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야구 천재들과 괴물들이 집결한 메이저리그에서도 1941년의 테드 윌리엄스를 끝으로 78년째 4할 타자가 탄생하지 않았다. 내셔널리그에서는 현역 시절 '타격의 달인'이라 불리던 토니 그윈이 1994년 .394를 기록했고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2000년 .372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4할에 도달하진 못했다. 1936년 설립돼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아직 한 번도 4할 타자가 탄생하지 않았다.

KBO리그에서는 아직 프로화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던 1982년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했던 MBC청룡의 백인천 선수겸 감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할 타율을 기록한 후 4할타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1994년 타격 4관왕으로 리그를 지배하며 .393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백인천 이후 4할 타율에 가장 가까운 선수였다.

사실 매년 4할에 도전하는 타자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짧게는 5월, 길게는 6월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하는 타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꾸준한 타격감을 1년 내내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 2016년 6월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하던 이 선수도 힘들게 따냈던 주전 자리를 빼앗긴 후 시즌을 끝으로 팀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내년엔 더 이상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을 수 없게 된 외야수 김문호가 그 주인공이다.

프로 데뷔 11년 만에 잠재력 폭발한 덕수고의 천재타자

김문호는 서울의 야구명문 덕수정보고 출신이지만 제주도에서 태어난 몇 안 되는 야구 선수로 유명하다(물론 김문호는 초등학교 때 일찌감치 야구를 위해 서울로 전학을 왔다). 김문호는 덕수고 시절 정확성과 기동력을 겸비한 고교야구의 손꼽히는 강타자로 이미 2학년 때 팀을 황금사자기 우승으로 이끌며 MVP에 선정됐다(당시 덕수고에는 민병헌과 김세현, 김민성 등 훗날 프로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전체17순위)로 롯데에 지명된 김문호는 김주찬(KIA 타이거즈)과 함께 롯데 외야의 미래를 이끌 선수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김주찬이 2004년부터 주전 선수로 자리를 잡은 데 비해 김문호는 그저 그런 1.5군급 외야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부터 카림 가르시아, 손아섭, 전준우 같은 좋은 외야수들이 차례로 영입, 혹은 성장한 것도 김문호에게는 악재였다.

2008 시즌이 끝난 후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친 김문호는 2011 시즌을 앞두고 팀에 복귀했지만 좀처럼 1군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었다. 특히 쏠쏠한 타격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수비가 김문호의 발목을 잡았다. 이미 김주찬-전준우-손아섭으로 이어지는 좋은 외야라인을 갖춘 롯데 입장에서는 대주자와 대수비 요원으로 활용도가 높은 이우민을 놔두고 상대적으로 수비가 불안한 김문호를 쓸 이유가 없었다.

1,2군을 오가던 김문호가 본격적으로 1군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전준우의 입대로 외야 한 자리가 허전해진 2015년부터였다. 뛰어난 타격을 앞세워 김민하(한화 이글스)와 이우민, 임재철과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한 김문호는 93경기에 출전해 타율 .306 4홈런31타점8도루를 기록하며 풀타임 1군 선수로 자리 잡았다. 9월12일 한화전에서는 배영수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만루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2016년 데뷔 11년 만에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한 김문호는 드디어 '덕수고 천재타자'의 명성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6월 초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할 정도로 엄청난 타격감을 자랑한 김문호는 2016년 140경기에 출전해 타율 .325 7홈런70타점77득점12도루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지독히도 터지지 않던 '만년 유망주'가 프로 데뷔 11년 만에 롯데의 핵심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FA 전준우 잔류 불투명함에도 4번째 외야수 김문호 방출한 롯데

김문호는 전준우가 전역한 2017년에도 롯데의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며 타율 .292 2홈런35타점49득점9도루로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김문호는 주전으로 출전한 첫 가을야구에서 11타수1안타(타율 .091)1득점으로 부진했고 이는 롯데가 국가대표 출신의 FA 외야수 민병헌을 영입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김문호와 민병헌은 2005년 덕수고의 황금사자기 우승을 함께 이끌었던 동기동창이다).

고교 시절에는 함께 팀을 이끌었지만 프로 입단 후 오랜 무명 생활 끝에 힘들게 주전 자리를 따낸 김문호와 달리 민병헌은 2013년부터 잠재력이 폭발해 롯데 이적 전까지 5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한 스타였다. 민병헌 입단 후 주전 자리를 내준 김문호는 작년 46경기에 이어 올해는 51경기 출전에 그치며 롯데의 주력 외야수 자리에서 물러났고 결국 23일 내야수 황진수, 외야수 조홍석 등과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김문호는 통산 홈런이 18개에 불과할 정도로 장타에서는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타자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 부진했음에도 통산 타율이 .283에 달할 정도로 타격의 정확성에서는 더 이상 검증이 필요 없는 선수다. 내년이면 34세가 되는 적지 않은 나이가 걸림돌이지만 여전히 백업 외야수나 왼손 대타요원으로는 상당한 활용가치가 있는 선수다. 물론 외야가 약한 팀에서는 주전 경쟁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문제는 롯데 외야가 처한 상황이다. 현재 롯데는 전준우가 FA자격을 얻어 재계약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4번째 외야수로 가장 믿음직한 활약을 해줄 수 있는 김문호를 방출했다. 만약 전준우가 다른 팀과 계약한다면 내년 시즌 롯데의 외야 한 자리는 정훈이나 허일, 또는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최민재에게 맡겨야 할 수도 있다(물론 트레이드나 보상선수 지명 등 또 다른 형태로 외야를 보강할 수도 있다).

롯데는 성민규 단장 부임 이후 강하고 빠른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3~4일 동안 있었던 젊은 포수 지성준의 트레이드 영입과 새 외국인 선수 2명과의 계약, 베테랑 외야수 김문호의 방출은 롯데 프런트가 보여준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구단의 급진적인 개혁에 휘말려 14년 간 정든 팀을 떠나게 된 베테랑 외야수 김문호는 내년 시즌 새로운 팀에서 또 한 번 도약을 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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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롯데 자이언츠 김문호 방출 전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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