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라이프>를 연출한 후카다 코지 감독.

영화 <러브 라이프>를 연출한 후카다 코지 감독. ⓒ 엠앤엠인터내셔

 
 
1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영화로 한국 영화제를 찾았고,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키 쇼 감독과 함께 일본 차세대 감독으로 꼽히는 후카다 코지 감독이 국내 첫 개봉을 맞는다. 영화 <러브 라이프> 개봉을 이틀 앞둔 17일 오전 서울 에무시네마에서 만난 감독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적 교류와 연대를 한껏 강조했다.
 
<러브 라이프>는 1991년 발매된 아키코 야노(Akiko Yano)의 동명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집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들이 사망한 후 전 남편과 현 남편 사이에서 관계 재정립을 하게 되는 타에코라는 여성의 정서적 변화가 핵심축이다. 아이의 친부인 전 남편이 청각장애가 있는 한국인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아이가 태어나고 돌연 사라진 전 남편이 아이 장례식장에 불쑥 나타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20년 전부터 구상한 이야기
 
"그 노래를 들으며 스토리를 구상했다. 아이와 1년밖에 지내지 않은 현 남편이 슬픔을 타에코와 같은 선상으로 공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친아빠가 나타나면서 엄마와 같은 슬픔을 공유한다면 어떻게 될까 거기에서부터 시작했다."

 
후카다 코지 감독은 관계성을 강조했다. 캐릭터를 특정 성격으로 정해놓지 않고, 이야기 안에서 각자들이 어떤 관계를 맺으며 나타나는 변화를 포착해갔다고 한다. 영화에선 수어로 전 남편 박신지와 소통하는 타에코, 그런 그녀를 보며 묘한 긴장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현 남편 신지의 모습이 대비된다.
 
"박신지라는 캐릭터는 엄마가 일본인, 아버지가 한국인이다. 영화에서 설명되진 않지만, 신지라는 이름이 일본에서도 흔하다. 한일 양국에서 모두 통하는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한국인 캐릭터를 넣은 이유는 관계의 거리감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실종된 줄 알았던 박신지를 공원에서 타에코가 우연히 만나잖나. 그를 시부모님 집, 타에코의 집 욕실로 데리고 오며 서서히 거리가 가까워지는데, 영화 후반부엔 가급적 멀리 떠날 필요가 있었다. 일본을 무대로 하면 그 거리감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기에 다른 문화권으로 보내고 싶었는데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국가로 한국이 유일했다.
 
한국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가부장적 측면이 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성역할 관련 요구가 강하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 다워야 한다는 등 말이다. 그런 사회적 압박감이 종적을 감추게 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타에코가 기대했던 대로 관계가 흐르진 않는데, 개인적으로 모든 인간관계는 착각과 환상이라 생각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사람은 격리된 고독한 섬과 같은데 말이라는 건 그 고독을 이어주는 환상의 달이라는 내용이다. 고독이 완전 해결되진 않아도 환상이 이뤄진다는 게 중요하다."

  
 영화 <러브 라이프> 스틸 이미지

영화 <러브 라이프>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한국을 일부 영화적 배경으로 놓고 한국인을 등장시킨 게 사람 간 거리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청각장애인 설정은 일종의 긴장감을 위한 수단이었다. 후카다 코지 감독은 "수어가 타에코와 전 남편의 공통언어이고, 현 남편이 그걸 알아듣지 못했을 때 어떤 마음일지 생각하며 썼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캐릭터를 두고 감독은 "그런 인물을 영화에 넣은 이유에 대해 종종 질문받는데, 오히려 그런 질문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장애인들이 영화에 진출하기 어려움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20년 전 구상했을 때만 해도 농인 설정은 없었다. 각본을 수정하던 시기에 도쿄에서 농인영화제가 열려 제가 영상 워크숍 강사로 간 적이 있다. 여러 농인과 이야기하며, 수어라는 게 한국어나 일본어처럼 독립된 언어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작품에 수어를 도입하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이 작품을 선보인 후 박신지가 왜 농인인지 당연히 물을 수는 있다고 본다. 근데 개인적론 그 질문 이전에 제가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왜 농인 캐릭터가 한 명도 없었는지부터 질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농인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마치 제 영화에 청인이 왜 등장하는지 묻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후카다 코지 감독은 "창작자들이 지향해야 할 것은 장애인이나 소수자 배우가 연기할 기회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 작품 속 수어가 한국 수어인데 지난 부산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한국 농인 분들이 매우 좋아하셨다. 수어라는 게 손만 표현하면 되는 게 아니라 표정이 어우러져야 문법이 완성되는 만큼 농인 배우들도 출연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영화 <러브 라이프> 스틸 이미지

영화 <러브 라이프>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탈 일본, 아시아 문화 연대해야
 
이번 영화와 함께 후카다 코지 감독의 전작 <하모니움>이나 <환대> 등을 보면 꾸준히 가족 구성원들이 등장하고, 그 집단에 외부 요인이 작용하며 이야기가 벌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와 종종 함께 언급되는데 가족 그 자체의 갈등과 화해에 집중해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달리, 후카다 코지 감독은 해당 인물들이 저마다의 길을 모색하고, 외부 세계와의 연결 가능성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
 
"가족 문제를 그리고자 하는지 질문받으면 전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제 관심은 가족이라는 틀보단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고독과 단절감에 있다. 오히려 전 가족이라는 틀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서로 개성 다른 사람들이 공동 생활하는 게 현실성이 없지 않나 싶다. 외부인의 침입을 항상 넣는 이유는 타인이 등장해야 그 공동체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연결 고리가 좋다! 라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게 다른 일본 영화들과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하마구치 류스케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리고 후카다 코지 또한 한국인 배우나 스태프와 함께 작업하거나, 아예 무대를 한국으로 놓고 영화를 찍는 등 협업해오고 있다.

201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시작으로, 그간 수차례 한국 영화제를 찾은 후카다 코지 감독도 대표적인 지한파 감독으로 볼 수 있다. 최근까지 그는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및 영화 정책을 연구하며 일본 창장자들과 활발하게 토론해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엔 일본의 '미니 시어터 에이드(Mini Theater Aid, 독립예술영화극장)' 운동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등과 함께 진행해 3억 엔의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그만큼 영화 산업과 정책 개선에 적극적이다.
 
"최근 일본영화에 한국이 등장하는 걸 큰 흐름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거꾸로 그동안 일본영화에 한국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흔히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이야길 하는데, 정치적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동아시아 국가에 취하는 자세가 한일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긴장감으로 일본 영화계에서도 한국을 담는 걸 억제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본래 이웃 국가이니 사실 자주 나오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일본 정부가 보수적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는데, 적어도 문화면에선 교류가 활발해지는 게 좋다고 본다.
 
미니씨어터 운동은 사실 긴급 조치에 불과했다. 일본에선 영화 관련 지원금이 전무하다시피 한데 그전에도 영화 정책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코로나19 때 그게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한국의 영진위는 상영관, 배급,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조성금을 지원한다. 일본은 영진위에 해당하는 기관이 없어서 상당히 업계가 힘들다. 올해도 오래 운영해 온 미니씨어터 세 곳이 문을 닫았다. 2019년 기준 일본 전체 극장 중 미니씨어터가 약 6%인데, 일본 전체 영화 중 42%가 바로 미니씨어터에서 상영된다. 이런 극장이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엔 저보다 더 젊고 재능있는 감독이 많은데 이런 지원 제도가 없으니 영화 만들기가 녹록지 않다. 일본이 한국에 배울 점이 상당히 많은데 앞으론 동아시아 국가들, 나아가 아시아 국가들이 잘 연계했으면 좋겠다. 한국의 영진위 기금도 유럽에 비하면 충분치 않은 면이 있거든. 유럽시네마라고 해서 유럽권 영화들 전체를 지원하는 기구가 있다고 안다. 아시아 국가들이 잘 연대해서 아시아 영화를 지원하고, 다양성을 확보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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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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