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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걱~ 서걱~.

병원 침대 아래쪽에서 내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소리가 났다. 아랫도리가 묵직한 느낌. 아프지는 않았지만, 생소했고 생생했다.

지직~ 지지직~.

마스크를 쓴 의사는 익숙하게 내 살을 태웠다. 냄새가 수술실에 진동했다. 그 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병상에 누워 하룻밤을 달게 잤다. 1월 18일 아침에 깨서 노트북을 켰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꿈의 시급

필자가 7주동안 붙들고 살았던 전화기. 이 전화기를 통해 많은 이들의 열정을 전해 받았다.
▲ 10만인 클럽 전화 응대 필자가 7주동안 붙들고 살았던 전화기. 이 전화기를 통해 많은 이들의 열정을 전해 받았다.
ⓒ 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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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입니다..."

지난 7주간 거의 매일 쉴 새 없이 반복했던 인사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겨울 방학을 맞아 잠시 들어왔다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가 생겼다.

아직 대학생이라 최저 시급을 받아왔으나, 10만인클럽은 후했다. 내 기준에선 꿈의 시급이었다. 돈을 많이 받으려고 단기 통역 아르바이트를 뛰어봤지만 온종일 고생하고 8만 원을 받았다. 10만인클럽은 야근 없이 보통 직장인의 정상근무 시간인 나인 투 식스(8시간) 근무였다. 무조건 시작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들어왔다.

나는 작년 12월 3일, 10만인클럽의 내부자가 되었다. 촛불 정국에 폭주하는 회원 가입 문의를 응대하는 업무였다.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매월 1만 원 이상씩 자발적으로 정기구독료를 내는 후원자들의 모임. 기존의 직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후원 문의 전화가 밀려오자 나에게까지 아르바이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으로 가입해 몇 편의 기사를 써왔기에 오마이뉴스는 내게 어색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첫 발걸음은 상당히 무거웠고, 예상보다 버거웠다. 긴장을 감추려고 물 세잔을 마시고 자리에 앉았다. 내게 걸려온 첫 전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 매뉴얼을 읽었다.

첫 번째 전화의 떨림

지난 11월 12일 정오부터 16시간 동안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를 생중계한 오마이tv. 왼쪽부터 박정호 기자, 오연호 대표기자, 장윤선 기자.
 지난 11월 12일 정오부터 16시간 동안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를 생중계한 오마이tv. 왼쪽부터 박정호 기자, 오연호 대표기자, 장윤선 기자.
ⓒ 오마이tv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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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TV 후원 때문에? 아, 예...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죄송한데 선생님 계좌번호가 어떻게 되시나요?"

어설픈 초짜 안내원은 겨우 첫 전화를 끝냈다. 짧은 대화였지만 내 손은 흥건하게 땀으로 젖었다.

나의 첫 출근일은 지난해 12월 3일, 제6차 탄핵 촛불 범국민 행동의 날이었다. 전국적으로 232만 명이 모여 다 같이 박근혜 탄핵을 외쳤고, 광장에 나오지 못한 이들은 오마이TV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를 지켜봤다. 오마이TV 생중계를 통해 함께 한 이들의 분노와 공감은 10만인클럽 공용 핸드폰 번호를 타고 흘러들어 온 전화량으로 표출됐다.

직원들이 받을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전화를 한 통 받는 순간, 캐치콜 문자가 대여섯 개 쌓였다. 10만인클럽 직원들은 전화 리스트를 작성하고 한 명당 최소 100명 가까이 되는 가입 희망자분들께 연락을 드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은 거의 전쟁터였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의 홍수였다. 전화를 거는 쪽도, 전화를 받는 쪽도 감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말

지난해 11월 26일 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에서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에서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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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말이 전쟁터였고, 평일에도 비슷했다. 10만인클럽에서 아르바이트 기간에 참 많은 전화를 받았다. 대안언론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에서 시작했고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해달라"는 요구로 끝났다. 하루 평균 100통 이상이니 대략 3500건의 통화를 했다. 그 많은 전화 중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은 몇 가지 순간이 있었다.

하루는 나이 드신 남성분께서 어수룩한 한국말로 전화를 주신 적이 있다. "미국에서 이른 새벽부터 오마이TV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같이 할 수는 없지만 멀리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하며 가입을 희망하셨다. 그분이 전화를 끊기 직전에 남긴 말씀이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뜨겁게 살아있다.

"진실이 너무 쉽게 왜곡되고 있는 이 시대에 진짜 언론이 되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없이 감동했다. 전화 상담 업무의 특성상 감정 노동이 심할 수도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응원은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오마이뉴스 파이팅이에요!"
"오마이TV만 믿습니다. 촛불을 지켜주세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 나는 촛불 시민들과 함께 역사를 배웠고, 민주적인 시민의식의 위대함을 느꼈다. 치욕스러운 역사를 촛불로 태우고, 그 위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려는 보통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숨 막힐듯한 교육 풍토와 자본주의에 회의를 품으로 외인으로 살려고 했던 나 자신이 교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빨갱이론

지난해 11월 21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과 일대 도로에서 열렸다. 오후 9시가 되자 일제히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 청와대 '학익진' 포위작전 지난해 11월 21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과 일대 도로에서 열렸다. 오후 9시가 되자 일제히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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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감동의 연속은 아니었다. 하루는 출근 하자마자 공용 핸드폰의 진동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목소리의 감이 멀었다.

"김제동이 이 빨갱이 쉐이~"

"선조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났는데 젊은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재미교포 할머니의 험담이었다. "북한을 지지하고, 그들의 결정 없이는 우리 정책을 정하지도 못하는 게 빨갱이가 아니고 뭐냐"며 따졌다. 그분이 잘못 알고 계신 부분을 설명해드리며 15분간의 전화를 끝냈는데, 나는 이런 말에 쉽게 흥분해서 도발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차분하게 대처하는 내가 놀라웠을 정도다.

이뿐만 아니라 '오마이뉴스가 빨갱이 언론'이라며 따지는 분들도 있었다. 특히 "촛불집회에 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수고비를 받고 그 자리를 채운다"는 황당한 말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유언비어를 절대적인 사실인 양 믿고 계신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막무가내로 자기 말만 하고 끊었다. 그중 한 분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선생님, 제가 직접 가봤지만 저한테는 돈 안 주더라고요."

자기와 다른 말을 하면 무조건 빨갱이와 종북으로 쏘아붙이는 잘못된 풍토. 이런 것이 지역감정, 세대갈등, 빈부갈등을 낳았는데, 10만인클럽에 걸려오는 전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국민을 이분화시키고, 서로 싸우게 만들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극단적인 방법들이다.

썩은 것을 도려내면

하지만 나는 보았다.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이지만, 국민들은 대단했다.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고, 함께 외쳤다. 정상의 비정상화가 정상이었던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은 '정상의 정상화'를 외쳤다. 비폭력 촛불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심판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드높은 정신을 담기에는 대한민국이 너무 좁다는 생각도 했다.

오늘 나는 병실에 누워있다. 그동안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이 지냈는데 엉덩이에 혹이 생겼다. 치질이다. 서걱거리는 메스 소리를 들으며 다섯 개의 혹을 제거했다. 오랫동안 내 몸속에 쌓여온 '나쁜 놈'들을 떼어냈더니, 속이 시원했다. 떼어낸 자리를 불로 지졌다. 2주 뒤 상처가 아물면 나는 20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다시 남아공으로 간다.

2016년 끝자락과 2017년 초입 대한민국을 달군 촛불. 그 끝도 나와 같이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뜨거운 겨울의 끝에서 찬란한 꽃이 피어날 것이다. 얼마 전 지나치며 본 <낭만닥터 김사부>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야. 옳고 그름의 문제지."

*마지막으로 내가 7주 동안 받았던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공용핸드폰 전화 번호는 010-3270-3828이다. 나의 아르바이트 기간은 이제 끝이 나지만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옳은 언론을 희망한다면 꼭 전화 주시길.



태그:#10만인클럽, #오마이뉴스, #10만인, #후원,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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