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통화후 공중으로 던져진 수화기 전화통화를 마치고 그녀가 던진 수화기, 이후 전화기에 안착함과 동시에 청명한 종소리를 내며 달리기의 시작을 알린다.

▲ 전화통화후 공중으로 던져진 수화기 전화통화를 마치고 그녀가 던진 수화기, 이후 전화기에 안착함과 동시에 청명한 종소리를 내며 달리기의 시작을 알린다. ⓒ (주)스펙트럼DVD


만약,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자, 그러나 다행히도 과거로 돌아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회 또한 계속 주어진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사랑하는 이를 살리고자 분주히 해동하지만 번번이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체념하겠는 가? 또한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의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시간과 운명에 대해 다룬 독일영화 <롤라런>(1998)

운명에 대해 다룬 영화 작품은 기존에도 많았다. 최근의 것을 예로 들자면 <나비효과>(2004)가 그랬고, <레트로엑티브>(1997) 또한 그렇다. 절대자의 권능에 기대는 과거 문학 작품들과는 달리 이러한 영화들은 운명을 다룰 때 시간과 운명을 연관시켜 개연성과 설득력을 더하기 마련이다.

<롤라 런>도 그런 영화의 하나다. 영어 제목 <Run, Lola, Run> 그대로 영화에서 주인공 롤라는 시종일간 뜀박질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하는 남자친구 마니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린다.

보통 <롤라 런>에 대해 다룬 리뷰들을 보면, 시종일간 뜀박질하는 영화로서의 속도감, 그리고 생동감을 잘 살린 핸드핼드기법, 분할화면, 애니메이션삽입 등에 대한 예찬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번 리뷰에서 필자는 그동안 여타 리뷰들이 흔하게 다루어 왔던 그런 부분은 차치하고, 기존의 리뷰들이 다루지 않았던 이 영화가 지닌 운명관과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운명에 대한 두번의 도전

첫째, 둘째 달리기에서의 롤라의 선택 인간만의 고뇌 그리고 인간적인 문제해결의 방법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 첫째, 둘째 달리기에서의 롤라의 선택 인간만의 고뇌 그리고 인간적인 문제해결의 방법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 (주)스펙트럼DVD


물음과 기도, 그리고 응답 그녀는 고난 앞에서의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절대자에 귀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에 대해 절대자의 즉각적인 응답이 나타난다.

▲ 물음과 기도, 그리고 응답 그녀는 고난 앞에서의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절대자에 귀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에 대해 절대자의 즉각적인 응답이 나타난다. ⓒ (주)스펙트럼디브이디


영화에서 롤라의 달리기는 총 3회 이루어진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롤라가 운명과의 궁극적인 합의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마지막 3회이다. 우선 롤라가 달리기 이전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영화는 마니와 롤라의 전화통화로부터 시작된다. 전화통화의 내용인즉 마니는 갱단의 똘마니이고, 보스가 그를 시험하기 위해 첫 마약거래에 내보냈으며, 비록 성공적으로 거래는 마쳤으나, 그를 데려오기로 했던 롤라가 스쿠터를 도둑맞아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 결국 마니는 지하철을 탔는데 마약대금 10만 마르크를 지하철에 놓고 내리게 되고 그것을 지하철의 부랑자가 가져가게 되었다는 것.

마니는 12시 정각에 보스를 만나 돈을 건네주어야 하지만, 2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마니는 슈퍼마켓을 털겠다고 하고, 롤라는 그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말한 후 그를 구하기 위한 달리기를 시작한다.

전화통화가 끝나자 롤라는 잠시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지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은행장인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할 요량으로 은행으로 달려간다. 이 첫 번째 달리기에서 롤라의 안중에는 남자친구 마니의 목숨밖에 없다. 길가다 유모차와 부닥치든 차고에서 막 도로로 진입하는 차 범퍼를 밟고 가든 두 줄로 정숙히 걸어가는 수녀행렬을 휘젓든 그녀에게 있어서 그러한 것들은 큰 문제가 아니다. 오직 마니만 살리면 될 뿐. 그러나 아버지로부터의 조력이 거절되자 그녀는 마니와 함께 강도짓을 하게 되고, 결국 도주 중에 경찰에 의해 사살됨으로써 첫 번째 달리기는 실패로 끝나게 된다.

두 번째 달리기에서도 롤라의 행동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슈퍼마켓을 털 생각은 접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아버지에게 도움을 거부당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아버지의 은행을 턴다. 은행이 경찰에 의해 포위되지만, 돈을 훔치고 은행문을 나선 롤라를 인질로 오인한 경찰들의 실수로 롤라는 마니가 슈퍼마켓을 털기 직전에 도착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마니는 롤라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반갑게 길을 건너던 중 급히가던 구급차에 치여 죽는다.

썬글라스를 착용한 수녀와 장님 영화 속에서 선글라스 낀 장님과 수녀의 모습이 몇번 보여진다. 이는 이들을 매개로 롤라의 선택과 행동을 은연중에 지켜보는 절대자로부터의 시선을 암시한다.

▲ 썬글라스를 착용한 수녀와 장님 영화 속에서 선글라스 낀 장님과 수녀의 모습이 몇번 보여진다. 이는 이들을 매개로 롤라의 선택과 행동을 은연중에 지켜보는 절대자로부터의 시선을 암시한다. ⓒ (주)스펙트럼DVD


세 번째 달리기에서 롤라가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해결방법은 완전히 달라진다. 행인들과 부딪치지 않고 수녀들의 행렬도 옆으로 비켜 통과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간발의 차로 막 은행을 나서 출장 가는 아버지를 놓치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는 다시 길을 달리며 누군가에게 질문하듯 마음속으로 혼자 속삭인다. '어떻게 해야하죠?' 그리고는 이내 기도하듯이 눈을 감고 하는 다음의 말이 인상적이다.

'날 도와줘요.'

그것은 절대자를 향한 애원이자 그녀가 처음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해결책을 버리고 절대자에게 청하는 도움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을까. 눈을 감고 무작정 달리다가 그녀는 트럭에 치일 뻔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자로부터의 응답의 신호. 급정차한 트럭 바로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그녀 앞에 카지노가 나타난다.

기적의 연속, 롤라는 카지노에서 단 2번의 올인 베팅 그리고 2번의 승리로 10만 마르크가 족히 되는 돈을 따낸다. 또한 첫 번째 두 번째와는 달리 지나던 응급차를 얻어타는 데 성공하게 되고 그 안에서 사경을 헤매던 환자의 손을 붙들어 소생시키는 기적도 행한다.

그런데 응급차 덕분에 일찍 마니가 있는 슈퍼마켓 앞에 도착하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마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도로 저편을 보니 이미 노숙자로부터 돈을 찾아 임무를 완수하고 보스의 칭찬과 배웅까지 받으며 보스의 차에서 내리는 마니가 모습을 들어낸다(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마니가 돈을 어떻게 찾았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이 역시 달라진 롤라의 태도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극복도 순응도 아닌 타협의 대상으로써의 운명

세 번째 달리기는 <롤라 런>, 이영화가 지닌 독득한 운명관 내지는 종교적 의미를 잘 드러낸다. 시간과 운명에 대해 다룬 다른 영화작품 <나비효과> 혹은 <레트로엑티브>를 보면 주인공은 결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순응'을 최선의 방법으로 택하게 된다. 우리의 소설작품 <역마>도 그러하다.

물론, 조금 더 종교적 관점을 부각하여 <롤라 런>을 바라본다면, 그 모든 일이 결국 롤라에게 깨달음을 주기위한 절대자의 계획 안에서 일어난 일이며, 결국은 롤라는 그에 순응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운명에 대한 맹목적인 순응 혹은 무모한 도전 그리고 그 결과를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틀안에 한정해 다뤄온 여타의 영화들과 달리, 운명에 대한 인간적인 도전을 포기하고 절대자에게 귀의하여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끌어 내는, 다시 말하자면 운명을 일종의 '타협의 가능한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 이 영화가 지닌 독특한 운명관이라 볼 수 있겠다.

이런대도 <롤라 런> 단지 '스타일리쉬한 킬링 타임용 영화'라고?

인터넷 영화평 게시판에 서 간혹 <롤라 런>을 단순히 시간보내기용 치부하는 댓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평가 자체가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적절한 배경음악, 분할화면 시도, 핸드핼드기법, 애니메이션 삽입 등의 실행해 지루함 없이 속도감과 생동감을 잘 살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롤라 런>을 단지 스타일리쉬한 킬링 타임용 영화로 치부하는 것은 영화가 지닌 주제의식과 그것을 들어내기 위한 영화속의 수많은 은유들를 간과한 평가라고 볼 수 있겠다.

<롤라 런>은 그 완성도와 실험성으로 독일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고 하기에 전혀 부족함 없는 수작이다. 또한 영화를 볼 때, 본 리뷰에서 다룬 것처럼, 영화 곳곳에 녹아있는 종교적 은유와 운명관을 찾아보며 감상하는 것도 상당히 흥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혹시 누군가 필자에게 영화 한편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필자는 망설임 없이 <롤라 런>을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에 중복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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