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카스텐과의 인터뷰 직전. 기자를 향한 알 수 없는 배척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풀어졌다. 그들의 사흘간을 취재했다.

국카스텐과의 인터뷰 직전. 기자를 향한 알 수 없는 배척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풀어졌다. 그들의 사흘간을 취재했다. ⓒ 김주리


"인터뷰 녹취 들어가겠습니다. 아는 동생이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

지난달 27일 서울 합정동 '롯데카드 아트센터 아트홀' 공연장 대기실에서 국카스텐을 처음 만났을 때, 네 명의 멤버들 사이에서 필자를 향한 알 수 없는 배척감이 느껴졌다. 정면으로 앉은 기타 전규호, 베이스 김기범, 보컬 하현우, 드럼 이정길. 종종 너털웃음으로 웃는 이정길과 형식적으로 느껴지는 대답을 무뚝뚝하게 내놓는 하현우 외에 다른 멤버는 필자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괜히 왔나….'

거만하다거나, 인터뷰 같은 건 이젠 지긋지긋하다는 오만함은 분명히 아니다. 낯선 이에 대한 거리감, 아니 어쩌면 경계심에 가까운 이 분위기로는 도저히 뭐가 안 나오겠다 고민하던 차에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 자신들의 발언을 기삿거리로 정리해 인터넷에 풀어놓을 사람에 대한 민감함에서 온 거부감은 아닐까.

"담배 피우실 분은 피우세요. 저도 지금 한 대 피우고 싶어서요."

나름 어색한 분위기의 타개책으로 멤버들에게 담배 한 대씩을 권했다. 동시에 파격적인 제안을 던져보았다.

"참고로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할 기사는 멤버들과 매니저에게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때서부터 분위기가 이완되기 시작했다. '맞담배'의 영향인지 '선공개 후송고' 제안 때문인지,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필자가 뱉은 농담에도 웃기 시작했다. 초반에 보인 미디어에 대한 그들의 경계심은, 인디밴드로 시작해 '대중 뮤지션'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이들이 겪어온 수난과 배신감 등으로 인해 자연스레 습득된 결과이리라.

이 기사는 2월 27일 서울에서, 그리고 얼마 후인 3월 3일 도쿄에서 열린 국카스텐과 9mm 파라블럼 블릿(9mm Parabellum Bullet, 아래 9mm)과의 합동공연의 기록이다.

국카스텐과 9mm

 국카스텐의 공연에 앞서 진행된 일본 그룹 9mm 파라블럼 블릿의 공연. 두 팀은 에너지 있고 액티브한 서로의 음악에 호감을 느껴 합동 공연을 기획했다.

국카스텐의 공연에 앞서 진행된 일본 그룹 9mm 파라블럼 블릿의 공연. 두 팀은 에너지 있고 액티브한 서로의 음악에 호감을 느껴 합동 공연을 기획했다. ⓒ 김주리


 국카스텐은 영국 뮤지션 리암 갤러거가 이끄는 비디 아이, 일본 뮤지션 미야비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된 바 있다.

국카스텐은 영국 뮤지션 리암 갤러거가 이끄는 비디 아이, 일본 뮤지션 미야비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된 바 있다. ⓒ 김주리


"일본에도 국카스텐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있고 액티브한 음악을 하는 팀이 있다고 매니저를 통해 소개받았어요. 유튜브 등을 통해 9mm의 동영상을 찾아보게 됐고, 이 팀과 함께 공연하게 된다면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그들 역시 국카스텐의 음악에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해 들었고,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며 친분을 쌓게 됐죠. 와중에 9mm 측으로부터 합동공연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연락을 받았고, 기왕 열게 된 합동 공연을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진행하자는 의견이 나와 본 공연이 기획됐습니다. 오늘(27일) 공연 이후 3월 3일에 도쿄에서도 합동 공연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하현우)

사실 국카스텐이 해외밴드와 함께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 2015년 일본 뮤지션 미야비(Miyavi)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된 바 있고, 앞서 2011년에는 영국밴드 오아시스의 프론트맨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가 이끄는 비디 아이(Beady Eye)의 내한공연에도 참여한 바 있다. 해외에서의 공연 역시 처음이 아니다. 국카스텐은 2012년 일본의 대표 록 페스티벌인 섬머소닉(summer sonic)을 비롯해 미국 텍사스, 영국 런던에서도 공연한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 특별히 흥미로울 점이 있다면 국카스텐과 9mm가 서로의 곡을 서로의 언어로 카피한다는 점입니다. 한국 공연에서는 9mm가 자신들의 곡을 일부 한국어로 개사해 부를 것이며, 일본에서의 공연은 국카스텐, 우리의 노래를 일부 일본어로 번역해 부를 예정이에요." (하현우)

서울과 도쿄 공연 모두 관람했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9mm의 음악은 굉장히 파워 있고 생동감이 넘쳤다. 특히 무대 스태프가 한 곡당 거의 두 번꼴로 무대로 뛰어와 앰프에 연결된 케이블을 정리해줘야 할 정도로, 9mm의 기타리스트 타키 요시미츠의 광적인 액션과 귀를 부숴버리는 듯한 강렬한 연주는 한국 관람객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9mm의 공연이 끝난 뒤 20분가량 휴식시간이 이어졌고, 관중들은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쉽사리 공연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뒤에 이어질 국카스텐의 공연이 던질 경이로운 충격에 대해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

현기증

 국카스텐 합주현장에서 보컬 하현우는 마치 지휘자처럼 팀원의 연주를 진두지휘했다.  이처럼 탁월한 음악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하진 않았다. 음악적 소질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약점 또한 분명히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카스텐 합주현장에서 보컬 하현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현우는 <나는 가수다>에서 '미친 고음'으로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 김주리


 국카스텐과 9mm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관람객들. 이 날 공연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국카스텐과 9mm의 합동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관람객들. 이 날 공연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 김주리

국카스텐이라는 밴드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 2012년 MBC <나는 가수다2>(아래 <나가수>)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이미 홍대씬에서는 '실력 있는 밴드'로 유명했지만, 공중파 경연 프로그램에 등장해 1위를 쟁취함과 동시에 이들은 포털의 검색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인터넷 매체들은 국카스텐이 어떤 밴드인지를 앞다퉈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나가수> 첫 무대에서 부른 '한 잔의 추억'(원곡: 이장희)은 기묘한 기타사운드와 보컬 하현우가 내지르는 이른바 '미친 고음'으로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가수> 프로그램은 이미 정점을 찍고 하향세를 타시 시작한 상황이었다. 물론 국카스텐은 전에 없던 유명세를 챙겼지만, 이후 진행된 소속사와의 내분 등으로 이후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저 '한 잔의 추억'만이 추억처럼 남겨졌다.

다시 2월 27일, 50분가량 진행된 9mm의 공연이 끝나고 국카스텐의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의 막이 오르기 전, 닫혀있던 커튼 뒤에서 목을 푸는 소리인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인지 모를 보컬 하현우의 짤막한 외침이 몇 번 들려왔다. 특유의 목소리를 알아챈 관객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커튼이 열렸다.

첫 곡 '스크래치'가 요란한 기타 소리와 박진감 넘치는 드럼과 함께 시작됐고, 말로만 듣던 하현우의 '미친 샤우팅'이 터져나왔다. 앞쪽 측면에 앉은 관객 한 명이 얼빠진 얼굴로 귀를 막았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떠나서 머리까지 울려대는 그의 샤우팅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디 그놈에 고음과 샤우팅뿐인가. 이윽고 그가 내뱉어가는 노래 자체가 공연장 전체를 채우다 못해 터뜨릴 것처럼 이어졌다. <나가수>에서 보여준 '한 잔의 추억'은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그의 성량인지 카리스마인지 아니면 혼(魂)인지 모를 무언가가 머리를 계속 울려댔다. 사실 공연 중반부에는 약간의 현기증까지 일어났다.

비단 하현우의 노래를 떠나서 그들의 음악 자체가 전하는 파워풀하면서도 기묘한 울림은 어딘지 모르게 유럽 어디에 있는 서커스단이 연상되기도 하고, 오래된 흑백 그림 위에 장난처럼 여기저기 보라색으로 덧칠된 난해한 인상주의 미술 작품도 떠올랐다. 이지(理智)적인 경박함이랄까. 비교적 한국보다 록 문화가 대중화된 일본의 인기밴드 9mm에 대한 감상은 국카스텐의 공연 시작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자, 복잡한 말 다 집어치우고, 공연에 대한 감상은 사실상 하나였다.

'뭐하는 애들이야, 얘네…'

(* 기사는 [3일간의 동행 기록 ②] 편으로 이어집니다.)

 국카스텐 일본 공연 현장

국카스텐 일본 공연 현장. 이날 공연에서 국카스텐은 자신들의 노래를 일부 일본어로 번역해 불렀다. ⓒ 김주리



국카스텐 하현우 인디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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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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