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달리는 트럭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가 힘들었던 마라톤 훈련기를 떠올리며 했던 말이다. 매일 같이 50km에 가까운 거리를 달렸던 황 선수에게 마라톤이란 스포츠가 아닌 고행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마라톤은 힘든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 나아가 베푸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순수 아마추어 마라톤 단체 '한국마라톤협회'가 그들이다. '달림이의 길잡이'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한국마라톤협회의 창단 5주년 행사가 7월 26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프레지던트 호텔 신세계 홀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는 마라톤 월간지 <한국마라톤>의 창간식도 함께 진행되어 뜻을 더했다. 동호인만 400만명...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마라톤은 2000여개가 넘는 동호회가 활동 중이며 동호인 숫자는 400만 명에 달한다.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달리기보다 좋은 운동이 없다는 입소문에 다이어트 바람까지 더해서 몇 년 새 마라톤은 생활체육으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바야흐로 '마라톤 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행사장에서 만난 마라톤 동호인들은 저마다 마라톤 경험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한반도를 마라톤으로 종단했다는 얘기부터 마라톤을 같이 한 덕에 소원했던 아들과 친구처럼 친해졌다는 얘기까지.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마라톤 풀코스 기록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서브3를 달성한 아마추어 마라톤 동호인 신권수씨. 그는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 성취감을 마라톤의 매력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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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마라토너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 있다.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주파하는 것. 일명 'Sub 3(이하 서브3)' 그룹에 속하는 것이다. 2006년 말 기준으로 서브3에 가입된 동호인은 1300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다. '서브3'란 아마추어 마라톤 동호인에게 훈장과도 같은 징표인 셈이다. 행사에서는 서브3를 달성한 두 명의 동호인에게 인증서 전달식이 있었다. 2002년 4월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는 신권수씨에게 평소 마라톤 연습과정에 대해 묻자 그는 웃으며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연습하고, 주말에는 한강에 가서 연습합니다"라고 말했다. "몸이 고되지 않느냐"는 질문엔 "좋아서 하는 일이라 행복하고 뛰고 나면 오히려 몸이 가뿐하다"는 대답이다. 마라톤의 매력에 대한 질문에 그는 무엇보다 성취감을 꼽았다. "건강을 떠나서 42.195km를 완주했다는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희열이죠" 그때 행사장 어디선가 들려오는 촌철살인의 한마디. "마라톤은 마약이야. 한번 시작하면 끊을 수가 없거든…." 행사장에는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84년 LA 올림픽 레슬링 62kg 금메달리스트인 김원기씨가 그중 한명이다. 레슬링 선수시절부터 마라톤을 좋아했다는 김씨는 현재 함평나비축제 마라톤 홍보대사를 맡고 있었다. 힘들기로 소문난 레슬링의 연습량을 견뎌낸 만큼 마라톤 실력도 대단할 것 같아 조심스레 기록을 물었다.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풀코스를 뛰어 본 경험은 아직 없지만 조만간 풀코스에 도전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꿈과 희망을 주는 마라톤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에서 그의 마라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것 보다 행복하게 달리는 것이 중요 한국마라톤협회 김주현 회장에게 마라톤이 생활체육으로 성공적인 고착을 위한 조건에 대해 물었다. 그는 "마라톤은 엘리트만을 위한 운동이 아닌 일반인 모두를 위한 운동"이라면서도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은 마라톤 초보자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게끔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협회에서 주최하는 초보자를 위한 마라톤 교실이 그 교육의 일환이라는 설명이었다.
 한국마라톤협회장 김주현씨. 달리면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마라톤을 만드는 것이 한국마라톤협회의 최종목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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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최근 마라톤 인구가 늘어나면서 일부 마라톤 대회가 순수성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유령 마라톤 대회를 개최해서 달림이들(마라톤 동호인을 일컫는 말)의 참가비를 횡령하기도 하고 큰 상금으로 많은 동호인을 유인한 뒤 준 프로급의 마라토너 일명 '마파라치'를 출전시켜 상금을 가로채는 등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은 현실이었다. 마라톤협회 차원의 대책에 대해 그는 "정부나 문화관광부와 협의해서 수준미달의 마라톤 대회는 제도적으로 주최되지 않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협회차원에서 가장 중요하고 생각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라고 대답했다. 협회장답게 인터뷰 말미에는 "마라톤은 해보지 않으면 절대 그 매력을 몰라요. 꼭 한 번 해보세요"라는 당부 역시 잊지 않았다. 한국마라톤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 중에 '연탄 나누기 마라톤대회'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마라톤대회와는 전혀 다른 이름이다. 말 그대로 마라톤에서 생긴 수익으로 불우이웃에 연탄을 나누어 주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된 대회로 등위만을 가리기 위한 대회와는 차별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조만간 달리는 의사회와 연대하여 '소아암 환우 돕기 마라톤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하니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가?' 보다 '얼마나 행복하게 달리는가?'가 중요한 그들이었다. "달리면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마라톤이 최종목표"라는 협회장의 말처럼 생활체육 마라톤이 '사회의 빛'이 될 날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조광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인턴기자 입니다.
마라톤 동호인 달림이 마라톤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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