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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열풍이 전국적이다.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길에 이어 서울에서도 '북한산' 둘레길이 올해 여름에 열렸다. 지난 주말 둘레길 13개 코스 중 우이령길 입구에서 시작하여 솔밭근린공원에서 끝나는 '소나무숲길'과 솔밭근린공원에서 이준 열사 묘역까지의 '순례길'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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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순례길 시작지점 .
ⓒ 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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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이 그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수유동, 우이동 일대의 독립유공자, 순국선열 묘역 16기와 광복군 합동묘소가 있었다. 이곳에 1960년대에 조성된 묘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동안은 쉽게 알 수 없었는데, 둘레길의 한 코스가 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둘레길을 조성한 북한산 국립공원 측에서는 순례길에 대해 "묘소를 하나하나 돌아보며 구간이 끝날 즈음엔 가슴 속 애국심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하였다. 정말 그럴까.

빨간색길이 북한산 둘레길 소나무숲길, 순례길, 흰구름길을 포함한다.
▲ 강북구 순례길 안내지도 빨간색길이 북한산 둘레길 소나무숲길, 순례길, 흰구름길을 포함한다.
ⓒ 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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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에 있었던 '강북구 순례길 안내지도'를 보자. 북한산 국립공원 둘레길 중의 순례길인 이곳에 '삼각산 애국지사 묘역, 순례길'이라는 안내가 되어 있다. 강북구청은 독립유공자와 선열의 묘가 모여 있는 이곳을 북한산 둘레길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국립화하여 구 단위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관리(국립화)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이 안내도 역시 그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안내도에서 먼저 주목할 부분은 바로 삼각산이라는 명칭이다. 삼각산은 백운봉(백운대, 해발 836.5m), 인수봉(810.5m), 만경봉(국망봉, 799.5m) 세 봉우리가 쇠뿔처럼 솟아있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지금은 삼각산이 북한산의 별칭 또는 일부 지역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한강 이북 쪽에 있는 이 산이 북한산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 유력한 식민사학자인 이마니시 류(今西龍)에 의해서였다.

조선 전기 대표적인 지리서인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도성의 진산은 백악(白岳)이다. 산정(山頂)에 사우(祠宇)가 있어서 삼각산의 신을 제사 지내는데, 백악을 붙여서 지낸다. 중사(中祀)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에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숙종 대에 '북한산' 기록이 가장 많이 등장했는데, 북한산성 건립에 대한 내용에서였다. 그렇다면 북한산성은 북한산에 세워진 것일까. 정답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산은 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숙종실록> 등 <조선왕조실록>의 여러 기록과 지리서에서 나타나는 북한산은 신라 진흥왕 때의 기록에서 이어지는바 한강의 이북지역을 폭넓게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산 이름으로서보다 지역 명칭으로 더 많이 쓰였던 것이다. 그래서 북한산성이 북한산에 세워진 것은 지명을 가리킨다고 할 때 맞는 말이고, 오늘날의 개념으로 산 명칭이라 볼 때는 틀린 말이 된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기록이 그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의 <아방강역고>에서는 "'북한산성'이라는 명칭은 한강 이북의 산에 의지해 만든 성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지 산 위에 만든 성이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라며 "북한산성은 한강 이북지역을 말하는 북한산에 있는 성이란 말이지, '삼각산'을 말하는 북한에 있는 산성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북한산은 왜 산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을까. 이마니시 류가 여기서 등장한다. 오경후는 "삼각산제이름찾기 학술세미나"에서 이마니시 류가 1917년 발행한 <경기도고양군북한산유적조사보고서>를 검토하였다.

여기서 이마니시는 "북한산의 명칭은 한강의 남광주에 솟아있는 한산(漢山)에 대한 호칭으로서, 삼각산이라고 하는 것은 인수, 백운, 만경의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마치 삼각과 같은 것에서 유래되었다"면서도 "북한산은 앞의 세 봉우리 외에 염초봉, 원효봉, 의상봉, 용혈봉, 증취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으로 둘러싸인 형상을 하고 솟아있고……"라고 하여 세 봉우리를 삼각산으로 규정하고 북한산은 이를 포함하는 것으로 적었다. 또 그는 숙종 대 북한산성의 재 축조로 인해 북한산 명칭이 일반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북한산 국립공원'은 1983년 지정되었는데, 이때 이마니시 류 이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이 분명하지 않았고, 식민지 시기 이전에 삼각산이었던 그곳은 지금 북한산이다. 삼각산은 이마니시 류가 정리한 것처럼 인수, 백운, 만경의 세 봉우리가 있는 우이동 일대를 가리킨다. 2003년 10월 31일에는 이 지역이 명승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세 봉우리가 하나의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인 것인데 그것을 따로 삼각산이라 가리킨다는 것이 썩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이대로 그대로라면 북한산 위에 삼각산이 있거나 북한산 안에 삼각산이 있는 꼴이 아닌가.

  여기서 순례길 구간은 솔밭공원에서 이준열사 묘소 입구까지로 되어 있다.
▲ 국립공원 둘레길 그림지도 여기서 순례길 구간은 솔밭공원에서 이준열사 묘소 입구까지로 되어 있다.
ⓒ 북한산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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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세 봉우리, 이른바 삼각산이 있는 강북구에서는 이 문제를 해소하고 역사적 의미를 바로 잡기 위해 북한산을 삼각산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한강 이북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므로 남대문을 숭례문으로 바꾼 것처럼 고유명사인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시기와 그 이전의 기록들로 볼 때에도 삼각산이라는 명칭은 충분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 삼각산은 북한산의 별칭이라고도 하고, 어느 한 부분이라고도 알려져 있어서 혼선이 생긴다. 조금 과장하면 삼각산은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이 될 수 있다. 더구나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관리되는 산은 실상 두 개의 산이다. 북한산과 도봉산. 관리 차원에서 두 산을 북한산 지역, 도봉산 지역이라고 하며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묶고 있지만 도봉산은 도봉산이요 북한산은 삼각산이었던 것이 일제강점기 이전의 자연이었다.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의 면밀하지 못한 기록이 국립공원의 명칭으로까지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둘레길로 들어가 보자. 국립공원에서 안내하는 순례길 코스를 그대로 간다면 직접 볼 수 있는 묘역은 사실 신숙, 유림, 이준 묘소 정도로 17개의 묘역 중 1/4에 못 미친다. 순례길이라고 되어 있는 2.3km 구간만 걸으면 이 지역 애국지사 묘역을 모두 볼 수 없다. '불타는 애국심'이 생기기도 어렵다. 다른 묘역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서상일, 김도연 묘역 표지. 앞 길이 순례길이고 이 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이들 묘역이 나온다.
 서상일, 김도연 묘역 표지. 앞 길이 순례길이고 이 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이들 묘역이 나온다.
ⓒ 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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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의 사진처럼 둘레길 중간 중간에 표식이 있다. 위의 '강북구 순례길 안내 지도'를 보면 빨간색길이 둘레길이고 그 곁에 뻗어있는, 노란색 길이 묘역에 닿는 길이다. 강북구에서 말하는 순례길(빨간색길)은 북한산 국립공원 둘레길 중 세 코스(소나무숲길, 순례길, 흰구름길)를 포함하고 있다.

어쨌든 '국립공원 둘레길 그림지도'에 표시된 묘역들을 가려고 해도 순례길 옆으로 빠진 길을 짧게는 200m, 길게는 500m 이상 가야 묘역에 도달한다. 걸어보았더니 그 묘역들을 모두 돌아보는, 정말 순례를 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 안내(http://ecotour.knps.or.kr/dulegil/dulegil02.asp)에서처럼 70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묘역을 들러 비석과 안내문을 읽어보고 순례길을 빠져나오니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내가 간 날은 사람들이 한창 북적일 일요일이었음에도 순례길 바로 옆이 아닌 곳에 있는 묘역에서 만난 사람은 없거나 한 둘 뿐이었다. 묘와 묘가 연결된, 순례길 아닌 다른 길은 인적이 없어서 스산할 정도였다.

이 지역 16기의 묘역은 우이동의 손병희, 여운형 2인과 수유동의 이준, 이시영, 신익희, 조병옥, 김창숙, 이명룡, 신하균, 유림, 김병로, 신숙, 김도연, 서상일, 양일동 13인의 묘역 및 광복군 합동묘이다. 강북구에서는 이 애국지사 묘역을 국립화하기 위해 추진위원회를 설치하고 올해 2월 심포지엄을 개최했으며 구민들에게 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사박물관도 추진 중에 있다.

이를 위해 그간 철조망, 쓰레기로 방치되어 있던 묘역을 손질하였고, '태극기의 변천', '시기별 독립운동' 등 참조할 수 있는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북한산 둘레길'과 만나게 된 것이다. 구에서 정비한 순례길이 둘레길과 겹치게 되면서 분명히 이곳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국립공원에서 정해 놓은 순례길만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해서 이곳에 묻혔는지 알 수가 없다. 북한산 둘레길을 지정, 관리하는 당국은 순례길에서 애국심을 강조하였지만 정작 북한산이라는 이름부터 오랜 역사 속에서 유래된 고유의 산 이름이 아니다. 철저한 검토 없이 일본 사학자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왔다. 홈페이지에서 제시한 2.3km, 소요시간 70분이라는 순례길 안내 역시 둘레길에서 떨어진 독립유공자와 선열의 묘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둘레길은 정상을 향하는 길들로 인한 삼각산의 몸살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길이다. 국립공원 등 당국은 산을 찾는 사람들이 보이는 자연을 아낄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역사, 그 속에 묻힌 한국의 근현대사도 느낄 수 있게 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 기초지자체인 강북구가 내세우는 북한산의 원래 이름 삼각산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애국지사 묘역의 국립화를 위한 노력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순례를 위해 순례길을 찾는다면 '순례길'로 정해져 있는 2.3km의 길에서 옆길로 빠지길 권한다. 묘역 표지를 따라 그 길에서 벗어나도 길은 또 이어져 있고, 잠시 벗어나도 다시 순례길에 돌아올 수 있다. 70분 내에 걷기를 끝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지 않았다면, 인물들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또 다른 순례길들을 만나보자.         


태그:#북한산, #삼각산, #둘레길,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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