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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기사 수정: 5월 8일 오전 11시 30분]



지난해 5월 4일 오후 1시, 45인승 전세버스 한 대가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홍보관 앞에 멈춰 섰다. 경북의 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학부모회 회원 등 40여 명이 버스에서 내렸다.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학생 30여 명은 학부모들의 인솔 아래 원자력홍보관 정문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머니와 함께 에너지투어'라고 적힌 현수막이었다. 이날 행사는 이 학교 1학년 학부모회가 주관하고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에서 후원했다.


모든 경비 한수원이 부담하는 '원전 투어'




이날 학생들은 오후 내내 원자력홍보관 및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 월성원자력본부 등을 견학했다. 이날 교통, 식사 등 모든 경비는 한수원 측에서 부담했다. 홍보시설은 원자력의 역사, 안전성, 원전기술의 우수성 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학교 교사는 지난 12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당시 견학은) 우리 학교에서 먼저 신청한 건 아니고, (월성)원자력본부에서 견학프로그램 지원 공문이 와서 학부모회가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아 이뤄진 것"이라며 "(견학프로그램) 공문은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경주지역 관내 학교가 모두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올해도 같은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공문을 받았으나 신청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꽃놀이' 등 선심성 관광 프로그램도

지난 2014년 천병태(77) 한국원자력문화재단(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당시 이사장은 <에너지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원전 현장에 살고 있는 주민들부터 만족시켜야 진짜 홍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수원은 각 원전 지역마다 홍보관을 가동하고 지역 주민과 학생 등을 상대로 견학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단비뉴스>가 지난달 26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2013~2017년 한수원 견학프로그램 집행내역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 5년간 본사 및 전국 5개 원전본부(고리, 한울, 한빛, 월성, 새울)에 총 4만5297명을 초청해 교통비, 식비, 숙박비 명목으로 총 18억4749만2000원을 지원했다. 참가자 중 학생은 9644명, 지역주민은 9165명이었다.


프로그램 중에는 견학 외에 주변 관광지를 묶은 여행코스가 포함된 것도 있다. 이헌석(44)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지난 6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한수원 등 원자력 공공기관들은 예전부터 지역 노인 등 주민들을 상대로 선심성 관광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며 "지역 여론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지로 발전소 견학은 짧게 하고 소위 '꽃놀이'를 보내주는 등의 행태가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지난해 5월 12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월간지 <여성조선> 독자 열 가족을 초대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초청된 가족들은 월성원자력발전소 견학과 함께 첨성대, 경주박물관, 문무대왕릉, 주상절리 등 경주의 역사·자연 명소를 탐방했다.

<단비뉴스>가 지난해 6월과 지난 2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한수원의 2012~2017 홍보예산 집행 내역에 따르면 한수원은 원전 인근 지역 주민 행사에도 지원비를 썼다.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4500만 원, 3억6530만 원을 지원한 경주시체육회의 벚꽃마라톤대회가 대표적이다. 한수원은 (사)동리목월기념사업회(소재지 경주)가 제정한 2016년 동리목월문학상 시상식에 1억4000만 원, 경주문화원의 2016년 신라문화제에 1900만 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한수원의 2017 사업자 지원사업 내역을 보면 고리·월성·새울(신고리)·한빛·한울 등 5개 원자력본부에 총 549억3700만 원의 사업비가 집행됐다. 그중 문화진흥사업에 쓰인 금액이 78억1500만 원, 사업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기타사업'에 쓰인 금액이 45억5200만 원이다. 월성원자력본부의 2017년 사업자 지원사업 선정 내역을 보면 지역사회 문화조성사업 명목으로 지역기관 및 단체가 주최하는 각종 체육문화행사에 6억8488만 원을 지원했다. 월성본부는 2018년에도 같은 명목으로 6억600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한수원은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자체 발간지도 꾸준히 내고 있다. <고리동산>, <월성양지>, <한빛뉴스>, <한빛공감(이상 한수원)>, <청정누리(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이 대표적인 정기 간행물이다. 지난달 26일 <단비뉴스>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최근 5년간 정기간행물 내역'에 따르면 한수원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총 9종의 정기간행물을 매월 혹은 격월(또는 분기별)로 3000~1만5000부씩 찍어 관공서, 마을회관, 도서관, 학교, 카페, 미용실 등에 배포했다. 이를 위해 26억1555만8000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방사성폐기물을 관리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역시 월간(2017년은 격월) 간행물 <청정누리>를 발행하는 데 5년간 10억900만 원을 썼다.

도심건물·대중교통·극장 등에 친원전 광고

한수원 등 원자력 공공기관의 전방위적 홍보 활동은 원전 주변지역에만 그치지 않았다. <단비뉴스>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한국수력원자력 최근 5년간 옥외광고예산 세부내역'에 따르면 한수원은 서울·대구·광주·부산·울산·전주 등 전국 주요 도심의 건물 옥외전광판이나 버스터미널·고속철도(KTX)역·지하철승강장·공항·극장 등에서 기업 이미지 광고를 했다. 버스나 택시 차체에 홍보물을 입히는 래핑(wrapping) 광고, KTX 열차 객실 모니터의 영상 광고도 했다. 한수원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옥외광고에 투입한 예산은 총 32억2981만7000원이며 이중 13억7000여만 원은 한수원 본사가 경북 경주시 양북면으로 이전한 2016년에 집중됐다. 원자력환경공단 역시 지난 5년간 2억1900만 원을 들여 경주지역 도로교통표지판이나 시외버스터미널, KTX 신경주역 등에서 방사성폐기물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

한수원은 지난 2014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 종로2가 와이엠시에이(YMCA)빌딩 1층에 에너지 체험 카페 '커피빈 에너지팜 종로YMCA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아기자기한 모형 원전 등 에너지 관련 전시물과 게임, 도서 등을 마련해놓은 이 카페는 한수원과 커피빈코리아가 운영비를 공동 부담했다. 지난 3년 반 동안 일반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원전을 친밀히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진 이 카페를 운영하는 데 한수원 측에서 부담한 돈은 총 12억1240만 원이다.


탈핵 여론 맞서 '원자력 포퓰리즘 대응방안' 기획

지난 2016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찬열(59·바른미래당) 의원은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원자력 정책의 포퓰리즘화 가능성과 대응방안'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2015년 12월 한수원 홍보실이 예산 7713만 원을 들여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고경민 제주대 학술연구교수)과 함께 만든 것이었다.





지난 1월 10일 <단비뉴스>가 전달받은 이 보고서는 '원자력 포퓰리즘'을 일으키는 주체로 "시민사회의 반핵·탈핵세력 및 단체, 원자력에 대해 비판적인 일부 언론, 집권과 재선을 목표로 정치활동을 벌이는 정당과 정치인"을 꼽았다. 보고서는 이어 "그들의 논리가 사회 포퓰리즘, 언론 포퓰리즘, 정치 포퓰리즘화 되는 가능성을 검토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연구 목적을 밝혔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높아진 탈핵 여론을 비합리적인 '원자력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한수원의 시각이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원자력 포퓰리즘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로 '무지한 유권자'를 들었다. "대다수 유권자는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복잡한 정책적 사안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고, 따라서 정책투표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언론보도 프레임을 친원전 세력이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긍정적인 원자력 이슈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제부터는 국민을 대상으로 방사선과 원자력을 생활 속에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사업 방안으로는 ▲중고등학생 대상 원자력 이슈 관련 토론대회 개최 ▲대학생 대상 한수원 주관 해외 원전 탐방프로그램 및 정책 공모전 실시 ▲대학생 온라인 원자력 홍보대사 구성 ▲원자력발전백서, 원자력 홍보 브로슈어 등 원자력 관련 자료의 모바일 다운로드 제공 등을 제안했다. 또 "해당 연구내용을 사내 홍보 및 교육, 한수원 및 원전산업계 홍보, 대외협력 담당자 교육 등에 활용하고 도출된 대응방안에 근거해 언론, 정계, 학계 등에서 제기되는 반핵, 탈핵 담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한수원 직원이 언론사 '독자 투고'로 여론몰이  

지난해 12월에는 한수원 직원들이 지역 언론사 독자투고란을 이용해 여론몰이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디어오늘>은 2017년 12월 7일 자 '"원자력 깨끗하다" 경주 시민은 한수원 직원이었다' 기사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의 '언론사 독자투고 실적 알림'이라는 문건을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한수원 소속을 밝히지 않고 지역 언론사 독자투고란에 원자력 찬성 글을 집중적으로 보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한수원 직원이 주소지와 이름만 밝힌 글을 언론사에 보내, 마치 원자력에 찬성하는 일반 시민의 의견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원자력산업의 이해당사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마치 일반 주민의 의견인 듯 언론에 글을 싣는 건 대중 여론을 호도하겠다는 것"이라며 "언론을 통해 조금씩 실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지금껏 계속 반복돼 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경제적 사정이 열악한 지역 언론에 한수원 같은 대형 공공기관은 영향력이 아주 큰 광고주"라며 "(독자투고는) 결국 언론이 광고주에게 포섭된 사례"라고 말했다.

초등생 알림장, 고교생 원자력 골든벨 퀴즈도

한수원은 지난 2016년 3월 '원자력 홍보 알림장'을 원전 지역 초등학생에게 무상 배포했다가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회수한 일도 있다. 경주시의회 정현주(53·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홍보물이 알림장을 통해 배포되고 있다'는 제보를 경주 지역 학부모로부터 받았다. 알림장을 배포한 것은 평화운동연합이라는 민간단체였다. 정 의원은 지난 12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알림장의 자세한 배포 경위와 배포 학교 등을 확인해줄 것을 경주교육지원청과 한수원 홍보전략팀에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한수원은 학부모 항의가 거세지자 알림장 배포를 중단하고 이미 배포된 알림장을 회수하는 것으로 사건을 수습했다.

이 사업을 위해 한수원이 평화운동연합에 수천만 원을 지급했던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홍익표(51·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원자력 홍보 알림장 노트 무상배포 운동 협찬 약정서'에 따르면 평화운동연합은 원자력 발전소 주변 214개 학교에 5만 부의 알림장을 배포하는 사업에 3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평화운동연합은 위에 언급된 <원자력 포퓰리즘 보고서> 공동연구자인 장성호(55·건국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단체로, 지난 2001년 한반도 통일과 평화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정 의원은 "배포처인 평화운동연합은 당시 인쇄에만 관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원자력 포퓰리즘 보고서에는 "유치원생에겐 원자력 효과를 알릴 그림책, 색칠공부 등 친근한 수단으로 접근할 수 있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론 '원전 탐험대' 같은 현장 체험학습을 확대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정책 제안이 있다. 2016년 10월 <한겨레>는 "원전 알림장은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알림장 내부를 보면 원자력은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로,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한수원은 2014년과 2015년에도 평화운동연합에 각각 3000만 원과 3500만 원을 지급해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원자력 관련 골든벨 퀴즈 행사 등을 열도록 했다. 예를 들어 2015년 11월 16일 서울 구로구 구일중학교에서는 '위기탈출 세이프티(SAFETY)! 도전 골든벨' 행사가 한수원과 평화운동연합 주최로 열렸다.

학생 대상 원자력 교육은 다양한 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하재주)은 2015년부터 '원자력 창의력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원자력 지식과 정보를 활용한 창의적 사고력 측정'을 내세운 이 대회에는 예선을 거친 충청권 소재 중·고등학교 20개 팀(팀별 학생 2명, 지도교사 1명) 총 60명이 본선에 참가한다. 중등부·고등부 대상 각 1개 팀, 금·은·동상 각 2개 팀, 장려상 각 3개 팀 등 총 20개 팀에게 상장과 부상(대상 60만 원, 금·은·동·장려상 각 50·40·30·20만 원 상당 도서문화상품권)을 수여한다.

 



교과서에도 친원전 내용 넣도록 요구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구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학생들에게 친원전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교과서 제작에도 개입했다. 문화재단은 해마다 초·중등교과서를 모니터링하는 연구용역을 준 뒤 선별한 내용을 교육부 수정 요청했다. 교육부는 사단법인 한국검인정교과서를 통해 각 출판사에 공문을 보냈다.

2015년 발간된 녹색당의 <핵 마피아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재단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교육부에 수정 요청한 내용은 총 1615건에 이른다. <뉴스타파>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의 교과서 수정 요청 내역을 분석한 결과 전체 1267건 중 19%에 해당하는 241건이 실제로 교과서에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2011년 고등학교 2학년 교학사 화학 교과서에는 '대기 오염을 막는 방법으로 풍력발전소 사진 대신 핵발전소 사진을 넣어달라'는 요청이 반영됐다. 원자력 발전은 대기 오염 물질을 전혀 내뿜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반영되지는 않았으나 문화재단이 수정을 요청한 사항 중에는 교육부가 2010년 발행한 초등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에 '우리 고장을 대표할 수 있는 자랑거리'로 지평선 축제 대신 고리 핵발전소를 넣어달라는 내용도 있다. 또 2008년 초등학교 5학년 교육부 교과서에 해수욕장 사진을 원전이 보이는 해수욕장 사진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드라마·예능·퀴즈까지 공략해 찬핵 여론 조성

한수원 등 원자력 공공기관은 뉴스 보도나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드라마, 예능, 퀴즈프로그램 제작을 후원, 협찬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이 원자력에 우호적인 의견을 갖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자는 취지였다. <뉴스타파>의 2014년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2012년 방영된 한국방송(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1억6500만 원을 지원했다. 당시 최고시청률 45%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이 드라마에는 '방사선은 우리 생활에 유용하다'는 등의 대사가 극의 흐름과 관계없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10년에는 한수원이 KBS 퀴즈 프로그램 <1대100>에 1년간 총 4억431만 원을 지원하는 대가로 자막광고 72회, 원자력 관련 문제 출제 12회(월 1회씩), 한수원 직원 출연 12회를 요구했다. 실제로 그해 이 프로그램에는 '원자력 에너지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아랍에미리트(UAE)·요르단 등 원전 수출정책의 성과를 강조하는 문제들이 주기적으로 출제됐다. 2010년 4월 6일 방송에서는 '전기의 날(매년 4월 10일) 기념 특집'이라는 명목으로 한수원 직원 92명이 단체로 출연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2012년에는 원자력환경공단이 역시 같은 프로그램에, 원자력문화재단은 KBS <퀴즈 대한민국>에 각각 3000만원씩을 지원했다. 한수원은 2013년 에스비에스(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과 방송계약을 맺고 그해 5월 19일 방송 촬영 장소로 월성원자력홍보관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우지숙(50)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6일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수원 등 에너지 관련 기관의 전방위적 홍보사업은 단순한 정책광고의 성격을 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공공기관이 공공자금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홍보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소수 의견이나 정당한 반론이 무시되는 전체주의적 '여론 독점'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선전 모델, 즉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라도 조직의 목표나 정책 기조를 설득하고자 하는 방식이 왕왕 있어왔다"며 "대부분의 선진국은 정파적인 정책에 대한 광고 홍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의 경우 홍보사업을 실행할 자원과 채널을 갖지 못한 집단이나 기관, 국민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 교수는 "정부광고 내용에 있어 무제한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법률적 규제, 정부 내 점검 장치, 의회의 견제 등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한 제도가 존재한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들이 이러한 편파적 정책홍보사업을 단 한 번의 점검절차 없이 집행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홍보사업들이 문제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공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헌석 대표 역시 "그간 원자력 홍보사업에 공공자금들이 아무런 통제 없이 쓰여 온 건 핵발전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제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친원전 여론 형성에 쓰이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발전소주변지역 지원금 등을 엄밀하고 투명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참사 불구 '원전 필요' 여론 높은 이유는

이처럼 공공자금을 쏟아부어 '친원전 이데올로기'를 주입해 온 결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원전 찬성여론은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1995년 설립 당시부터 정기적으로 실시한 원자력국민인식조사결과를 보면 2010년까지 '원전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줄곧 80%를 웃돌았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직후 78.2%로 다소 줄었지만, 이듬해 다시 87.8%로 오르더니 2013년에는 89.9%가 '원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원전의 안전성'을 묻는 질문 역시 후쿠시마 사고 직후인 2012년에는 긍정 응답이 34.8%까지 떨어졌지만 2016년 52.6%로 반등했다. 원전을 새로 짓거나 최소한 현상 유지를 해야 한다는 응답도 2011년 72.3%(신규증설 30%, 현상유지 42.3%)가 가장 낮은 수치였고, 2012년에는 87.3%(신규 39.5%, 유지 47.8%), 2013년에는 82.8%(신규 34.3%, 유지 48.5%)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두고 이뤄진 공론조사에서 4주간의 숙의과정을 거친 다음 조사한 시민참여단 의견은 원자력발전을 축소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53.2%로, 유지(35.5%)나 확대(9.7%)보다 높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원전, #홍보, #여론몰이, #한수원, #단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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