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4 10:59최종 업데이트 22.02.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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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의소리> 기자와 통화한 내용을 들어보면, 김건희씨는 국민과 언론을 만만하거나 우습게 보는 듯싶다. 국민에 대해서는 "일반사람들은 바보"라고, 언론에 대해서는 "우리가 맘먹고 언론플레이 하면 의혹이고 뭐고 다 무효가 된다"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다. 덧붙여, 경찰과 검찰은 알아서 기는 권력의 주구(走狗)인 것처럼 묘사했다. 농반진반이겠지만, 그녀에게는 남편도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는 '바보'일 뿐이다.

김씨가 오래전부터 무속에 심취했다는 점은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 '왕(王)'자 논란과 맞물려 괴이한 느낌을 준다. 주술과 미신이 정치에 개입하면 국운이 쇠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녹음파일이 공개된 후 김씨 인기가 올라갔다거나 팬클럽 회원이 늘었다거나 지지층이 더 결집했다는 보도는 이번 대선의 이상 징후를 잘 보여준다. 역사는 이성과 합리로만 굴러가지 않는다지만,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 기현상은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하다.

허위 이력을 사과한다며 마련했던 기자회견을 돌이켜보자. 온갖 비리 의혹의 당사자가 국민과 언론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외려 우습게 보는 태도를 보였다. 진정 깊이 뉘우치고 사과한다면, 남편과의 연애담을 들먹일 게 아니라 수사기관 조사를 자청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많은 국민이 그녀의 진정성을 인정했을 거다. 그녀의 이 무모한 당당함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첫 번째] 천하무적 검찰권력

첫째는 '천하무적' 검찰권력이다. 남편이 이끄는 검찰이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전 정권 실력자들을 마구 잡아넣은 데 이어 현 정권 고위직 인사들도 거리낌 없이 치는 걸 지켜보면서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4대 권력 중 검찰권력이 최고라고 여겼을 법하다(나머지는 정치권력, 언론권력, 재벌권력이다). 이런 최강 권력이 동반자이니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실제로 그녀는 통화에서 "우리 검찰"이라는 표현을 썼다.

진부한 얘기지만, 우리나라 검찰권은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막강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힘이 약해졌다고 말하는 건 사실과 다르다. 형식적으로는 그런 면이 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주요 수사영역은 여전히 검찰 아성이고,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의 위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해 14명이나 기소됐는데도, 구속된 그 회사 회장과 여러 해 동안 특별한 거래를 지속한 '큰손' 김씨는 조사 한번 받지 않았다. 여론을 의식한 검찰이 뒤늦게 소환조사 방침을 밝히자 김씨는 대놓고 거부했다. 이후 검찰은 묵묵부답. 같은 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치는 특정 후보와 그 가족 관련 수사를 진행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제해야 할 사실관계가 틀렸다. 윤 후보와 김씨 의혹 관련 수사 중에는 제때 안 해서 늦어진 게 많다. 애초 대선과 상관없는 수사였다는 얘기다.

[두 번째] '우리 편' 언론

다음으로 '우리 편 언론'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조국 사건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 관련 언론보도는 김씨에게 한층 자신감을 불어넣었을 법하다. 그녀 눈에 언론은 검찰의 든든한 동업자로 비쳤다. 불의한 정치권력을 치는 수사라고 하니 앞뒤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달려들었다. 먹잇감(수사 정보)을 던져주면 덥석덥석 물었다. 속기사 노릇에 그치지 않고 살을 붙였다.

못 보는 건지 못 본 체하는 건지 과도하고 억지스러운 수사를 비판하는 보도는 드물었다. 엉터리 공소시효를 내세워 이중기소라는 반칙을 써도(정경심 입시비리), 청와대 하명으로 경찰 수사가 진행됐다는 증거가 약해도(울산시장 선거 개입),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수사로 바로잡겠다는 검찰지상주의를 대놓고 드러내도(월성 원전), 민정라인 책임은 강하게, 검찰 지휘라인 책임은 약하게 물어도(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별 문제가 안 됐다.

언론의 비판 기능은 정치권력에만 작동하고 검찰권력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검찰권력의 정점이던 윤 후보와 그 가족 비리 의혹에 대한 소극적 보도는 그 연장선이었다. 김씨가 보기에 기자들은 헛똑똑이였다. 맘만 먹으면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필요하면 오빠-동생이나 누나-동생 관계를 맺으면서.

[세 번째] 대중의 이중성

세 번째는 대중의 이중성이다. 언론 프레임의 영향도 있지만, 대중 스스로 확증편향에 빠진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택적으로 정의롭고, 선택적으로 공정하고, 선택적으로 분노한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김건희씨와 정경심씨 비리는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두 사람 다 부풀리거나 거짓으로 작성한 문서로 해당 대학(또는 대학원)의 업무를 방해했다. 문서 위조 혐의도 닮았다. 차이점은 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한 사람은 자식을 위해서였다.

정씨의 죄는 자식의 대학/대학원 입시용 비교과 활동(스펙)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기재한 것이다. 그런데 김씨의 허위 학력/경력 기재는 정씨에 비할 바가 아니다. 2001년 한림성심대 시간강사를 시작으로 2014년 국민대 겸임교원에 이르기까지 13년간 5개 대학에 상습적으로 거짓 이력서를 제출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지난 2021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사정이 이런데도 대중의 분노에는 온도 차가 느껴진다. 정씨에 대해서는 마녀사냥의 광기가 번뜩일 정도로 비난을 퍼부어댔지만, 김씨에 대해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사과로 퉁치려는 분위기다. '진보의 위선'을 매섭게 때렸던 지식인 나부랭이도 마찬가지다. 기이한 침묵의 카르텔이요 이중잣대다.

나아가 김씨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특히 제도적 맹점에 따른 입시 스펙 비리를 공정 가치의 훼손으로 여기며 분노한 젊은 세대 일부에서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 이채롭다. 제대로 몰라 그런다면 이해할 여지가 있지만, 알면서도 그런다면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그다지 신뢰할 게 못 된다.

공익과 상관없는 사생활은 제외한다 쳐도, 장관 후보자 부인은 그토록 혹독하게 검증하면서 국민적 단죄 대상으로 삼고, 그보다 훨씬 위상이 높은 대선후보 부인은 후보 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검증 대상이 아니라거나 적당히 넘어가자는 건 대체 무슨 논리인가? 역대급 궤변이자 내로남불의 극치다.

김씨는 여론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언론인, 지식인의 이중성에 내심 감탄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자기확신이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조국 사건 이후 공정의 화신으로 둔갑한 윤 후보가 부인의 '거짓 이력'에 대해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라고 감싼 것도 참고할 만하다.

[네 번째] 인맥의 힘

네 번째는 인맥의 힘이다. 편법과 불법으로 부동산 재산을 불렸다는 의혹에 휩싸인 어머니 영향을 받아선지 김씨는 사람 사귀는 수완이 좋았다. 검사, 기업인, 무속인, 사업가 등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인맥을 가꿔왔다.

법이나 규정에 가로막힌 일도 인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일찍이 터득한 것 같다. 어머니가 성남 도촌동 땅 매입 시 통장잔고증명서를 위조해준 대출 중개업자 김모씨는 그녀의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동기로 코바나컨텐츠 감사이기도 했다.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으로부터는 장외매수, 신주인수권 매입, 계열사 주식 액면가 인수 등 갖가지 특혜를 받았다. 권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주가조작을 벌이던 2010년 안팎에 미심쩍은 거래도 있었다. 도이치모터스는 코바나컨텐츠 전시행사의 최다 협찬사이기도 했다. 김씨가 대표를 맡은 2009년 이후 2019년까지 10년간 열린 12회 전시회 중 9회나 협찬했다.

김씨 모녀의 사금고라고 불릴 정도로 자주 특혜성 대출을 해준 신안저축은행 대표 박모씨도 그녀의 경영전문대학원 동기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박씨와 윤 후보와의 '간접 인연'이다.

2011년 대검 중수1과장이던 윤 후보는 저축은행 비리를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박씨는 2012년 7월 금융감독원에 의해 대출 비리로 고발당해 대검 중수부 조사를 받았다. 그 무렵 윤 후보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옮겨갔다. 이듬해 1월 검찰은 박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지난달 개정증보판으로 재출간한 <윤석열과 검찰개혁>(7부 윤우진과 김건희, 그 후)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검찰 인맥도 돋보인다. 유럽 여행까지 함께 다녀올 정도로 가까웠던 양모 검사는 이런저런 소송에 시달린 모녀의 든든한 뒷배였다는 의심을 받는다. 김씨가 "가족 같은 사이"라고 밝힌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은 지속적으로 전‧현직 검사들을 관리했다. 회장 다이어리에는 양 검사와 윤 검사가 자주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던 윤 검사와의 결혼을 인맥 관리의 결정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섯 번째]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김씨는 문 대통령을 남편의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처음 만난 게 아니다. 그녀와 문 대통령의 인연은 8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12월 코바나컨텐츠는 '점핑 위드 러브(Jumping with Love)'라는 사진전을 열었다. 이 행사에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문 대통령이 참석했다. 대선 패배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을 때다. 윤 검사는 국정원 댓글 사건 항명 파동으로 징계를 앞둔 상태였다. 뒷날 동맹과 배신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의 씨앗이 코바나컨텐츠였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그로부터 3년 반 후인 2017년 5월 청와대에 입성한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활약한 윤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다. 2년간 적폐청산 칼을 휘두른 윤 검사는 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식에 김씨가 참석한 모습은 방송화면이나 사진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윤석열 -김건희 부부,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촬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부인 김건희 씨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이날 김씨는 문 대통령을 위한 깜짝선물을 마련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바로 6년 전 '점핑 위드 러브' 행사에 참석한 문 대통령 모습이 담긴 대형 사진액자였다. 당시 문 대통령은 주최 측 요구로 사진을 찍었는데, 제자리서 뛰어오르는 포즈였다. 김씨는 임명식장에서 이 액자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보통 사람들은 점프할 때 앞을 보며 제자리 뛰기를 하는데, 문 대통령은 하늘을 보고 뛰더라. 그렇게 뛰는 사람은 오바마와 문재인밖에 없었다. 그걸 보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예견했다.

엉뚱하고 돌발적인 발언이었지만, 김씨 덕분에 행사장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임명식이 끝난 후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오늘 검찰총장 부인이 대통령님을 기분 좋게 해줬다"며 문제의 사진을 텔레그램 단체방에 올렸다.
 

2013년 12월 15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전시관에서 열린 '점핑위드러브'전을 관람하고 점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해프닝에 관해서는 <윤석열과 검찰개혁>(2부 비극의 탄생 '윤석열 검찰')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최근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는 후속취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렸다. 당시 윤 후보의 뒤를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씨가 문 대통령에게 느닷없이 "뒤를 돌아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 눈길이 한 곳으로 쏠렸다. 거기에는 김씨가 준비해온 대형 액자가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녹취록에 비춰보면, 김씨는 어느 시점까지는 문 대통령을 남편의 든든한 후원자로 여긴 듯싶다. <서울의소리> 기자와 통화하면서 "우리가 원래 좌파였잖아. 좌파 선봉장. 문재인-윤석열 조합 몰라?"라고 말한 게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까닭이다.

그녀는 또 조국 수사를 언급하면서 "우리 남편 진짜 죽을 뻔했다. 이 정권을 구하려다가 배신당해서 이렇게 된 거다"라고 했다. 윤 후보가 지난해 12월 전남 순천을 방문해 "민주당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민의힘을 선택한 것"이라고 입당 배경을 밝힌 것과 맥락이 닿는 말이다.

조국 사태 이후 친위쿠데타 설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나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윤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부터 대권을 꿈꾸고, 일부 여권 실세들이 그의 정치적 야심을 부추기거나 잠재적 대선후보로 여겼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사상 처음으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추진되던 2020년 12월, 전직 검찰 고위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나는 검찰공화국 대선후보 탄생이 임박했다는 징후를 느꼈다. 윤 총장과 가까운 전‧현직 검사들이 그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뒤에서 돕는다고 했다. "조국 수사를 그토록 세게 한 것은 경쟁자 제거 차원이었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나 믿기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새해 기자회견에서 윤 후보를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감싸면서도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총장 역할을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라고 견제구를 날렸다. 검찰총장 징계가 행정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사실상 무효가 되는 바람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직후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윤 총장은 한때 주군이던 문 대통령의 '충고'가 무색하게 사표를 던지고 유력한 대선후보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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