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7 22:05최종 업데이트 23.02.0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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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박진 외교부 장관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강제징용(강제동원) 해법으로 제시했다.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일본 정부가 과거의 사죄담화를 계승하는 입장 표명을 고려 중'이라는 <교도통신> 보도를 언급하자 이에 답변하면서 이 선언을 언급했다.

윤석열 정부는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한국 정부 산하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떠맡되, 일본 측은 성의 표시를 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성의 표시는 사과 표명이나 금전 제공 등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금전 지급은 물론이고 사과 표명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과를 표명한 과거의 정부 담화를 계승한다'고 선언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사과한다'고 말하지 않고 '사과한다고 말한 과거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우회적으로 내비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지난 1월 28일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교도통신>은 그런 과거 담화의 샘플로 1995년 무라야마 담화, 2005년 고이즈미 담화, 2015년 아베 담화를 예시했다. 이어 지난 1월 31일 일본 정부 분위기를 소개한 <지지통신>은 무라야마 담화와 아베 담화를 제시했다. 한국인들이 어느 담화에 반응하는지 살피는 보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박진 장관의 6일 발언이다.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입장을 표명하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1998년 10월 8일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라는 타이틀로 나온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빠진 한국을 상대로 일본이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발표됐다. 1997년 11월 21일 김영삼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일본은 한일어업협정을 유리한 방향으로 새로 체결할 목적으로 1998년 1월 23일 협정 파기를 통보했다.

한국이 그처럼 불리한 상황에서 나온 이 선언은 사과의 대상을 한국으로 명시하고 식민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누구한테 사과한다는 것인지 드러나지 않았던 종전의 담화들과 대비됐다. 당시 한국의 처지를 감안하면 외교적 성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과가 아니었다. 식민지배 일반에 대한 것이었을 뿐, 강제징용·위안부·강제징병에 대한 게 아니었다. 또 사죄한다고만 했을 뿐, 어떻게 피해를 복구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매우 미흡한 선언이었다.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그랬다. 1998년 상황의 맥락을 살펴보면 그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징용 문제 외면

그해에도 징용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3월 2일 자 <한겨레> 기사 '전국 곳곳서 3·1절 행사'는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족 등 100여 명이 모여 3·1절 기념행사를 열고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정부 차원의 보상 등을 촉구했다"라고 보도했다.

IMF 하에서도 한국인들의 관심이 상당했다는 점은 <조선일보>가 그런 문제를 발굴해 보도한 데서도 느낄 수 있다. 3월 2일 자 이 신문 기사 '중국 하이난도서 한국인 학살 1945년'은 중국 현지 문건을 인용해 "일본 패망 뒤 하이난도 애현 지역에 고립된 일본군 부대가 조선인 징용인 1천여 명을 동원, 싼야시 난딩촌 부근의 산기슭에 굴을 파고 무기와 군수물자를 은닉했다"라고 보도했다.

그런 뒤 "일본군은 작업에 동원된 조선인들에게 은닉 장소 옆에 굴을 파게 한 뒤 총알을 아끼기 위해 칼로 무자비하게 살해, 파묻었다"라고 당시의 참혹상을 알렸다. 하이난도(해남도) 징용 문제는 그해 8월 31일 KBS 월요 다큐멘터리 '해남도에 묻힌 조선혼'에서도 다뤄졌다.

이 해에도 피해자들의 소송이 주목을 받았다. 2월 21일 자 <조선일보>는 미쓰비시 강제징용 소송이 후쿠오카 고등재판소에 의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원고인 피해자 김순길이 2월 20일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했다.

6월 27일 자 <동아일보>는 '한일청구권협정의 재조명' 심포지엄 참석차 고국을 방문한 재일교포 김경득 변호사가 "식민지 지배 경험이 있는 나라는 많지만 식민지 시절 징용 등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일본뿐"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징용 피해로 인한 원성이 1998년에만 높았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 이전도, 그 이후도 항상 그랬다. 그런데도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같은 전범기업들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 역시 성의 있는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1998년 3월 1일 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그해 2월 27일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자국에서 피해를 입은 일본인 노동자와 유족 170명에게 빌 클린턴 대통령의 사죄 편지와 함께 1인당 2만 달러(당시 한화 3400만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외국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서도 일본 정부는 한국인 피해자들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게 그해 10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다. 징용 피해를 해결하라는 원성이 들끓는 상황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선언은 징용 문제를 외면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돌이켜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라고 말한다. 손해와 고통을 준 사실을 이렇게 시인하면서도 이 선언은 피해 복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실질적 조치가 결여된 선언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가 1월 26일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경제인 교류의 밤'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선언이 피해자들을 도울 수 없다는 점은 그 직후의 일본 법원 판결로도 증명된다. 선언 2개월 보름 뒤 일본 법원은 한두 명도 아닌 363명의 식민지배 피해자들에게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해 12월 23일 자 <조선일보> 기사 '일 법원, 징용 한국인 손배소 기각'은 "2차 대전 중 일본군에 의해 강제적으로 군인·군무원 등으로 끌려가 사망하거나 가혹행위를 당했던 한국인 피해자 및 유가족 등 3백 63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 사죄와 1백 20억엔 배상을 청구한 소송이 기각됐다"라며 "도쿄지법은 21일 판결 공판을 열어 배상 근거가 되는 법규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고 전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징용 문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면, 선언 이후의 일본 1심 판결에도 어떻게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부를 대표하는 총리대신이 공식 선언을 했으므로, 그 속에 징용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내용이 있었다면 일본 법원이 이를 무시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불법행위를 처벌하고 배상을 명령하는 법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그런데도 일본 법원이 근거 법령이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은 이 선언이 징용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윤덕민 주일한국대사는 '한국 법원이 2018년 대법원판결을 거부하는 일본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을 현금화해서 피해자들에게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귀국한 뒤 괜찮을지 걱정"이라며 윤덕민 대사를 응원하는 SNS 글도 일본에서 나왔다.

그런 윤덕민 대사가 적극 추천하는 것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다. 지난 1월 17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도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에 대비해 일본 정부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업그레이드해서 발표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1998년 당시에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적극 지지했다. 선언 다음 날인 10월 9일 발행된 <조선일보>는 "이번 공동선언은 과거 청산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로 시작하는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연구부장의 소감을 소개했다.

그런데 윤덕민 당시 연구부장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었다. 이 선언이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위 기사에 따르면 그는 "다만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일본 측의 실질적인 조치들이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위안부나 징용·징병 문제에 대한 실질적 조치가 결여된 선언이라는 점을 그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구체적인 식민지배 문제에 대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징용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도 이를 외면한 채 발표된 선언이었다. 이런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일본이 발표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발언은 한일관계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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