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하면 짜증내고, 툴툴 거리고, 울고 불고,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 버리고…. 열네 살 중학교 2학년 큰 딸아이의 사춘기 증세(?)가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나는 저맘 때 어땠지? 그때 엄마는 어떻게 해주셨었지? 아이도 처음 겪는 생의 혼란이 힘들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어미 역시 사춘기 딸을 처음 겪는지라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영화 <엄마>의 포스터
ⓒ 필름뱅크·청어람
영화 속 엄마는 그런 감당하기 어려운 자식들을 모두 다 길러내고 이제 칠십을 눈앞에 두고 있다. 농사일로 잔뼈가 굵은 엄마는 한시도 몸을 쉬는 법이 없는데, 집안 대사인 막내딸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마음이 아프다. 마흔에 시작돼 28년 동안 시달려온 어지럼증으로 차를 타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막내 결혼식에 갈 수가 없어서다.

늦둥이 딸의 결혼식에 갈 수 없는 엄마. 엄마는 딸에게 미안하다며 울고, 딸은 집 가까운데서 결혼식을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운다. 엄마 자신은 물론 자식들도 엄마의 결혼식 참석을 모두 포기한 가운데, 어느 날 엄마는 결심을 하게 된다. 막내딸 결혼식에 꼭 가야겠노라고.

배도 타 보고, 자식 등에 업혀도 보고, 가마도 타 보고, 수면제에 마취 주사까지 생각해 보지만 어느 것도 엄마에게는 맞지 않고, 결국 엄마는 운동화 끈 질끈 동여매고 하루 열 시간씩 나흘을 꼬박 걸어야 하는 200리길 대장정에 오른다. 아들과 딸과 며느리가 그 길에 번갈아 동행하게 된다.

영화는 굽이굽이 사연이 많았을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나 자식들 나름의 곡절 많은 처지를 주절주절 풀어 놓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걷는 길과 그 길의 배경을 이루는 산과 들과 강을 보여주고, 엄마와 자식들이 서로 나누는 길지 않은 이야기와 표정으로 그들 삶의 갈피에 숨어 있을 내력을 전해줄 뿐이다.

갑자기 세상 떠난 남편, 믿음직하게 곁을 지켜 주는 큰 아들, 되는 대로 살며 세상을 떠도는 작은 아들, 억척스레 살아가는 큰 딸, 스님이 된 작은 딸, 주말이면 짬을 내 엄마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던 늦둥이 막내 딸….

그러나 자식들로 하여 애면글면 살아온 엄마 가슴 속 한켠에는 사실 엄마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안쓰러움이 숨겨져 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거울이었던 엄마, 지금도 여전히 등 뒤에서 자신을 지켜볼 것만 같은 엄마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 영화 <엄마>의 한장면.
ⓒ 필름뱅크·청어람
자신의 결혼식을 위해 높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엄마에게 전화기 속 딸은 울며 말한다. "엄마, 나 왜 낳았어?" "아버지가 밤새 안 재우고 난리를 피워서"라고 말하는 엄마. 그러나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다음 생에서는 엄마와 딸을 바꿔서 태어나자고 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딸로 다시 태어나면 이생에서 못 다한 것 다 해 드리겠다고.

영화 <엄마>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약속이 있다고 하셔서 '엄마'를 모시고 같이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혼자 보길 잘했다고 안도했다. 같이 보고 엄마의 엄마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았겠다 싶으면서도, 솔직히 우는 모습을 보여드리기는 싫어서였다.

아버지에 대한 호칭이 어린 시절에는 아빠였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 틈엔가 아버지로 슬며시 바뀌었다. 그러나 마흔 여섯인 지금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처음에는 '먼 길'이었다가 <엄마>로 바뀌었을까.

생의 먼 길을 돌고 돌아 마지막 언덕에 이른 노년의 엄마를 영화 속에서 만나며 내 엄마를, 그리고 내 엄마가 여전히 가슴 속에 지니고 있을 자신의 엄마(나의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비로소 눈을 돌리게 되었다.

신동호 시인의 시처럼 '나의 어머니에게도 그리운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영화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엄마'를 모시고 가서 함께 보라고 권하고 싶다. 엄마 옆에 앉아 우는 모습 좀 보이면 어떠랴….

덧붙이는 글 | (엄마, 2005, 한국 / 감독 : 구성주 / 출연 : 고두심, 손병호, 김유석, 김예령, 이혜은, 박원상, 채정안 등)

2005-04-10 17:1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엄마, 2005, 한국 / 감독 : 구성주 / 출연 : 고두심, 손병호, 김유석, 김예령, 이혜은, 박원상, 채정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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