어고), 예술교육센터(예술고), 체육교육센터(체육고)로 전환하고, 분야별로 중급과 고급의 교육과정을 전담하는 체제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누구나 과학에 관심과 소질이 있으면, 자신이 배정된 학교에서 과학 분야 기초학습을 수행하게 하자. 기존의 과학고를 과학교육센터로 전환하고 추가적으로 몇몇 과학기술센터를 설치하여 중급과 고급 수준의 과학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게 하자. 예술교육은 국가와 지자체가 전액 부담하는 일반교육으로 전환하자. 지금의 예술고를 공립으로 전환하거나 새로 지역별로 예술교육센터를 설치하여 원하는 모든 학생들이 중급과 고급의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자. 우리 일반고에 가장 부족하고,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한 교육 중의 하나가 공학기술교육이다. 우리는 웬만한 전문대학이 보유한 장비보다 더 좋은 고가의 장비와 강사진을 모두 특성화고에 집중시켜놓고 소수의 학생들만 사용하도록 하여 낭비하고 있다. 모든 특성화 고교를 일반고 학생들도 공학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학기술교육센터로 전환하자.

센터별 교육은 학생별로, 요일별로, 오전-오후-저녁으로 나눠도 되고, 주말이나 방학을 활용해서 진행해도 된다. 소규모 그룹 활동 중심으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자. 이 모델은 유럽 선진국과 같이 학교별로 높은 수준의 시설을 갖추는 것보다 더 나은 모델이 될 것이다. 유기적 네트워크로 작동하는 온 사회, 온 마을, 온 도시가 함께 연대하여 활동하는 교육-학습 네트워크 플랫폼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청소년 부족국가이다. 2021년 출생아수는 26만 명에 머물렀고, 이는 2020년에 비해 1만 2000여명이 줄어든 수치이다. 지금이 기회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교육투자 여력이 생겨나고, 정책적으로는 2025년부터 전면적으로 고교학점제가 실시된다. 이제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게 다양한 분야를 학습할 수 있도록 선택형, 모듈형, 프로그램별 교육이 가능한 체제가 도입되고 있다. 이때에 그동안 선봉대로, 소수정예를 위해 조성한 시설과 장비를 모두를 위한 시설로 전환하여 활용하면 된다.

특수목적 교육센터에도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과학고를 늘리자고 하면 많은 반대에 부딪히지만, 과학기술 교육 강화는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다. 이제 프로그램 중심으로, 각종 활동 중심으로, 선택형 교육프로그램으로 전면 개편하여 모든 학생들이 특목고 학생이 되도록 하자. 진정한 교육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 필자 소개 : 최승복은 교육부 공직자로, 현재 서울시교육청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중이다. 플로리다주립대(FSU)에서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의 학업성취도 및 인종분리에 미치는 영향 분석'으로 공공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순천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2015)했고, 숙명여대 및 광주교대 등에서 교육정책론과 진로교육론 등을 강의했다. 저서로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2018), <포노사피엔스 학교의 탄생>(2020), 공역서 <교육은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는가>(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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