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의 한 장면. ⓒ 전주국제영화제

 
"너희들이 이러고 다니는 걸 부모님이 알아?"

분노로 가득한 한 시민의 말에 결기 있는 말이 되돌아 왔다.

"내가 이 아이 엄마다!"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부모 모임을 정면으로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지금까지 성소수자를 다룬 극영화 다큐멘터리가 여럿 있었는데 이들의 부모를 내세운 영화는 없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연분홍치마가 주축이 돼 지난 2017년부터 꾸준히 쌓아온 촬영의 결과물이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주인공은 두 엄마다. 활동명 비비안과 나비. 각각 이들의 아이가 어느 시점 커밍아웃을 했다. 영화는 그저 보통의 엄마였던 이들이 성소수자 자식을 인지하고, 받아들인 뒤, 이해해나가면서 관계를 회복하고 나아가 이들을 위한 투사를 자처하게 되는 과정을 제법 탄탄하고 묵직하게 그려나간다.

소수자가 소수자성을 입증해야 하는 사회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의 한 장면. ⓒ 전주국제영화제

 
소수자가 소수자성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영화는 비비안과 나비, 이들의 자식인 예준, 한결을 교차로 혹은 함께 제시하며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던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와 이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마냥 아프고 슬프지만은 않다. 사회의 외면과 일부 사람들의 혐오 속에서도 이들은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너에게 가는 길>이 뛰어난 지점은 소재와 메시지의 중요성만이 아니다. 영화적으로 볼 때 두 엄마의 캐릭터가 상당히 입체적이고 구성 또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단순히 인물이 지닌 아픔을 드러내서 말미에 교조적으로 특정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대처, 그들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사랑했던 엄마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페미니즘 운동에서 가장 예민한 축에 속하는 통칭 레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할 지점을 던진다. 숙명여자대학교 트랜스젠더 입학생의 입학 포기 사건을 언급하며 여성이 소수자를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 또한 여과 없이 전달한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이들이 과연 우리 사회 소수자 인권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지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의 한 장면.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적 구성 외에도 이 작품이 뛰어난 점은 진정성에 있다. 비비안과 나비는 성소수자 자녀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고, 자신들 또한 흔들려 왔음을 고백한다. 그런 이들이 투사로 거듭나게 된 건 다름 아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기독교 집단, 보수 단체 회원들의 물리적 폭력 때문이다. 아이들 위해 함께 피켓을 든 자신들에까지 무분별하게 폭력을 가하는 혐오 세력을 보며 공통적으로 부모들은 성소수자 당사자들인 아이들이 그간 살아온 이 사회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사랑과 이해로 시작해 각성까지 하게 된 성소수자 부모 연대는 내가 바로 성소수자 아이의 엄마이고 아빠임을 당당하게 말하며 지금도 일상에서 함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때론 비장하게 때론 유쾌하게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이 영화로 등장한 것에 무한 응원을 보낸다. 지난 1일과 2일 상영관 객석 곳곳에서 웃고 우는 관객들의 모습이 꽤 포착됐다. 그만큼 정서적으로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너에게 가는 길>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오는 5일 오전 11시 30분. 영화제에서의 마지막 상영이 있다.
너에게 가는 길 전주국제영화제 성소수자 부모연대 연분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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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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