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2 07:05최종 업데이트 23.02.0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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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도시 흘레바하에서 주민들이 러시아군 공격으로 무너진 이웃집의 잔해를 정리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지원하기로 한 다음날인 26일 새벽부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습을 가해 11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 ⓒ 연합뉴스

 
평화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평화운동이 다루는 이슈가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 이슈는 우리 일상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다. 플랫폼 노동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혹한의 날씨에 꽁꽁 언 위험한 도로를 달려 우리집에 배달을 온 배달노동자를 떠올릴 수 있고, 성폭력 이슈의 경우도 요즘은 특히 사이버 성폭력을 직접 겪거나 겪은 주변인이 한 명이라도 있기 마련이다.

반면 1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일어난 전쟁은 우리의 일상과는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군을 파병한다거나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하는 등 한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면 체감이 다르겠지만,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언론 기사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있다고 느끼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니 전쟁과 우리의 연결성을 찾는 이야기는 주로 전쟁으로 인한 세계적인 추세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밀이나 천연자원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주 생산국인 자원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하늘 길과 바닷길이 일부 막히면서 유통에 차질이 생기고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것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에 연루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

물가 인상이 모두 전쟁 탓만은 아니겠지만 최근 모두가 놀라고 있는 난방비 폭탄에 이어 대중교통비, 주류와 군것질류까지 줄줄이 오르는 물가가 이를 증명한다. 혹은 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의 군비 증강과 이에 따른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도 변화가 아마도 한국 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평균적인 시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선에서는 전쟁은 남의 나라 일이고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의도치 않은 변화들에 잘 대응하면 될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젊은이들과 러시아의 젊은이들이 BTS를 함께 듣는, 고도로 연결된 국제관계에서 어느 한 국가만 전쟁에서 동떨어져 있을 순 없다. 특히 한국처럼 세계 여러 나라와 다양한 측면으로 교류하고,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무역 대국에 군사 대국이라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전쟁도 무관할 수 없다. 한국인이 거주하지 않거나, 한국산 제품을 전혀 쓰지 않거나, 한국의 콘텐츠를 즐기지 않는 나라가 있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지구촌의 전쟁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은 이런 당위적인 연결을 넘어 한국사회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현대의 전쟁은 한 나라의 군사부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하는 총력전이다. 전장에서 전투에 참여한 나라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물리적 폭력 행위뿐만 아니라 전투를 수행하는 국가와 이웃하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나라들까지 강한 원심력으로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법적으로는 군대가 없는 나라였지만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며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일본 또한 한국전쟁에 중요한 행위자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본격적인 전투는 우리의 일상과 무관해 보이는 먼 땅에서 일어나지만, 전쟁에 영향을 주고받는 다양한 요인들에서 이미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는 원하든 원치 않든 전쟁의 주요 행위자로 전쟁에 깊숙하게 연루되어 있다.

전쟁 난민 문제의 중요 행위자
   
지난 글(인천공항에 갇힌 외국인들... 벌써 석 달 째, https://omn.kr/22bdo)에서 이야기했던 러시아 난민들이 바로 한국 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요 행위자임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존재다. 한국이 러시아인들을 불러온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한국 땅을 찾아온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쟁의 원심력은 때로는 당사국이나 주변국의 의도를 개의치 않으며 특정한 상황에서 정치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전쟁은 전쟁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한 일군의 사람들을 한국에 데려왔고 한국 정부는 좋든 싫든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할지, 아니면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인천공항에 체류 중인 다섯 명 모두 난민 심사 자격조차 부여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해 한국 법원에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세 명의 1심 선고 공판이 2월 1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14일로 연기되었다.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유를 특별히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인만큼 전쟁에 저항하고 강제 동원이라는 인권 침해를 피해 한국을 찾아온 병역거부자 난민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 국제사회가 주목할 수밖에 없다.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의 유무와 무관하게, 혹은 전쟁 이후 한국 정부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내린 정치적 판단과 선택이 어떠했든 간에, 한국 정부가 러시아 난민을 인정하는지 인정하지 않는지는 러시아 정부가 전쟁을 지속하는 데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미 이 전쟁의 주요한 행위자인 셈이다.

전쟁으로 돈버는 한국
 

2022년 5월 3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 앨라배마주 트로이의 록히드 마틴 공장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이 전시되어 있다. ⓒ 연합뉴스


러시아의 병역거부자 난민과 다르게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역시나 한국이 이 전쟁의 주요한 행위자임을 증명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전쟁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무기 수출이다. 전쟁으로 인한 국방비 증가와 군수산업체의 호황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독일은 특별방위기금 1000억 달러를 긴급 편성했고, 중립국 노선을 견지해오던 핀란드와 스웨덴은 군사동맹인 나토에 가입의정서를 제출했으며, 폴란드는 GDP 2~3% 수준의 국방비를 긴급 편성했다.

구매가 늘어나니 세계적인 군수산업체들은 절로 호황을 누렸다. 2022년 한 해 동안(12월 1일 기준) 록히드 마틴의 주가는 47.7%, 레이시온은 24.9%, 노스롭그루먼은 54.1%,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33.2% 증가했다.

매출 총액에서는 세계적인 군수산업체들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주가 상승률만 놓고 보자면 한국 방산기업들은 세계적인 군수산업체들을 압도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72.0%, 한국항공우주산업이 75.1%, 현대로템이 74.8% 증가하는 등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이는 전년도(2021년) 72억 5천만 달러였던 방산 수출액이 두 배가 넘는 170억 달러로 급증한 까닭이다.

2020년 방산 수출액이 2021년의 절반이 안 되는 30억 달러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안 그래도 성장세에 있던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큰 호재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수출액 170억 달러 가운데 폴란드가 124억 달러 어치의 무기를 수입했는데,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자국의 무기를 지원하고 부족분을 사들였다.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아마도 방산 수출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이거나 조건을 조율하고 있는 계약이 성사될 경우 2023년 방산 수출은 200억 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지표들은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요하게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직접적으로 무기를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일본이 아무런 군사적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주요 행위자로서 경제적 성장을 이뤘던 것처럼 한국 정부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무기를 팔아 막대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다. 대륙 너머의 전쟁이 강 건너 불구경일 수만은 없는 까닭이다.

가해자의 자리에 스스로를 놓아볼 수 있는 용기

평화활동가이자 사회학자인 임재성 변호사는 '평화란 가해자의 자리에 스스로를 놓아볼 수 있는 용기'라고 말한다. 우리가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감각을 가질 때만이, 가해자가 되는 일의 두려움을 깨달을 때만이, 평화를 위한 행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몽골의 초원과 중앙아시아의 고원, 카스피 해 너머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전투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당도한 러시아 난민과 전쟁 덕에 돈을 버는 한국의 방위산업체와 한국 정부,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가 마주한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노력에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이고 평화적인 중재자 역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전쟁을 피해 한국을 찾아온 난민들의 지위를 인정하고 그들을 환대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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