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수정 : 29일 오후 3시 10분]

오월 한 달 동안 서울시 도심 곳곳에는 '성 소수자 차별금지 광고'가 만개한 수국처럼 게시되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한겨레> <경향>과 무가지 <메트로> <포커스>에 공익광고가 실렸으며, 종로구, 용산구 등에서도 '동성애 차별금지' 광고를 허용하였다. 7일에는 서울 시내버스 1000대에 '동성애 차별금지' 광고가 실리기도 하였다. 영국 런던 시는 이미 'some people are gay. Get over it'이라는 내용의 버스몸통광고가 진행 중이다. 광고 내용은 '어떤 사람은 동성애자죠. 동성애자를 받아들여요'라는 내용이다. 

이달 4일 '동성애자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을 묻는 말에 박원순 시장의 답변 메일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시민은 평등과 차별금지를 명시한 헌법과 성적지향 등 구체적 차별금지대상을 명시한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 의해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시는 이러한 법규범을 존중하고 있으며, 앞으로 성소수자를 포함한 시민의 권익 증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어려움을 경청하여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니 관심을 가지시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성 소수자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함께, 나와 다른 게이들의 삶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인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동성애자에 대한 오해는 무엇이 있는지, 한국게이인권단체인 '친구사이'를 찾아가 직접 알아보기로 하였다. 친구사이의 사무국장(이종걸)과의 연결로, 박재경 대표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인터뷰하기로 한 5월 19일은 종로 거리에 무형문화재인 연등축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종로3가역 8번 출구 건너편의 묘동빌딩 3층에 위치한 친구사이 사무실을 찾아 나섰다. 거리에는 곳곳에 연등이 걸려 있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그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호기심과 궁금증은 연꽃잎처럼 부풀어 나를 자극한 건 틀림이 없었다.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둘러보는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평범하기가 그지없어 실망스럽기조차 하였다. 이상한 거라고는 게이들의 커밍아웃 영화인 <종로의 기적> 포스터가 커다랗게 붙어있다는 것 예외는 너무나 소박하고 편하기조차 하였다.

게이, 또 하나의 우리... 박재경 대표를 파헤치다!?

1972년생. 거주지는 서울, 직업은 내과의사, 인상은 눈이 서글서글하고 해맑은 얼굴, 이름은 박재경. 그가 궁금하다. 정확히는 그의 게이 생활이 궁금한 것이리라.

친구사이
▲ 박재경 대표 친구사이
ⓒ 임영남

관련사진보기


동성애자라는 인식을 언제 하였나

초등학교 입학 전인 다섯 살 때쯤 알았다고 했다. 그 나이에 그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묘지에 세워져 있는 길쭉한 비석(성기 모양의 비석)과 동네 형들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동성애자를 인식하기에 가능한 나이일까? 나는 속으로 의구심이 생겼다. 아마 남성성이 강한 시기였다는 의미이리라고 짐작된다.

사춘기가 시작된 중학교 때부터 '나는 왜 이럴까?'라고 그는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향 친구들이 이성 간에 서로 사귀는 것을 보고 이해가 안 되면서,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을 그는 하게 된다. 특히 고1 때는 남자 수학 선생님을 짝사랑하였다고 천진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니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현재 사귀는 사람은?

친구사이에서 만나 6년째 함께 동거 중이라고 했다. 그것도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이성애자기준으로 보면 결국 결혼한 부부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혹, 바람을 피운 적이 있느냐?'라며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다른 멋진 남성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해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외도한 적은 실제로 없었다고 동반자와의 애정을 한껏 자랑하였다.

생활은 평범한 부부들과 똑같고,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도 같다고 했다. 서로 삐치기도 하고, 며칠씩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어느 땐 선물 공세로 화를 풀어 주기도 한다고 해, 여느 '평범한 부부나 마찬가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 중 어느 쪽을 더 중요시하는지, 동거와 교제 중 무엇에 비중을 두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그는 우선 서로 대할 때 동반자나 배우자, 파트너라는 개념으로 만난다고 했다. 그리고 정신적인 사랑을 전제로 한 육체적인 사랑을 중요시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실은 이성애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남성, 여성의 역할을 구분해서 생활하지 않고, 동반자적인 부부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동거나 교제의 의미 또한 다르지 않다고 했다.

시댁 김장은 내가 책임진다!

며느리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자연히 양가 어른들이 인정한 커플들은 가을 김장철에는 너무나 바쁘다고 한다. 심지어는 너무 자주 시댁에서 써먹어? 지친다고 투덜대는 이도 있다고 해 깔깔깔 웃었다. 힘 좋고 일 잘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김장철만큼은 일등 며느리인 셈이다. 고부간의 갈등 또한 그들에게도 당연히 있으리라.

그럼 서로 어떻게 알아보는가?

'게이다'라는 말은 게이더(gayder) 게이와 레이더(rayder)의 합성어로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의 성 정체성을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주로 외모나 행동에서 받는 주관적인 느낌이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본능적으로 알아본다는 것이다. 박 대표 자신도 본능에 따라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다고 했다.

게이 컬처 홀릭
▲ 친절한 게이문화 안내서 게이 컬처 홀릭
ⓒ 임영남

관련사진보기

사랑이 식으면...

이성애자들은 법적인 장치가 있어 서로 살다가 이혼을 할 때는 어느 일정한 시기 동안 조정기간을 거치기 때문에 신중한 선택과 결정을 대체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헤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힘들고 억울한 때도 있다고 심정을 강하게 토로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상당수 있으며, 안타깝게도 마음의 상처와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동성애자들이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고 하였다.

실제 사례로 두 커플의 이야기를 박 대표는 안타깝게 들려주었다. A 커플은 오랫동안 살다가 서로가 뜻이 맞지 않아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한 사람이 재산을 일구어 상대 동반자에게 재산을 관리하도록 맡겼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든 명의를 그 상대에게 다 주었다고 했다. 그는 혼자서 열심히 재산을 증식했지만 결국 아무런 대가를 받을 수 없어 억울함을 법에 호소에 이르렀다고 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어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B 커플의 사례는 동거하던 중에 한 사람이 말기 암에 걸렸다고 한다. 건강한 배우자는 아픈 상대를 위해 헌신적인 간호와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지만 결국 사망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장례비용까지 상대 쪽 가족이 요구해와 일체를 다 부담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장례식에는 동성애자라고 비난을 하며 오지도 못하게 하였고, 심지어 장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슬픔과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친구사이를 통하여 서서히 회복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례를 듣다 보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단순히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억압하고, 사람대접을 하지 않는 처사를 보니 대한민국에 인권이 어디에 있는지 정말 답답하고,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동성애는 전도해야 할 종교도 아니고, 전염병이 있는 자들도 아니며, 단지 한 개인의 정체성일 뿐인데 말이다.

성병예방은?

에이즈를 비롯해 성병예방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박 대표는 관계 시 반드시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는 동성애자만이 아니라 이성애자도 꼭, 누구나 사용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오히려 병원에서 환자를 보다 보면 이성애자들의 성에 대한 인식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특히 성관계 시 이성애자들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그는 100%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무분별한 성관계를 한다고요?

보통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이 무분별한 성관계를 한다고 불편한 오해를 한다고 했다.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처럼 진실한 사랑을 추구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서로 알아가려고 노력한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끌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간 모두에게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뿐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이성애자 대중들이 인식하는 것 중 하나는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수많은 시민 중 한 사람으로, 혹은 삶을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 이해하기보다는 특정 영역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특히 '성'과 관련지어 온통 부정적인 것들을 미리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기도 하다.

동성 간의 관계 맺기 방식도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상호 간의 합의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히려 그런 부분은 이성애자들보다 더 탁월하다고 주장했다. 성적행위에 대해서 합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성애자는 성을 돈을 주고 사고팔지만, 동성애자들은 서로의 합의로 관계를 갖는다는 점에서는 아직 생각지 못한 성문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개중에 일부는 동성애자들도 성매매하겠지만 오히려 이성애자와 비교하면 그 수가 훨씬 적다고 하였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의 성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그들만의 밤 문화 공간이 있음을 넌지시 알려 주었다. 나는 호기심이 또 발동해 그곳이 어디인지 궁금해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동성끼리의 성폭행 사례는?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미비하다고 딱 잘라 그는 말했다. 나는 혹시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한 번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날 몹시 취해 본인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전달하지 못해 당했다고 했다. 이성애자 사이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비교해보면 그 피해는 여성이 느끼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고 했다. 특히 신체적인 피해가 미비하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피해는 어느 정도 같을 것이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가끔 두드러지고 있는 교도소나, 군대에서의 동성끼리의 성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같은 동성끼리의 폭력이지만 이들은 단순히 성적인 욕구를 풀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라고 했다. 그들은 결코, 동성애자가 아니며, 사회에 나오면 이성애자로 바뀐다는 점을 강조했다.

군대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성폭력 및 성추행'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의 성 정체성이 동성애자가 아니고 이성애자가 대부분이었다는 점과 그런 범죄 형태가 '권력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을 띠며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태도와 성격이 일맥상통한 점' 등에 대해서는 이미 몇 해 전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사례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인터뷰
▲ 박재경 대표와의 인터뷰 인터뷰
ⓒ 임영남

관련사진보기


벽장 밖으로 나오다 (to come out of the closet) 커밍아웃!

자신의 성적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인식하여, 직접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에게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리는 행위로 대단히 중요한 의식의 하나라고 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사느냐, 아니냐의 중대한 인생의 갈림길과 같다는 것이리라. 동성애자여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필요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커밍아웃이라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성 정체성을 인식하고, 결정하기까지는 매우 험난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으로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박 대표는 본인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그는 중학교부터 33세가 되기까지를 자신의 암흑기라고 지칭했다. 겉으로는 착하디착한 아들이었지만 내면 깊은 곳은 늘 어둡고 음습했었다고 한다. 공부와 시험에 몰두하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며, 수치심과 고독에 쌓여서 살았다고 했다. 그의 곁에는 늘 절망과 자살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33세에 동성애자 커뮤니티인 의사모임을 통하여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특별히 정기모임 첫날에 그는 그동안의 모욕감과 수치심, 죄책감으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나 서러워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 당시 그의 아픔이, 듣는 나에게도 전해져 무척 안쓰러웠다.

드디어 35세에 친구사이의 회원에 가입하면서 벽장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무거웠던 그의 가면을 벗어 버리는 것이리라. 그리고 세상 앞에 당당히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는 노래의 작사를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6년째 동거를 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삶, 나의 꿈...

올해로 만 40세가 되는 그는 병원 개업을 구상 중이며, 어려운 환경에 있는 후배 동성애자들을 돕고, 친구사이 대표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한 인간으로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진지하게 고민하며, 화해와 용서를 떠올리며 자신을 다스린다고 한다. 또한, 타인을 존중하고 환영하는 긍정적인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하여, 국가와 사회는 사회적인 차별법을 금지하고, 군형법 92조가 하루속히 철폐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더불어 동성애자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책임지는 성숙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말했다.

끝으로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은?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이 '중성적인 언어'를 사용해 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우리 주위에는 성 소수자들이 늘 함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성적 언어 사용'이라 함은 '남자 친구 있으세요?, 여자 친구 있으세요?'라는 말로 남녀의 성을 구분하여 말하는 것을 지양한다는 의미이다. 이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동반자가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특히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중성적인 언어 사용한다면 아이들이 더욱 창의적이고, 열린 사고를 하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성 소수자들은 이성애자와 같은 인격적인 존재이며, 단지 성적인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옳고, 그름,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인식이 필요하리라. 다수 시각과 논리에 의해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고군분투하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고 다수와 소수의 경계를 허무는데 진지하게 우리 사회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태그:#게이, #성 정체성, #커밍아웃, #친구사이, #르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