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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내게 월세를 내야 하는 무거운 짐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이라는 공기가 사방을 뒤덮는 공간이었다. 대학 진학과 함께 객지 생활을 시작한 나는 독립한 청춘,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실제론 월세 30만 원에 벌벌 떨며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허덕이는 가난한 청춘일 뿐이었다.

서울 생활을 시작한 2003년부터 7년 간 10번을 이사했다. 집은 '사는 곳'이 아닌 '임시 대피소'였다.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결코 편안할 수 없었다.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가족들이 사는 집에서 남는 방 한 칸을 월세 20만 원에 빌렸다. 외부인인 나는 샤워 후 화장실에 머리카락 한 올만 남기는 것도 큰일이었고, 부엌을 빌려 쓴 뒤엔 '사용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메모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서울 궁동의 보증금 300만 원, 월세 15만 원짜리 옥탑방은 불법증축된 구조물이라 주민등록 신고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학교에서 가깝고, 무엇보다 월세가 싸다는 게 머무를 이유가 됐다.

불법 구조물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았다. 배달해주는 액화석유가스(LPG)를 겨우내 쓰는 건 고단한 일이었다. 밤새 LPG통이 얼어 보일러가 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 뒤 LPG통에 부어 가스를 녹였다. 그러면 가스보일러가 켜지고 따뜻한 물이 나왔다. 그러나 컨테이너박스를 대강 세워둔 옥탑방에서 좀처럼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반지하, 옥탑방, 재개발지구...집 문제에 짓눌린 20대

<10대와 통하는 부동산> 표지
 <10대와 통하는 부동산> 표지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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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낙구가 쓴 <10대와 통하는 부동산>을 보면, '내가 왜 집 때문에 고생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집값은 왜 오르기만 하는지, 왜 대다수의 국민이 5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니는지, 왜 부동산은 투기 종목이 되었는지, 재개발은 왜 갈등의 공간이 되는지 등 집과 땅에 관해 청소년이 알아야 할 지식을 쉽게 설명한다.

저자 손낙구는 이미 <부동산 계급사회>를 통해 한국의 부동산 문제가 단순히 주거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 학력, 건강과 수명, 불평등과 빈곤이 부동산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는 우리의 공동체가 위협받아 서민의 삶이 악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10대와 통하는 부동산>은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보여준 분석 결과를 토대로 청소년과 부동산의 관계에 집중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경우 이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도서관, 학교 시설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며 결과적으로 다른 부분의 지출이 줄어들어 교육전반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땅은 공기나 물과 마찬가지로 없어서는 안 된다. 이는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그 땅 위에 집을 짓고 먹을 것을 구해 살아왔다. 자연의 일부인 땅은 모든 생명체와 함께 누려야 할 삶의 터전인 것이다.

저자는 "땅은 인간이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 누군가 독차지해서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써서는 안 된다"고 일갈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땅을 특정 소수가 독차지해서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해 땅값과 집값이 계속 오르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땅과 집 문제는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몇 년 전까지 스타벅스 명동점은 서울시 중구 충무로 1가 24-2번지 자리에 세들어 있었는데, 당시 보증금 30억에 한 달 임대료를 1억씩 냈다고 한다.

하루 임대료가 333만 원꼴이니, 하루에 커피 3천 잔을 팔 경우 당시 커피 값 3300원 가운데 천 원씩 임대료가 포함된 셈이다. 흔히 가는 카페의 커피 값이 오르는 것이나 내가 살던 집의 월세가 오르던 것도 모두 땅값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2004년 여름, 나는 친구와 함께 서울 명륜동에서 전세 2300만 원의 방 두 칸짜리 허름한 주택에 살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9년 여름, 그 동네를 찾았다. 대부분 방 두 칸짜리 주택은 보증금 천만 원, 월세 50만 원으로 올라 있었다. 반지하 방도 전세금 6천만 원에 방 2칸을 얻는 게 불가능했다. 간단히 말해서 5년 만에 전세금이 세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반지하 방에 사는 '우울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한 장면.
 반지하 방에 사는 '우울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한 장면.
ⓒ JK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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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을 위해 '부동산 계급'의 정체를 밝힌다

저자는 인간다운 주거 생활을 누릴 '주거권'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국가는 인간다운 주거환경을 확보하지 못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적절한 거처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임시 거처를 마련하거나 주거안정을 누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쫓겨나지 않고 사는 집, 건강하고 위생적인 집, 노인과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집, 최저 기준에 미달하지 않는 집 등"을 말한다.

그러나 자취생활 7년 동안 주거안정을 누려본 적 없었다. 특히, 서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경기도 부천의 다세대주택은 잊혀지지 않는다. 보증금 100만원, 월세 15만 원의 싼 집이었지만 천장에 쥐가 돌아다니는 소리에 밤잠을 설쳤다. 조만간 천장이 뚫려 쥐들이 우르르 쏟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채 다섯 달이 지나지 않아 '재건축이 결정됐으니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집주인은 이주비로 30만 원을 줬다. 옆 동네에서 방을 얻으려 했더니 이미 귀신처럼 방값이 올라 있었다. 나 같은 철거민 세입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서울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이미 두 번씩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던 형편에 더 멀리 나갈 수도 없었다.

사정이 조금 나은 서울 개봉동 친구네 옥탑방에서 6개월, 명륜동 주택의 친구 방에서 몇 달을 지냈다. 그러나 그곳에선 창문 틈으로 어떤 남자가 늘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겁에 질렸다. 여자들만 산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찾아들어간 신림동의 지하방은 대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깜깜한 암흑이었다. 노고산동의 반지하방에선 옆집 남자와 낯선 여자의 신음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다.

그런 곳들조차도 진득하니 오래 살 수가 없었다. 재개발 재건축 때문에, 월세가 올라서, 집주인이 바뀌어서, 함께 지내던 친구가 유학을 떠나서, 나는 또 짐을 싸야만 했다. 집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저자는 땅 값이 상승한 원인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조목조목 풀어주지만, 아쉽게도 부동산 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설명하지 못한 것 같다. 해외 사례의 꿈같은 부동산 정책은 유리벽 밖에 잘 진열되어 있을 뿐이다.

또 서울의 비극이었던 '용산 참사'의 희생자를 비롯해 집을 잃어 싸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다뤘다면, 10대 특유의 감수성과 공감능력으로 저자의 주장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국민이 겪는 부동산 문제는, 곧 10대가 안고 갈 짐이다.

덧붙이는 글 | <10대와 통하는 부동산> / 손낙구 / 철수와영희 펴냄 / 2011년 / 1만2000원



태그:#손낙구,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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